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도 세월 따라 세일한다 – 변명규
2025년 정초 베트남 사파지역 여행을 떠났다. 판시판산이 사파 여행의 주인이다. 높이 3,143미터로 베트남과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그 정상을 오르는 것이 이번 여행의 클라이맥스다. 한데 우리 일행 8명은 모두 80대라 가이드가 걱정을 했다. 고산병 때문이다. 정상에 올라갈 것인지 중간에서 그만둘 것인지 각자가 결정하라고 했다. 일행 중 다른 팀 5명은 젊어서 가기로 했고, 우리 일행 8명은 나 혼자만 가가겠다고 했다. 한 시간 전쯤 고산병 약을 먹긴 했지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포기한 친구들은 나보다 나이가 2~3년이나 적은 친구들이다. 내가 잘 못 된 것인지 그 친구들이 잘 못 된 것인지…….
이번 여행의 주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포기라니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서서히 올라가다 트랩을 타고 다시 올랐다. 트랩에서 내려 걷는데 갑자기 어지러웠다. 멈춰야 했다. 거기다 속이 매스꺼웠다. 걱정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로구나 겁이 났다. 멈춰서 호흡을 가다듬고 서 있으니 어지러움이 가셨다. 그 시간이 3~4초 정도 극히 짧았다. 그런데 조금 오르니 다시 어지러웠다. 다시 멈췄다. 이내 괜찮았다. 이렇게 서너 번 반복되더니 서서히 적응되었다. 매스꺼움도 멈췄다. 선험자들의 말에 의하면 고산지대는 서서히 올라가며 적응해야 하는데 갑자기 올라(케이블카, 푸니쿨라, 트랩 등)가서 내리면 적응이 안 되어 고산병 증세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주위의 경치가 정신을 빼앗았다. 정상 부근은 기온이 낮아 나뭇잎에 서리가 얼러붙어 흰 꽃이 피어 있었다. 상고대라고 하는 은빛 보석이다. 깨달음의 길도 오르고 천국으로 가는 길(이 이름은 내가 붙였음)도 올랐는데 구름 속으로 올라가며 몸과 구름이 한 몸 되어 신선들의 세계로 가는 기분이 들었다. 촉촉한 습기가 몸을 감싸 안는다. 하지만 추위는 저만치 물러서 있어 다행이었다.
정상은 별천지였다. 오히려 정상 부근은 구름이 없었다. 구름도 눈치가 있어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라며 자리를 양보해 준 것이리라. 우선 많은 관객이 감탄사를 내뱉고, 사진 촬영(포토존엔 줄을 서서 기다리고)에 열을 올리고, 이쪽저쪽 위아래로 다니며 사통팔달의 경치에 취해 정신이 없었다. 그들에게 전염되듯이 나도 정신없이 경치에 취했다. 내려다 보이는 사찰 건물들, 치솟은 탑, 높은 좌대 위에 앉은 부처님, 숲에 얽어 붙은 상고대의 은빛 보석, 첩첩이 이어지는 산봉우리에 구름이 어깨띠를 두르고 그들만의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여기가 천국이 아닐까? 밤이면 신선이 노닐고, 천사가 소풍을 즐기는 곳이 아닐까? 이 아름다운 자연의 세계, 나는 거기서 외톨이가 되었지만 그 많은 사람들 속으로 다니며 모두가 정다운 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한참 경치에 빼앗긴 정신을 되찾아 나도 촬영에 나섰다. 최고봉 표식 스태인리스로 만든 사각뿔 앞에서 차례를 기다려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촬영하였다. 그리고 사방의 경치를 폰으로 직접 촬영하여 기념을 만들었다.
이렇게 무사히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왔다. 같이 가지 못한 친구들이 아쉬웠다. 아니 그들이 더 아쉬웠을 것이다. 여행의 가장 핵심 부분을 생략했으니 여행의 세일이라 붙여 본다. 세월이 흘러 기력이 잠식되니 삶의 모든 부분이 세일을 하고 있다. 정상을 놓쳐버린 세일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여행은 즐겁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