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아래 서면
문경자
논설위원
내가 살던 고향에는 느티나무가 있다. 나이는 무려 사백오십 세가 넘었다. 동네 사람들은 신을 모시 듯이 귀하게 여겼다. 어떤 소원이라도 빌면 들어 준다고 믿고 가까이했다. 이웃 마을에도 느티나무가 있지만 별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일부러 찾아가는 번거로움이 단점이었다. 반면에 우리동네 느티나무는 동네 안방 같은 역할을 했다. 그곳에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가지마다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나뭇가지 하나라도 다칠까 봐 바람도 비껴갔다.
이렇게 살아가는 느티나무가 동네서 큰 자랑거리였다. 군 보호수로 대접 받는 나무로 지정이 되어 사람보다 위대해 보였다. 느티나무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희망을 때로는 슬픔을 기억하게 하는 면도 있었다. 느티나무에게 가뭄이 들면 비를 내리게 해달라면서 유명한 점쟁이를 불러 굿을 하기도 했다. 어느 해는 정말 비가 내려서 효험이 있다고 믿었다. 동네서 나쁜 일이 일어나면 액운을 쫓아내는 굿 마당을 벌려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날아 가던 까마귀도 가지에 앉아 구경을 하였다. 그때 기억을 떠올려보면 고깔을 쓴 여자는 훨훨 날아가는 귀신같이 보였다. 이상한 소리에 정말 귀신이 나를 노려 보는 듯 하였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놀랄까 봐 손으로 눈을 가려주기도 했다. 궁금하여 눈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쳐다 보기도 했다. 신나게 굿을 보고 나면 어른들은 마음이 홀가분해졌다며 가벼운 발걸음을 돌렸다. 어머니도 두 손을 모아 비는 것을 보았다. 하늘은 구름이 가려져 비는 어머니 얼굴이 무섭게 보였다.
느티나무는 몸체가 둥글고 키도 크다. 오래된 나무라 몸통에는 큰 구멍이 나서 새 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새끼들도 태어나 어미에게 먹이를 달라고 짹짹 울기도 했다. 귀여운 모습을 보기도 하고 꼬챙이로 새끼들을 건드려 보기도 한다. 어미 새는 느티나무 위에 앉아 큰 소리로 위협을 하지만 통하지가 않았다. 아이들도 키 재기기와 팔을 벌려 안아 보기도 했다. 신발을 벋고 손바닥에 침을 뱉고 나무에 올랐다. 어림도 없는 놀이에 몰두하였다. 두 발만 발버둥 쳤다. 나무도 얼마나 시달렸으면 몸에 상처가 났을까! 아버지 등을 타지는 못해도 느티나무 등은 하도 많이 타서 반질반질하였다. 미끄러져 내려와 나무를 올려다보면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눈 부시다.
느티나무는 마을을 다 볼 수가 있다. 동네 어르신 같은 존재로 여겼다. 엿장수 아저씨는 느티나무 아래로 어린이들을 불러 모았다.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아이스케키 소년도 쉬어가는 느티나무 그늘. 그곳에 앉으면 장사도 잘 되었다. 느티나무가 도와준다면서 절을 하였다. 어느 동네 느티나무는 벼락을 맞아 시커먼 괴물로 변하기도 하였다. 소문에 의하면 부정을 탄 것이라 모두 조심해서 살자는 말도 전해졌다. 그런 흠집 하나 없이 지금까지 잘 견디어 온 우리동네 느티나무가 심성이 고운 사람과도 같다. 봄이면 푸른 새싹을 내보내고 여름에는 쉬어 가는 나그네의 쉼터가 되었다. 자연이 주는 시원한 바람은 에어컨 바람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 덕분에 아직은 잦은 병치레 하지 않고 잘 지내니 효험이 있는지 모를 일이다. 믿거나 말거나.
느티나무를 볼 때면 푸근한 어머니 품속 같다. 슬플 때나 외로울 때 찾아가서 그 아래 앉아 있노라면 바람이 찾아와 동무해준다. 나뭇잎을 흔들어 준다. 그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금방 지나간 비행기가 하얀 줄을 그려놓고 간다. 그러다 보면 마음은 어느새 고요하다. 동네 사람들은 바쁘게 들에 나가고 소 먹이는 아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간다. 어미 소는 쇠똥 묻은 엉덩이를 흔들며 가다가 음매 하고 송아지를 부른다. 송아지는 어느새 어미 소 뒤에 붙어 따라간다. 어미 소도 새끼 찾는데 내 어머니는 뭐하노! 나는 딱히 할일 없이 앉아 느티나무에 기대어 생각을 한다. 어머니 혹시 나를 미워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공부만 조금 잘해도 예뻐 해줄 텐데. 구구단도 못 외운다. 지금도 숫자에는 약해서 어지간하면 잔돈을 주는 데로 받아온다. 우리 옆집에 사는 친구는 주산 왕 중 왕이었다. 지난 가을 향우회 할 때 만났는데 왕도 별 수가 없이 머리는 대머리고 얼굴은 완전 주판 알처럼 모가 나있었다. 배는 살살 고프고 힘도 없다. 소나 한 마리 키우면 소 먹이는 목동이 되었을 긴데. 느티나무는 참 부럽다. 꾸중하는 어미도 없고 아비도 없으니 얼마나 좋을까!
느티나무는 바람을 준다. 그 바람이 사람들을 모이게 하였다. 지금도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과 이웃동네 사람들까지 와서 즐긴다. 지나가는 노랑 택시 아저씨도 지나간다. 큰 길로 변해버린 동네가 옛날 모습은 거의 없어졌다. 운동 기구와 나무로 만든 벤치가 놓여 있었다. 운동기구에 발을 올려 한 번 움직여 보았다. 녹이 슬어서 삑 소리가 났다. 그래도 느티나무는 묵묵히 동네를 지키고 있었다.
며칠 전 친척 결혼식에 갔다가 충격적인 소식을 들려주었다. 우리 동네 느티나무가 죽었다는 말을 전하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하고 가슴이 멍멍했다. 동네마다 더러 죽는 느티나무도 있지만 우리동네 느티나무는 죽는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사연 인즉 느티나무아래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약을 먹여서 죽었다는 것이다. 0씨라는 사람은 외지에서 들어와 그 논을 샀다. 느티나무가 그늘을 지워 벼가 자라지 못한다고 생각 한끝에 그런 못된 짓을 했다니 군 지정 보호수로 애지중지 하는 보물을 죽이다니 기가 막혔다. 서서히 한 쪽 나무 잎이 말라 가는 것을 수상히 여긴 마을 사람들의 추적 끝에 죄인을 알아 내었다. 결국은 동네서 스스로 떠났다. 군청에서 손을 빨리 써서 그나마 반쪽이라도 살렸다니 다행이었다. 사람을 죽인 거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지역마다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 주변에 알려서 전문의에게 도움을 받을 수가 있어 다행이었다. 우리와 함께 지내온 느티나무 가뭄이 들면 비를 내리게 하고 동네에 대우를 받는 몸이시다. 감히 어디서 그렇게 나쁜 사람이 동네에 들어왔는지! 그래서 지금은 동네 마다 외지 사람이 들어오면 동네 물을 흐린다 하여 세심한 관심과 사람 됨됨이를 보고 살게 한다는 말도 들렸다.
겨우 살아나신 희로애락을 같이 한 느티나무 생각에 잠겨보았다. 누구나 한 가지 기억을 만들어 주고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해준 느티나무 아래 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