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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찬의 먼 북소리(1) 내 고향 합천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고갯길’ – 최효찬 작가, 수필가. 문학박사

봄방학이 끝나갈 즈음 소년은 벼르고 벼르던 일을 실행하기로 했다. 우선 집 점빵에서 잔돈을 몇 개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부모님 몰래 집을 빠져나온 소년은 뛰다시피 집 앞 공중 다리를 건너고 나무터(남은동)와 모래마(사촌동)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연신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고갯마루까지 내달았다. 소년이 몇 년 후 중학생이 되면 통학할 ‘미낕재’(봉산과 대병의 경계)였다. 재를 넘자 저 멀리 푸르스름한 산자락들이 눈에 들어왔다. 소년이 길을 나선 까닭은 좀 엉뚱했다. 소년은 멀리 부산에서 오는 버스를 타고 싶어 홀로 집을 떠나 대병면 소재지까지 갔다. 그곳에서 신원이 종점인 천일여객 버스를 5시에 타고 다시 집으로 되돌아 가기 위해서였다. 그날 소년이 처음으로 고갯길을 넘어 10㎞를 걸어 갔다가 버스를 타고 되돌아온 일은 앳된 산골 소년에게는 나름대로 세상을 향한 첫 도전이었다.
소년은 중학생 때 방학이면 진주에서 직물공장에 다니던 누나 자취방과 교사인 큰외삼촌 댁에 다니러 갔다. 돌아오던 버스가 ‘두심재’에 이르러 차창 너머로 저 멀리 진주 방향의 원경(遠景)이 어슴푸레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면 가슴이 아련하게 미어져 왔다. 소년은 진주의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3년 내내 두심고개를 넘나들었다. 주말엔 본가에 와 농사일을 도왔다. 돌아갈 때엔 쌀을 한 포대 가져갔는데, 버스를 타고 내릴 때마다 고역이었다. 누나는 공장에 다니며 큰형에 이어 동생을 뒷바라지 했다. 추석을 맞아 누나가 사준 청바지를 입고 길을 나섰다. 귀성객들로 넘쳐나던 시절, 터미널에는 가회까지 가는 차편밖에 없었다. 해질녘 가회에서 내려 누나와 동행인들과 함께 두심재를 넘었다. 미낕재 초입에 이르렀지만 고갯길이 무서워 신작로로 우회했다. 그날 25㎞나 되는 길을 어떻게 걸었는지 모른다. 그날 밤길은 무서워서 낮보다 빨리 걷는다는 것을 알았다.
소년은 아버지가 되어 초등 6학년 아들을 데리고 황매산 ‘떡갈재’를 넘었다. 여름방학에 맞춰 처음 도보여행을 나선 것이다. 하금 앞 여관에서 묵고 이른 아침 산청을 향해 출발했다. 2008년 당시 떡갈재 가는 산길은 도로 개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떡갈재 길을 찾아 헤매다 다시 내려와 공사 중인 컴컴한 터널로 넘었다.
소년이 청소년기를 거치며 넘나들던 고갯길과 어른이 되어 아들과 함께 걸어간 고갯길은 꿈과 미래를 안고 넘었던 길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넘나들던 고갯길은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국민학교 소사였는데 매주 합천에 업무차 다녀오는 길이 큰 고역이었다. 노선버스가 없던 시절이라 봉산 술곡에서 저포를 지나 논덕산 ‘아리재’(아리랑재)를 넘어 우실(우곡)과 방곡, 연촌을 거쳐 합천을 당일에 왕복해야 했다. 자그마치 왕복 40㎞가 넘는 험한 길이었다. 한 번은 이른 새벽 아리재를 넘는데 호랑이가 먹다 남은 짐승 뼈들이 흩어져 있어 정신없이 내달린 적이 있다고 했다. 소년은 어릴 적 아버지에게 이 이야기를 귀에 익도록 들었다. 그러면서 배움의 중요성을 아들의 가슴에 새겨주었다.
할아버지는 지게에 무거운 짐을 진 채 고된 고갯길을 넘기 예사였다. 소년은 중학생 시절 할아버지 사랑방에서 잤다. 할아버지는 밤마다 옛일을 날짜까지 기억하며 들려주었다. 할아버지는 엄마를 여윈 두 살 아기에게 쌀죽을 먹이기 위해 나뭇짐을 지고 진주까지 가서 쌀을 팔아 떡갈재를 넘어왔다고 했다. 할아버지에게 떡갈재는 힘겨운 보릿고개를 넘는 길이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아리재나 떡갈재를 넘으면서 허기를 참고 바라보던 하늘과 바람과 늦은 밤길의 별들은 소년이 걸었던 고갯길의 하늘과 바람과 별빛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생의 고뇌를 일깨우는 세찬 바람이었고 차가운 별빛이었을 것이다. 저 하늘의 구름이 되어 저 멀리 자유롭게 훨훨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모두 하늘의 바람이 되셨고 별이 되셨다. “나는 별 하나에 그리운 고갯말을 하나씩 불러봅니다. 미낕재, 두심재, 아리재, 떡갈재…”
산으로 둘러싸인 합천에는 고을마다 수많은 재들이 있다. 고개마다 재를 넘던 이들의 과거와 미래를 한 아름 안고 있다. 누구는 재를 넘다 풋사랑을 나누었고 누구는 재를 넘어가는 사랑을 보냈다. 누구는 가슴 무너지는 아픔을 안고 넘었고 누구는 고개를 넘고 넘다 지쳐 다시는 고갯길을 밟지 못했다. 그리고 누구는 벅찬 꿈을 꾸며 고개를 넘나들었고 꿈꾸던 미래로 나아갔다.
수백 년 동안 선조들이 넘었던 고갯길은 이제 길이 끊겼고 발길도 사라졌다. 아버지가 열여덟 새색시와 넘었던 그 푸르른 날의 ‘서원재’(옛 용암서원이 있던 고개)는 이름마저 잃었다. 그와 함께 수없는 사연들도 고갯길에 묻혔다. 재를 넘나들던 이들은 길손 지나던 그 언저리에 잠들었다. 어릴 적 홀로 고개를 넘던 기억을 안고 거친 세상으로 겁 없이 나아갔던 소년은 이순을 넘겨 고향의 고갯길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