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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세이(7)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다 – 안병국 교수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라는 말이 있다.
위 여섯자의 말은 사마천의 『사기』 <자객열전>이 그 출전으로, 예양(豫讓)과 지백(知伯)의 충절과 의리를 언급할 때 즐겨 이야기 된다. 이 고사에서 살인자인 예양을 협객(俠客)이나 유협(遊俠)으로 높인 것은 개인적인 은원(恩怨)이 아닌 자신의 가치를 인정한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린 그 행위를 높이 샀기 때문이다.
예양은 ‘유협’이었다. 흔히 ‘유협’은 법의 테두리 밖에서 사람들을 돕는 사나이들의 집단으로 정의되었다. 협(俠)과 의(義)를 대의명분으로 삼고 행동했다는 관점의 제시에서 그렇다.
사마천은 <유협열전>의 서두에서 이렇게 썼다.

“지금 유협은 그 행위가 비록 정의에 의거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말에는 반드시 신용이 있었고, 행동은 과감하였으며 이미 승낙한 일은 반드시 성의를 다하였다. 또한 자신의 몸을 버리고 남의 고난에 뛰어들 때에는 생사를 돌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고, 그 공덕을 내세우는 것을 오히려 수치로 삼았다. 아마도 이밖에도 찬미할 점이 많을 것이다(今遊俠 其行雖不軌於正義, 然其言必信, 其行必果, 已諾必誠. 不愛其軀, 赴士之阨困, 旣已存亡死生矣. 而不矜其能, 羞伐其德. 蓋亦有足多者焉.)

예양은 아는 대로 진(晉)나라의 자객이다. 자신이 섬기던 지백을 위해 조양자(趙襄子)를 암살하려다 여러 차례 실패하고 결국 자결한 인물이다. 그는 지백에게 발탁되어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지백은 그의 사람됨을 높이 평가했고 신임했다. 그는 지백이 자기를 알아주었다 하여 보답을 다짐한다.
“신이 범씨와 중항씨를 섬겼으나, 둘 다 모두 저를 <보통사람>으로 대우하였습니다. 하여 저 또한 <보통사람>으로 그들에게 보답하였을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백은 저를 <국사(國士)>로 대우하였으므로, 저도 <국사>로서 지백에게 보답하려는 것입니다(臣事範中行氏, 範中行氏皆衆人遇我. 我故衆人報之. 至於智伯, 國士遇我, 我故國士報之.)”고 하였다. 또 스스로를 충신이라 생각하고 “충신은 명절(名節)을 위하여 죽을 의무가 있다(忠臣有死名之義)”고 말한다. 그 가치관이 장엄한 자기 희생으로 이어져 인구에 회자되었다.
세력 다툼에서 지백이 조양자에게 패배하고 ‘지백은 그의 두개골에 옻칠을 해서 술잔(漆其頭以爲飮器, ’음기’를 혹자는 ‘요강’이라 말하기도 한다)으로 사용되는 수모를 입었다. 예양은 지백의 복수를 다짐하며 이렇게 말한다.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꾸민다고 했다. 이제 지백이 나를 알아 주었으니 기필코 원수를 갚고 죽음으로써 지백에게 보답한다면, 내 혼백이 부끄럽지 아니할 것이다(士爲知己者死, 女爲說己者容. 以報智伯, 則吾魂魄不愧矣.).’

예양은 변장을 하고 몇 번이나 조양자를 습격했으나 실패했다.
조양자가 예양을 “저 사람은 의인이다(彼義人也)”라며 풀어주자 피부를 몰라보게 만들어 또 암살을 기도했다. ‘또’ 실패하자 조양자의 옷을 달라고 하여 옷을 찌른 뒤 ‘스스로 칼 위로 엎어져(遂伏劍自殺)’ 목숨을 끊었다.
예양의 죽음은 장엄하다. 그가 죽던 날 “조(趙)나라 지사들은 이 소식을 듣고, 모두 예양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死之日) 趙國志士聞之 皆爲涕泣.]”고 적고 있다. 예양 죽은 후 40여 년 후 지(軹) 땅의 섭정(聶政)의 죽음에 비할 수 있다. “(섭정은) 큰소리를 외치며 수십명을 쳐 죽이고, 스스로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을 도려냈으며, 자신의 배를 갈라 창자를 긁어내고는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聶政大呼 所撃殺者數十人, 因自皮面決眼, 自屠出腸, 遂以死)”
고 씌여져 있다.
옛날 선비나 유협들은 권력이나 재물 때문에 움직이지 않았고, 자신을 진심으로 인정해주는 이를 위해 자기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죽음도 장엄하고 화려하게 장식했다.
사(士), 곧 선비가 목숨을 바칠 정도로 중요하게 여긴 것은 재물이나 권력이 아니라,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었다. ‘사위지기자사’ 일화가 단지 선비의 충(忠)이나 의(義)를 강조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올바른 방식’에 대한 교훈을 담은 이야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어지는 글이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꾸민다(女爲說己者容)’는 이야기인데 이는 단순한 미적 욕망에서가 아닌 사랑과 헌신의 표현으로 이해해야 옳을 것이다. 굳이 사(士)와 여(女)를 병치시킨 것은 단순한 남녀의 속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주고 존중해주는 이를 위해 헌신한다”는 남녀를 무론한 넓은 인간관계의 원리를 강조한 말로 이해해야 한다.
요즈음 사람들은 자기에게 뛰어난 무엇이 있으면 남이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것을 몰라주면 섭섭해 하는 감정을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몰라주는 그것을 ‘불평거리’로 삼는다.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다.
주자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터럭만큼의 불평의 뜻도 없는 듯하는 것은 ‘덕을 이룬 군자(成德之君子)’가 아니면 어렵다”고 했다. 배움에 끝이 있을 수 없지만 있다면 ‘배움의 끝 단계(學之終也)’에서나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헌문(憲問)> 32장의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 능(能)하지 못함을 걱정하라(不患人之不己知, 患其無能也)”는 말은, 외부의 인정보다 자기 수양과 능력 향상에 초점을 두고, 그 근심의 대상은 ‘나를 알아주지 않음’이 아니라 ‘내 무능’ 내지는 ‘나의 탓’으로 옮긴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자의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 태도”가 수양의 완성에 이른 군자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즉, 수양은 배움과 성찰을 통해 내면의 덕을 다듬고,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안정으로 완성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자기의 실력이나 능력을 꾸준하게 갈고닦아 나아갈 뿐,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여 신경 쓰거나 노여워하거나 걱정할 것까지는 없을 것이다. 남의 반응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말고 자기 자신에 집중하라는— 타인의 인정해 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 ‘불온(不慍)’이 군자의 태도임은 누구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제 덕이 있는 군자가 되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랴.

  • 안 교수님의 「논어 에세이」 제4회 원고가 편집상의 착오로 누락되어 제7회에 게재되었습니다. 연재 순서가 바뀐 점에 대해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