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상달은 시제(時祭) 달이다
권해조
논설위원
묘제(墓祭)에 다녀와서
지난 주말 고향 대병에 가서 가족 친족들과 함께 시제(時祭)를 지내고 왔다. 오랜만에 친족들과 만나 유익한 덕담도 나누고 선대들의 고마움을 생각하는 보람 있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지속된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산물로 음력 10월에는 선대 묘소에 가서 묘제(墓祭)를 올리는 풍습이 있다. 이를 시사(時祀), 또는 시제(時祭)라고도 한다. 물론 가법(家法)이나 집안형편, 종교 등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아직도 대부분 집안, 문중 연례행사로 치러지고 있다.
조선시대 조정에서는 시향(時享)이라 하여 해마다 2월, 5월, 8월, 11월 연4회 종묘에서 제를 올렸다. 조선시대 통치 기본법인 경국대전(1485년 시행한 을사대전)에 의하면 백성들도 자손의 신분(品級)에 따라 2대-4대로 달랐지만 사당(祠堂)이나 묘소에 가서 제를 지냈다. 그리고 처음에는 아들 딸 구분 없이 돌아가며 모시다가 17세기 이후 주자가례(朱子家禮) 영향으로 제사예법도 부계(父系), 장자(長子) 친족중심의 문중으로 변했다.
현행 가정의례준칙에 의하면 제례(祭禮)는 기제(忌祭), 절사(節祀), 연시제(年時祭)를 들고 있다. 제례는 제사를 지내는 예(禮)를 말하며, 제사는 선조의 사망하신 날을 맞이하여 추모의 정을 잊지 못하고 살아계실 때 봉양에 미진했던 불효의 마음을 사(謝)하는 추도의식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통상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는 4대 봉제사(四代奉祭祀)로 세상을 떠나신 기일(忌日)에 장손 집에서 기제(忌祭)를 올리고, 5-8대 선대들은 묘소나 마을 재실에서 묘제(墓祭)를 올리고 있다. 묘제는 4월 한식(寒食)이나 10월중에 올리지만, 통상 음력 10월중에 택일하여 지내고 있다. 그리고 4대봉제사는 아들(子), 손자(孫), 증손(曾孫), 현손(玄孫) 등 8촌지간의 친척들이 모이지만, 묘제는 내손(來孫), 잉손(仍孫), 곤손(昆孫), 운손(雲孫) 까지 16촌 친족들이 모여 제를 올리게 되며, 통상 각 종중별로 매년 유사(有司)를 정하여 제를 올리고 있다.
최근에 서양문물의 급속한 유입으로 생활전반에 많은 변화와 함께 옛날 씨족 농경사회와 유교사상의 전통에서 비롯된 관혼상제(冠婚喪祭)가 언제 바뀔지 모른다. 오늘날 교통이 발달되어 전국이 1일 생활권이 되었지만, 친척들이 해외나 멀리 흩어져 살고, 생업에 매달려 시제에 참석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여러 곳에 흩어진 조상들의 묘소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후손들이 많다. 그리고 앞으로 화장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고 도시인들은 공동묘지에 모시는 경우가 많아 묘사도 얼마나 지속될지 문제다. 그리고 지금은 분업화된 시대로 전문 제사음식 대행업체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가능한 제사에 올리는 음식이니 가족들이 직접 간소하고도 정성을 들여 제수(祭需)를 준비하고 자손들이 함께 묘사에 참석하여 선조들의 묘소도 확인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해마다 묘사 때가 되면 어린 유년시절 생각이 난다. 당시 유난히도 춥던 초겨울에 내의도 없는 무명옷에 검정고무신을 신고 흩어져 있는 여러 산소를 찾아 제를 지내고, 곶감과 엿, 인절미 한 조각을 얻어먹던 추억이 잊을 수 없다.
제사(祭祀)는 조상을 공경하는 의식절차이지만 자손의 도리이며 효행의 발로이다. 효(孝)는 5천년 우리민족의 힘의 원천이며 가정과 사회, 나라를 살리는 원동력으로 우리 겨레가 가직해온 고귀한 정신문화이고 21세기를 선도할 덕목이다. 따라서 앞으로 가능한 각종 제사에 참석해서 정성을 다하여 조상들의 은덕에 감사를 드려야 한다. 차제에 오랜만에 친족들이 모여서 조상에 제도 올리고 차려진 음식도 들면서 그동안 못했던 가족회의도 하고 덕담도 나누면서 유익한 시간을 갖는 우리의 고유 미풍양속(美風良俗)의 의미도 새겨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