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오피니언)칼럼

박근혜와 최순실의 악연

이성동
논설위원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국가안보에 있어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 없다. 5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위협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 투쟁을 일삼고, 근로자들은 산업현장에서 뛰쳐나와 연례행사처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며, 나라의 안위는 바다 건너 남의 일처럼 안이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런 혼미한 정국(政局)에서 정권 초기부터 야당과의 비타협은 물론, 여당과도 불협화음으로 국정을 독선적으로 운영해 국민으로부터 신망을 잃어가던 박대통령 옆에 비선(秘線) 실세 최순실이라는 여인이 있어서 화근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5일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각종 연설문과 발언자료 등을 유출한 ‘위법행위’를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대통령은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라고 해명했지만 그러나 최씨 일가는 대통령의 이름을 등에 업고 국가와 기업의 돈을 자기 돈처럼 주무르고 공무원 인사를 좌우하는 등 국정을 농단한 정황이 날로 밝혀지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명명된 이번 사건은 40여년 전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은 황해도 출신으로 70년대 사이비 종교인 ‘영생교’를 만들어 교주로 행사하였다. <김형욱 회고록>에 따르면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자신을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고 편지를 전했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청와대에서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공주처럼 자란 박근혜가 74년과 79년 5년 사이에 양부모를 모두 흉탄에 잃고 비탄에 빠져 방황하면서 사이비 영생교 교주 최태민 일가와 만남을 통해서 정신적 위안을 받은 것이 악연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70년대 이후에는 최태민이 본부장으로 있었던 ”새마음봉사단“에 박근혜를 총재로 추대해 ‘새마음갖기운동’을 함께 펼쳐나가면서 친분을 쌓아갔다고 한다. 박근혜` 박근령 자매의 분쟁으로 말썽이 많았던 육영재단의 분쟁이 발생한 것도” 박근혜가 최태민과 지나치게 밀착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1990년 8월 14일 노태우 대통령에게 박지만, 박근령이 “누나(언니)를 최태민에서 구해주세요”라는 진정서를 올린 사실이 있었지만 당시 박근혜는 “내가 누구에게 조종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며 최태민의 전횡 의혹을 일축한 사실이 있었다.
권력자의 불운은 최측근에 의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37년 전 박정희 대통령 옆에 차지철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제 2인자로서의 권력을 휘둘러 당시 정보부장 김재규로부터 증오를 사 10, 26 사태가 발생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김재규)가 당시 박근혜 옆에서 최태민이 저지르는 비행을 목격하고 이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나 박근혜양이 최태민을 비호해 각하 앞에서 대질 친국(親鞫)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대통령 다음 실권자인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 가족 앞에서 당한 수모로 10, 26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당시 정보국장들은 증언하고 있다. 로마의 최고 권력자 카이사르를 살해한 사람들 가운데에 그 양아들 부루트스가 있듯이 역사는 권자의 주변에서 그 주인을 배반하는 사건들이 흔히 기록되고 있다. 박정희가 가장 가까웠던 김재규로부터 시해를 당했고, 박근혜 역시 김재규를 화나게 했던 최태민의 딸 최순실에 의해서 정치적 생명을 잃게 되는 악순환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두 문중의 악연이라 할까, 최고 권력자는 항상 주변 인물을 바로 보는 혜안(慧眼)과 그 인물들을 잘 관리하는 능력이 통치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임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