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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비운의 정순왕후 – 정개모 합천군문해강사

조선 6대 왕 단종(홍위)은 만 9세에 아버지 문종으로부터 세자로 책봉되었다. 문종이 승하하자 12세에 왕위를 물려받았고, 1454년 2월 19일 13세에 한 살 연상이던 여량부원군 송현수의 딸과 혼인하였다. 그러나 계유정난으로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남에 따라 송 씨는 1년 남짓 왕비가 되었다.
단종은 늘 영의정과 군권 등 정사를 장악한 삼촌 수양대군의 그늘에 싸여 있었는데, 과연 국사를 제대로 살필 수 있었을지 의문이 생긴다. 이에 수양대군은 나이 어린 조카를 몰아내고 자신이 용상을 차지하기 위해 한명회, 신숙주 등 측근들을 주축으로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문종의 고명대신 김종서와 황보인, 단종 복위 운동을 펼친 성삼문 등 사육신을 척살하고 조카 단종을 강원도 영월 동강 인근 청령포로 유배시켰다. 이후 1455년 8월 3일, 명목상 선위의 형식으로 새 임금에 등극하였으나 실상은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것이 세조의 정치적 정체성이다.
야사에 의하면 어느 날 세조가 꿈을 꾸는데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나타나 세조의 얼굴에 침을 뱉어 피부병이 생겼다는 속설이 있다. 실록을 보면 피부병이 생긴 것은 사실로 보인다. 단종은 영월로 유배됨과 동시에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17세의 나이에 승하한다. 송 씨 역시 군부인으로 격하되어 관노의 신분이 되자 정업원으로 쫓겨나 염색 일을 하면서 1521년 7월 17일, 향년 82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단종이 유배되자 송 씨는 언제나 강원도 영월 쪽을 바라보며 오매불망 64년간의 긴 세월 동안 단종을 애도하는 곡(哭)을 하였다. 1698년(숙종 24년) 노산군이 다시 단종으로 추복(追復)되자 송 씨 역시 정순왕후로 추복되어 신위가 창경궁으로 옮겨졌다. 단종의 죽음 원인에 대하여는 아직도 명확히 밝혀진 바 없으나 자살, 목 졸림 또는 사약(賜藥)으로 추정한다. 다만 스스로 목숨을 끊을 명분은 부족해 보인다.
죽음 후 단종은 반역자로 몰려 그의 시신이 동강에 버려졌으나, 영월 호장 엄홍도가 목숨을 걸고 간신히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렀다. 추복 후 단종은 묘호가 장릉(莊陵)으로 정해졌고, 정순왕후는 경기도 남양주시 사릉(思陵)으로 정해져 모두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조선의 비극적인 왕비를 살펴보면 가장 비극적인 단종 왕비 정순왕후를 비롯하여, 7일 만에 폐위된 중종 왕비 단경왕후 신 씨, 그리고 친정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처형당하고 자녀 3명을 앞세우며 왕비임에도 친정 식구들이 관비로 전락하여 끌려가는 장면을 목격한 세종 왕비 소헌왕후 심 씨 등을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