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 묘서동처(猫鼠同處)와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 – 권해조 논설위원
오늘은 위정자들에게 규범이 되는 묘서동처(猫鼠同處)와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에 대해 알아본다. 먼저 묘서동처(猫鼠同處)는 중국 당나라 역사책 구당서(舊唐書)에 나오는 말 이다. 이는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이다.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된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고양이와 쥐는 천적(天敵)관계다. 한 자리에 그냥 두면 쥐는 고양이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그래서 굴을 파고 들어와 곡식을 훔쳐먹는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키우곤 했다.
과거에 쥐는 숨어 엎드렸다가 도둑질하는 놈으로, 고양이는 그런 쥐를 붙잡는 엄정한 관리로 비유한 이유였다. 그런데 원수 사이인 둘이 서로 해치지 않고 함께 살고 있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불 보듯 뻔하다. 도둑을 지켜야 할 관리가 그 직분을 포기하고 도둑과 한통속이 된 거다. 위아래가 부정하게 결탁해 나쁜 짓을 일삼고 있다는 얘기다. 통탄할 노릇이다.
구당서(舊唐書)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낙주(洛州)의 조귀(趙貴)라는 사람 집에 고양이와 쥐가 같은 젖을 빨며 사이좋게 지냈다고 한다. 이를 본 그의 상관이 쥐와 고양이를 임금에게 바쳤다. 그러자 대다수 중앙의 관리들이 상서로운 일이라며 기뻐했다. 그러나 오직 최우보(崔佑甫)란 사람만이 “이 사람들이 실성(失性)했다”라며 한탄했다. 도둑인 쥐를 잡아야 할 고양이가 쥐와 손을 잡고 있으니 능히 그럴 만하다. 묘서동처(猫鼠同處)의 유래다.
오늘날 쥐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위법, 탈법과 불공정 등을 서슴치 않는 범법자를, 고양이는 범법자를 처벌, 감시, 감독하거나 공정하게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공무원, 국회의원, 검경, 법관, 등을 비유한다. 국정을 운영하고 책임지는 권력 집단도 물론 고양이에 해당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여야 정치권의 분열과 거듭된 탄핵으로 무정부 상태가 된지 오래다.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이 묘서동처 격이라면, 한 마디로 막 나가는 이판사판(理判事判)의 난장판의 나라가 되었다.
다음은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이다. 모진 바람이 불 때라야 강한 풀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어렵고 위험한 처지를 겪어봐야 인간의 진가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인생은 난관과 역경으로 가득 차 있고, 인간 세상은 염량세태(炎凉世態)라서 잘 나갈 때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지만, 몰락할 때는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歲寒圖)를 보면 논어 자한(子罕)편 제9장에 있는 “세한연후(歲寒然後), 지송백지후조야(知松柏之後彫也)”라는 글이 쓰여 있다. 날씨가 추워진 후라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뒤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는 뜻으로, 위난의 때에 가서야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집안이 가난할 때라야 좋은 아내가 생각나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라야 충신을 알아볼 수 있다.
지금 아픈 것은 아름다워지기 위함이다. 아름다운 종소리를 더 멀리 퍼뜨리려면 종(鐘)이 더 아파야 한다.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아플 때 우는 것은 삼류이고, 아플 때 참는 것은 이류이고, 아픔을 즐기는 것이 일류 인생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여 본다. “서로에게 믿음 주고, 서로가 하나 되는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게 하소서!” 하루속히 우리나라도 안정되고 합천신문 독자들도 과도한 욕심을 버리고 항상 남과 이웃을 돕고 행복하게 사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