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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때 ‘삼가 의병단(三嘉 義兵團)’은 ‘정의에 앞장서는 남명 및 내암 정신’이다. (2)

조찬용
삼가장터 3·1만세운동 기념사업회장

이와 같이 정미의병전쟁 때인 1908년 5월 18일 ‘삼가 의병단(30여 명)’의 김화숙 김찬숙 한치문 김우옥 김응오 장명언 이차봉 이소봉 등 8명(모두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이 삼가면 하금리 뒷산에서 일본 순사에 의해 모두 순국했고, 도피한 박수길 김팔용 이두익 성만석 신상호 김화서 심낙준 전성구 등 8명(모두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도 그후 체포 또는 교전 중 모두 순국했다.
1907년 11월~1909년 2월에 조직된 ‘삼가 의병단(三嘉 義兵團)’은 의병대장인 삼가군 덕지면 갈전(가회면 함방리)의 김화서(金化瑞, 1862년생, 1910.10.31. 교수형, 애국장)를 비롯한 거창군 가조면 안금마을 심낙준(沈洛俊, 부대장, 1874년생, 1910.10.31 교수형, 애국장), 합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전성구(全聖九, 1875년 전북 김제 출생, 1910년 궐석 교형 언도, 1934년 4월 체포, 순국, 애국장), 김유준(金有俊, 1878년생, 1909년 5월 체포, 징역 10년, 애족장), 거창 가북면의 김재한(全在漢, 1869년생, 1909년 체포, 징역 10년, 애족장), 김상래(1882년생, 1909년 체포, 징역 10년, 애족장), 오낙삼(吳洛三, 1879년생, 1909년 체포, 징역 10년, 애족장), 거창 남상면의 변원석(卞元石, 1879년생, 1909년 체포, 징역 10년, 애족장), 거창 남상면의 변원화(卞元和, 1879년생, 1909년 체포, 징역 10년), 삼가군 덕지면 갈전(가회면 함방리)의 최남수(崔南守, 1868년생, 1909년 체포, 징역 10년, 애족장), 거창 남상면의 전재관(全在寬, 1875년생, 1909년 체포, 징역 10년, 애족장), 김문점(金文點, 1881년생, 1909년 체포, 징역 10년, 애족장), 송영수(宋永秀, 1858년생, 1909년 7월 체포, 징역 5년, 애족장) 등이 있다. 이 의병단이 의병전쟁을 하다가 1908년 순국한 박수길 김팔용 이차봉 성만석 신상호 등과 같은 ‘삼가 의병단’ 소속으로 판단된다.

삼가 의병단의 의병 전쟁은, 기미년 삼가·대병·대양·초계·묘산 등 합천 3·1만세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는 남명 조식과 내암 정인홍의 민본사상과 기절(氣節), 즉 기개와 절조(節操)를 숭상하는 경상우도인 특유의 ‘정의에 앞장서는 정신’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미7조약(1907년)으로 촉발된 제2차 의병전쟁 때인 1908년에, 삼가 지역에서 박수길 김팔용 이차봉·소봉(산포수) 김화숙·찬숙 한치문 김우옥 김응오 장명언 김화서 이두익 성만석 신상호 등이 일경 주재소 및 우편소 습격과 군자금 모집 등 항일 독립투쟁을 하다가 16명이 순국했다. 이를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 을사늑약 102년인 2007년 11월 17일 필자가 비문을 지은 ‘정미의병전쟁 삼가 의병장 순국 기념비(丁未義兵戰爭 三嘉 義兵將 殉國 紀念碑)’를 삼가장터 3·1만세운동 기념탑 옆에 세웠다.
대한제국 때 의병전쟁을 한 ‘삼가 의병단’의 의병장 26명(순국 16명, 옥고 10명)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의 책무다.
그러나 ‘정미의병전쟁 삼가 의병장 순국 기념비’에 17명의 이름을 새겨 넣지 못했다. 이중 애국장(순국자)은 김화서 심낙준 전성구 박수길 이두익 성만석 신상호 등 7명, 애족장은 김유준 김재한 김상래 오낙삼 변원석 변원화(미추서) 최남수 전재관 김문점 송영수 등 10명이다. 이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워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의 책무이리라. (끝)
*참고문헌: 폭도에 관한 편책·編冊(일본 경무국), 판결문, 동아일보 1934년 10월 21일, 독립유공자 공훈록(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