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의 이념과 산업화, 현대사의 새 장을 열게 한 세상을 젊은 세대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3) – 윤명우 재부 초계중학교 제9회 책사 겸 수필가
이후 서독 언론은 한국의 간호사들이 독일 간호사들이 꺼리는 시체를 닦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환자를 정성껏 돌본다고 보도하였다. 이에 독일 기민당 원내총무 닥터 바그너를 비롯한 의원 15명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직접 목격하고 감동을 받아 대정부 건의안을 제출하며 지원에 앞장섰고, 의회의 만장일치로 상업 차관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것이 박정희 대통령을 초청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1964년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청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12월 6일부터 12월 15일까지 9박 10일간 국빈 방문을 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타고 갈 비행기조차 없어 주독 한국대사관을 통하여 독일 정부에 어려움을 호소하였고, 뤼브케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 루프트한자 비행기 특등석을 이용하여 방문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에르하르트 서독 총리와의 회담에서 1억 5천9백만 마르크 차관을 확약받았다. 이 차관은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3년 임금을 담보로 하여 독일 국영은행인 서독재건은행이 차관을 공여하고, 독일 정부 산하 수출신용기구인 헤르메스 신용보험공사가 보증을 선 것이었다. 또한 추가적인 차관 지원 방안도 협의하였다.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공식 방문 5일째에 우리 광부들이 일하고 있는 함보른 탄광을 찾았다. 강당에 들어서는 순간 애국가가 울려 퍼졌고, 우리 광부들은 시커먼 탄가루를 얼굴에 뒤집어쓴 채 간호사들과 함께 대통령 내외를 맞이하였다. 약 500명이 모인 강당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연설을 하였다.
“우리 생전에는 이루지 못하더라도 후손들에게는 가난을 물려주지 맙시다.”
박 대통령이 목 놓아 울자 육영수 여사와 함께 광부와 간호사들 또한 눈물바다가 되었다. 연설이 중단될 정도였다.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떠날 때 광부들은 이구동성으로 “각하! 나도 함께 따라갈래요! 가고 싶어요!”라고 외쳤다. 이는 가난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당시의 기억으로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강력한 지도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48년 8월 15일 건국 이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한미동맹이라는 건국 이념을 실천한 이승만 대통령과 산업화를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는 이렇게 잘살 수 없었을 것이며 행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건국 이후 두 분의 대통령보다 건국 이념을 구현하고 가난을 탈피하여 경제발전을 이룩한 대통령이 있었는지 반문하고 싶다.
오늘날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외국 여행을 다니며 좋은 구경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레저 여행을 만끽한다. 이렇게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으로 성장·발전시킨 것이 누구의 덕분인가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에는 삶의 목적이 “살기 위해서 먹는다”는 형이하학적 철학 관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삶의 목적은 “먹기 위해서 사는 즐거움과 레저를 즐기는 세상”, 즉 행복과 문화의 혜택을 만끽하는 형이상학적 철학 개념으로 변화되었다. 이 이론은 미국 심리학자 메슬로우(Maslow)의 욕구 5단계설에서 주장하듯 물질적 욕구에서 정신적 욕구로 변화되는 과정을 잘 설명한다.
우리나라는 이제 타인에게 인정받고 존경받고 싶은 욕구를 넘어 최상위 자아실현의 단계로 달려가는 과도기적 과정에 있다고 본다. 정치가 바로 서고 국법 질서를 지키며 삼권분립이 명확하게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 조심스럽게 전망해 본다.
건국 이념을 실천하고 경제대국을 이룩한 두 분의 공적을 독재라는 이유만으로 정치권에서 깎아내리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안보관이 무너지면 나라가 없다. 70여 년 동안 피땀 흘려 이룩한 위대한 대한민국을 북한에 넘길 수는 없다.
1960년 7월 전교조가 생겼다가 1961년 5·16 군사혁명 정부는 포고령에 의해 강제 해산시켰다. 이후 1999년 전교조가 합법화되었다. 1981년 제4차 교육과정 개편으로 반공 도덕이 일반 도덕으로 변경되기 시작하였고, 1997년 제7차 교육과정 개편으로 안보교육이 대폭 수정되었다. 반공·안보교육을 받지 못한 20·30·40세대들은 국가관이 미약하다고 본다. 기성세대들은 이러한 세대들에게 국가관을 잘 깨우쳐 주어야 할 것이다.
북한으로부터 위협을 받지 않고 전쟁을 막으며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힘의 균형이 아니라 힘의 우위를 확보하는 길 외에는 없다(There is no way other than securing a superiority of power over North Korea rather than a balance of power).” 남북 회담도 이제는 성과 없이 무의미해졌다.
앞으로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등에서는 반드시 사전투표 제도를 없애고 대만·프랑스·일본 등과 같이 전자개표기도 폐지하여 수개표만으로 국민의 뜻이 정확히 반영된 사람들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보신주의에만 연연하지 말고 사전투표 제도를 폐지하고 수개표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모두 사표를 던지고 단식까지 하며 관철시켜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미래가 없고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는 공산화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싸우는 국회의원들은 보이지 않고 보신주의에만 급급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숫자를 앞세워 법을 좌지우지하며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어 우리는 미래가 없다고 본다. 사전투표 제도를 폐지하고 반드시 수개표를 통해 국민이 선택한 투표권이 정확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두환 대통령께서 영면하신 지도 4주기가 지났는데 아직도 갈 곳이 없다. 10·26 사태라는 운명 속에서 대통령이 되신 분이다. 욕심이 없다. 옛말에 “불효한 자식도 그 아버지의 자식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 누구가 수군대더라도 고향의 대통령이다. 우리 모두 감싸 안아야 한다. 국가의 균형 발전을 위해 국정을 이끌어 온 분이다.
그 당시 사회질서가 어지럽고 북한의 전쟁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법질서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난 사태를 정치권에서 그 공적까지 매몰시켜 버렸다. 당시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사회 혼란의 틈을 이용하여 북한이 침략했을지도 모른다.
1980년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8.7%였던 것이 1982년도에는 예산 동결과 긴축 재정으로 2.4%로 낮아졌고, 그때가 물가가 오르지 않아 살기가 가장 좋았다고들 했다.
과거를 용서하고 미래로 가자. 하루속히 고향에서 영면하실 수 있도록 향우님들이 먼저 뜻을 모아야 한다. 오직 우리 합천 군민과 향우님들의 따뜻한 사랑과 고향의 아름다움을 실천해 보자. 언젠가 우리도 돌아갈 곳은 이곳, 바로 나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