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소리 – 문경자 수필가

햇빛이 쨍쨍한 한낮 동네 화단에서 여름에는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제비꽃이 피어 있고 천사의 나팔꽃이 피어 있었다. 화단 가까이에 고개를 숙이고 소리를 찾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바짝 다가갔다. 풀들이 아직은 너무 파래서 여름의 기가 살아 숨쉬는 듯했다. 아니야 아직은 갈 데가 안 됐다고 여름이 속삭였다. 소리가 나는 곳을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벌레는 보이지 않았다. 벌레가 위장을 하고 풀잎 뒤에나 꽃속에서 훔쳐보며 바보라고 놀릴지 몰라 자꾸 궁금증이 생겨 발길을 옮기지 못하고 한참을 지켜보아도 눈에 띄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 눈으로는 찾지를 못하겠다. 초등학교 울타리 감나무 가지에 붙어서 매미는 죽으라 울어 대고 풋감은 아직 여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낮은 가지에 달려있는 감을 손 안에 넣고 만져보니 감촉이 너무 좋았다. 매끈하고 차며 껍질이 반질반질해서 똑 따고 싶었다. 이렇게 자라기 위해서 얼마나 고초를 겪었을까! 높이 달려있는 감은 손에 닿지 않아 조바심을 낼 일도 없다. 벌레가 먹을 일도 덜하다. 낮은 곳에 달려있는 감은 지나치는 벌레들이 쉽게 달라붙어 곰팡이를 키울 수도 있다. 곁에 있는 장미나무가 몰골이 참혹하다. 나무 자체를 거추장스럽다고 베는가 하면 하얀 가루 같은 것들이 다닥다닥 붙어 봄의 여왕처럼 군림하던 장미꽃의 요염한 자태는 사라진 지 오래다. 아무도 기억을 못하고 있었다. 언제 피고 지는지 그저 지나가면 잊어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벌레가 갉아먹고 가냘픈 몸매는 관절이 생겨 휘어져 버린다. 벌레들의 놀이터가 되어 길을 내어주니 그래도 삶은 허망하지 않다.
바로 앞을 지나가는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지탱하며 살살 걸었다. 백발의 파마머리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얼굴에는 거뭇한 반점이 피었다. 입술은 허옇게 말라서 더 초라하게 보였다. 한때는 젊어서 탄력 있는 피부와 빠른 걸음으로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살아온 세월의 시간들이 엿보였다. 그늘을 밟고 지나가는 파란 슬리퍼가 질질 끌려 간다. 부모들의 모습은 거의 비슷하지만 그 삶에 좌우하는 것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자식들이 자라서 큰 재목이 되고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걱정없이 사는 모습을 보며, 부모는 나야 그것으로 족하다고 한다.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도 금방 지나고 반항하며 때로는 가슴을 철렁하게도 하고, 때로는 성공을 하여 세상에서 기쁨을 주기도 한다. 모든 것이 지나가면 기쁜 날과 희망이 넘치는 날이 오고 간다. 산다는 것이 다 그런 것이라 한다. 할머니가 계속해서 여기저기를 훑어보며 외로운 그림자를 만들며 가는 모습에 씁쓸한 내 모습이 겹쳐졌다.
자나깨나 똑같은 일상이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 살아가는 일도 즐거운 일이다.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말을 걸어본다. 그 순간은 그 소리가 누군가 부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귓가에 들려주는 노래가 있어 좋았다. 벌레는 볼 수가 없지만 마음을 달래 주는 웃음소리라 엿듣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되었다. 그 소리가 왜 그렇게 반가웠을까! 생각을 해보면 내면에 언제나 그리움이 도사리고 있었나 보다. 벌레가 운다고 누가 귀를 기울려 들어 볼까! 가을이 온다는 것을 짐작을 할까! 계절이 돌아오고 바뀌면 감당하기 어려운 맘속의 멍울진 것은 더 참기 어려운 것이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이라 해도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더 슬프게 만든다.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고 노을이 지는 저녁이면 혹시나 올까 하는 마음이 어느 때는 불쑥 고개를 내민다. 부질없는 생각이라 해도 괜찮아 살아가는 일이 희망이 되고 힘이 된다. 어디로 여행을 떠나서 언제쯤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 뿐인가 벌레가 우는 작은 소리는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고모 남편 모든 게 오늘따라 다 기억나는 것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언젠가 다 떠날 테다. 그리운 사람들은 남아서 그리워하다가 슬퍼하다가 떠나 갈 것이다. 사는 일이 다 그렇다고 하며 할아버지는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고 있는 손녀에게“슬퍼하지도 말고 에미 없이 자라도 기죽지 말고, 살아야 하느니라! 이다음에 어른이 되어 너도 아이를 키우고 살아보면 네 에미의 심정을 알 것이다. 저 벌레들도 부모가 그리워 우는지 모른다, 할배 말 잘 듣고 자라면 세상에 욕먹을 일이 오데 있겠노. 착하게 자라면 네 에미도 좋아할 것이다. 정지에서 우는 벌레들 소리가 처량하구나. 너희들도 저와 같구나.” 할아버지가 있어 벌레우는 소리가 자장가로 들렸던 그때가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꿈속에서 만날 수 있을지 다정한 엄마의 모습을 그리며 캄캄한 세상속으로 스며들었다. 밤이 길면 꿈속에서 만날 수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루 밑에 벌레들도 합창을 하였다. 할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주름진 얼굴이 흔들릴 때 호롱불을 끄고 자던 때가 기억속에 아직도 남아있다.
작은 벌레들 울음소리는 참 고요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것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울어 대는 소리는 어쩌면 다른 악기들의 소리보다 더 아름답다. 이제 무더운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온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워진다. 햇빛이 쨍쨍할 때 캄캄한 밤중에 울든, 어디에서 울든 벌레소리는 너무도 높고 깊은 울림을 주었다. 벌레소리 들으며 깊어 가는 여름 밤과 다가올 가을 소식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