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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겨울나기 – 노덕경 수필가

가을이면 나뭇잎이 단풍으로 변한다.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다. 나무들은 이른 봄에 새잎을 틔우고, 줄기를 키우고, 꽃을 피우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어 뭇 생명들에게 나누어 준다. 이처럼 미물도 나아갈 때와 멈출 때를 안다. 겨울이 오면 한 잎 두 잎 가지를 떨구고 나목으로 서 있다. 외롭고 쓸쓸한 노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나무에는 ‘떨켜(離層)’라는 세포층이 있다. 잎자루와 가지, 열매에 생기는 세포층이다. 가지와 잎, 꽃, 과일의 꼭지가 쉽게 분리되는 것은 ‘떨켜’ 때문이다. ‘떨켜’는 나무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나쁜 미생물의 침입도 막고, 겨울나기 위하여 잎으로 가는 통로를 막아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매듭을 짓는 행위다.

단풍은 나뭇잎에서 만들어지는 탄수화물, 아미노산이 줄기에 이동하지 못하고 잎에 축적되어 색소로 변한다. 녹색은 ‘클로로필’이 분해하여 생기고, 붉은색의 안토시아닌이 형성되어 빨강 단풍으로 변하고, 갈색 단풍은 ‘탄닌’ 성 물질에 의해 나타나고, 노란 단풍은 카로티노이드 색소에 의해 나타난다.

나무 중에 참나무는 ‘떨켜’ 층이 없어서 마른 잎을 매달고 겨울을 지낸다. 때가 되면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참나무는 모진 겨울에 잎이 떨어질 때까지 바람에 바스락거린다. 그것뿐인가. 늦게 떨어진 잎들이 서리와 결합하여 등산객들의 낙상까지 부른다.

참나무를 보면 함께 근무했던 교수 선배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라 경제위기 IMF가 1997년 말에 닥쳤다. 국민 모두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금 모으기 동참하고, 물가가 치솟아 제2금융권에 연 이자가 23%일 때, 이자 욕심이 나서 조기 퇴직했었다. 퇴직금을 3억 원 넣어, 월 받는 돈이 500만~600만 원 된다고 했다. 일하지 않고 퇴직한 것을 동료들에게 자랑했었다.

그는 젊어서 산아제한 시책에 따라 아들 둘을 낳아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켰다. 노후 부부는 퇴직금으로 여행도 다니며 재미있게 살고 있는데 문제가 생겼다. 자식들이 아버지 퇴직금이 소실될까 두려워했다. 자고로 형제간에도 여자들이 따르면 경쟁이 붙는다.

두 아들 내외는 번갈아 과일과 선물을 챙겨와 부모님께 처음으로 효도 경쟁이 붙었다. 그런데 실상은 퇴직금을 서로 탐하여, 큰아들이 하는 사업에 자동 인공지능 기계를 투자하면 대박이 난다며 생활비로 이자만큼 주겠다고 했었고, 작은아들은 아파트 부동산이 자꾸만 오르니 보태 달라고 했었다. 사흘들이 찾아와 조르고 하는 통에 아내의 말에 어쩔 수 없이 퇴직금을 나누어 주고 말았단다.

퇴직금이 말랐으니 자식들은 오지 않고, 사업이 어렵다며 생활비도 미적미적 미뤘다. 내외가 생활비를 절약하여 근근이 살고 있다. 선배는 하는 수 없어 공공근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세월은 흘렀지,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고, 눈이 침침하고, 귀도 안 좋고, 허리며 다리며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하소연이다.

사람은 태어나 엄마로부터 공급받던 탯줄을 끊어 세상에 태어난다. 분신인 자식들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한다. 그래서 자식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정성을 다해 헌신한다. 어릴 때부터 온갖 정성을 다해 키우고 대학까지 보내 결혼까지 시켰다. 그래도 못살까 봐 노파심에서 온갖 지원을 다 한다. 그것뿐인가. 밥이나 먹고 다니는지 반찬까지 만들어 주고, 손주들 양육까지 도와준다. 과잉 사랑을 부모의 당연한 역할로 생각했었다.

자연이 겨울을 어떻게 견디는지 새삼 생각한다. 나무들도 겨울나기 위하여 잎을 내려놓고, 작은 벌레와 동물들도 몸을 움츠린 채 따뜻한 곳을 찾고, 세상이 얼어붙은 듯한데 그 속에서 평온한 질서가 있고 조용한 움직임이다. 눈 속에서도 뿌리는 조금씩 깊어지고 봄을 기다린다.

세월이 흘러 과학이 발달할수록 사람은 장수한다. 사람들의 의식주가 풍부하고 잘 먹고 의료 혜택이 좋아 갈수록 수명이 늘어난다. 젊어서 직장 생활 못잖게 노후 생활 기간이 늘어났다. 노후 생활에 노후 자금이 꼭 필요하다. 젊을 때보다 노후 생활에 병원비가 많이 들어간다. 살아생전에 자식들한테 유산을 분배하여서는 낭패를 본다.

캥거루가 태어나 ‘육아낭’에서 성장하여 독립하듯, 자녀들의 성장에 관심을 두고 품 안에 키울 것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자립심을 키워 주고, 대학을 졸업하면 독립시켜야 한다. 자녀들에게 물고기를 잡아다 줄 것이 아니라 낚시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