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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에세이 – 안병국 교수

수백의 사람이 『논어(論語)』를 번역했다. 지금도 번역하고 있고, 앞으로도 번역될 것이다.
모두 자기 식의 번역이다.
우리는 한문으로 된 책자를 골라 말한다면 —사람들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천자문(千字文)』과 『논어』를 든다. 『천자문』은 중국 양나라 주흥사(周興嗣)가 지은 책이다. 사언(四言) 고시(古詩) 250구로 모두 1,000자(字)로 되어 있디. 한문 학습의 입문서로 널리 쓰였다.
『논어』는 유교 경전의 하나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언행을 적은 것으로, 공자 사상의 중심이 되는 효제(孝悌)와 충서(忠恕) 및 인(仁)의 도(道) 등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본인이 다루려는 교재는 후자인 『논어』다.
“다 읽은 뒤에 〈너무 즐거워〉 곧바로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춤을 추고 발로 뛰는 자도 있다(有讀了後 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고 한 그 책 『논어』다.
송(宋) 태조 조광윤(趙光胤)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으로 ‘조보(趙普)’라는 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릴 때부터 전쟁터에 나가느라 글공부를 할 틈이 없어 학문에 어두웠다. 그는 늘 이점을 염려하여 퇴근한 뒤에는 두문불출(杜門不出)하며 글을 읽어 마침내 많은 학식을 갖추게 되었다.
태조가 죽고 태종이 즉위한 뒤에도 승상으로 임용되어 국정을 잘 살폈는데, 시기하는 사람들이 그를 몰아내기 위해 “조보는 겨우 『논어』밖에 읽지 못해서 중책을 맡기기 어렵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태종이 조보를 불러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신(臣)이 평생에 아는 바는 진실로 『논어』를 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반권의 지식으로 태조께서 천하를 평정하시는 것을 보필하였고, 지금은 그 나머지 반으로써 폐하께서 태평성대를 이룩하시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臣平生所知 誠不出此 昔以其半輔太祖定天下 今欲以其半輔陛下治太平).”
나중에 조보가 죽은 뒤 가족이 유품을 정리하다가 그의 책 상자를 열어 보았다. 정말 『논어』 한권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반부논어(半部論語)’는 위의 글에서 유래한 말로, ‘반부논어치천하(半部論語治天下)’라고도 쓴다. 이 이야기는 송나라 나대경(羅大經)의 『학림옥로(鶴林玉露)』에 나온다.
전 전 대통령 이야기다. 전 대통령께 『논어』를 가르친 분이 김중열(威齋, 金重烈) 교수다.
전 대통령께서 이렇게 말하더라 했다 한다. “일찍 『논어』를 배웠더라면 좋은 정치를 했을 텐데…” 라고 하자 위재는 한참 망설이다 “그랬더라면 혁명(革命)을 못했을 겁니다” 깊은 알레고리가 숨어있는 대답이다.
전체적인 번역은 불가능하다. 느낌이 닿는 한두 구절을 인용하고 거기에 에세이 형식의 몇 마디 소감을 더할까 한다. 이름하여 ‘논어 에세이’라 했다.
정자(程子)는 이책 『논어』에 대해 “공부하기를 오래할수록 의미가 심장(深長)함을 느낀다(讀之愈久, 但覺意味深長.)”고 하였다. 안모(安某)도 그런 느낌을 가진다.
맹자는 “사람이 생겨난 이래로 아직 공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은 없었다(自有生民以來, 未有孔子也).”고 했다.
『논어』도 그 반열에 두고 말해야 할 것이다.
『논어』는 공자의 생애 전체에 걸친 기록물이다. 인간이 취하여야 할 모든 행동의 궁극적 지향점이 이책 속에 들어 있다. 공자의 경험과 지식이 농축되어 있다.
『논어』를 읽는 것은 성인 공자를 마주하는 것이 된다.
어쩌면 생민(生民) 이래 인간이 만든 책치고 『논어』를 뛰어넘을 책은 아직 있지 않다면 맹자의 흉내말이 될까.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