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여론마당(오피니언)

冬至

허종학
가회중학교 재단이사장

가을을 채 느끼기도 전에 겨울이 되어버리고 새 달력을 걸어놓고 올해를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올해의 달력이 달랑 한 장만 남았다. 그것도 올해의 마지막 며칠을 남겨두지 않은 아쉬움을 남긴 채…….
올해의 여름도 유난히 덥고 겨울도 유난히 춥다. 정치판은 개판이 되어 의리도 없고 윤리, 도덕도 무너지고 배신의 정치가 옳은 것처럼 난장판이 되고 국민들 먹고 사는 데는 그 어느 때보다 힘이 든다. 세계경제강국 10위의 한국의 정치현상을 세계인들은 하찮은 동물에 비유하고 있어 그 창피스러움에 얼굴이 붉어진다.
국내사정은 그만두고라도 호시탐탐 남침기회만 노리고 있는 이북에게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정당인, 정치인들은 자기들만의 이익이나 대권에 눈이 어두워 누구하나 나라 걱정하는 사람 없으니 우리 한국의 미래가 감히 점쳐지기도 한다.
在下者는 有口無言이다. 밑에 있는 사람은 입은 있으나 말을 못한다는 뜻이다. 현실을 바라보면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미어짐에도 소, 닭 쳐다보듯이 보고만 있어야 하는 서민들의 서러움이 너무도 충격적이다. 이 와중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다.
오늘은 2016년 12월 21일 동짓날이다.
동지는 글자그대로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24절기의 22번째 절기로서 1년 중 밤이 가장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동지가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에 들면 노동지라고 하는데 애동지가 드는 해는 그해 겨울이 춥고 노동지가 드는 해는 춥지 않다고 한다.
우리조상님들께서는 동지는 작은설이라 하여 설 다음 가는 경사스런 날로 생각했다. 또 동지가 지나면 주역을 하시는 분이나 철학을 하시는 분께서 운세도 내년의 운세에 따른다고 한다.
동지가 지나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로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늘이 동지라서 이제 꼼짝없이 한 살 더 먹으니 80노인이 되는구나! 하고 별기분이 좋지 않은데 노동지라고 저녁 팥죽을 먹고 있는데 느닷없이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손녀여식이 할아버지 팥죽잡수시지 마세요! 한다. 왜 그러니 하니 팥죽잡수면 나이 한 살 더 먹으니 할아버지가 늙으시잖아요. 할아버지 늙으면 우린 싫어요! 하며 정색을 한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팥죽이기에 별미라고 아무 뜻 없이 몇 술 뜨고 있는데 손녀의 그 말에 팥죽 숟가락을 들든 내 몸이 전율을 느끼면서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늙고 병드는 것이 본인인 나에게도 싫지만 내주위의 모든 사람 특히 손자, 손녀들에게까지 마음의 상처를 주는구나 하며 생각을 하니 주책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몹시 마음이 상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살날도 그렇게 많이 남은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죽어도 그렇고 살아도 그렇다.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거나 욕을 얻어먹어서는 안 되고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올해도 열심히 노력하고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고 죄 짖지 않고 마음 비우면서 살겠노라고 수십 번 다짐을 해보지만 그게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으니 또 올 한해도 상처와 후회만 남는 어두운 여정으로 마감을 하는 것 같다.
사노라면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남의 마음을 아프게도 하고 상하게도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에 상처를 준 사람이나 상처를 받은 사람 모두에게 용서받고 용서하고 싶어진다. 곧 새해아침이 밝아지겠지. 날마다 해마다 뜨고 지는 해이지만 올해도 두 손 조아리고 열심히 인간답게 살겠노라고 소원을 빌어보고 싶다.
우리는 세월이 가는 것을 보지도 못했지만 세월은 흘러서 늙어가고,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있음이 다 자연의 섭리고 원리인데 이것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 요즈음 전국각지에서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가만있는 자연을 부수고 파괴하고 메우고 없애고 훼손시키니 자연도 화가 나서 보복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동지도 지나고 며칠만 있으면 2016년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연륜의 무게만큼이나 이마와 목덜미에 새롭게 주름살하나 더 생기게 되겠지! 무정한 그놈의 세월이 천진난만하게 자라는 귀여운 우리 손녀에게까지 마음의 상처를 입히고 있다. 가고 오는 것은 윤회의 법칙이다. 가는 해 잘 보내고 오는 해 잘 맞이해서 사람답게 인간답게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수 있는 해가 되어 주십사하고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