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도라를 보고
이성동
논설위원
합천신문사 편집위원과 부설 한문대학 수강생들이 지난 12월 19일 요즘 인기리에 방영중인 영화 ‘판도라’를 관람하기 위해 ‘합천시네마’에 입장했다. 필자가 처음 입장해서 본 이 영화관은 중소 도시의 여느 소영화관보다 오히려 더 깨끗하고 아늑해보였다. 지금까지 문화예술 영역에서 농촌지역이라 소외되어 왔던 우리군민들에게 문화시민으로서의 긍지를 높이고, 문화예술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현장으로 느껴져서 좋았다.
박정우 감독의 재난 블록버스터 ‘판도라’는 개봉 3일 만에 50만명을 돌파하고 지난 12월 18일 기준 311만명을 기록하여 머지않아 500만명 달성을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근래 이 영화를 관람하려는 기류(氣流)는 최순실 게이트로 식상해 있는 국민들이 한 순간이나마 답답한 마음을 달래보기 위한 방편일 것이다. 이 영화는 고리 1호기를 상정한 ‘가상원전’ ‘한별 1호기가 지진을 당해 수소폭발하는 것을 모티브로 가족애를 극적(劇的) 장면으로 연출하고 있다. 원전폭발 현장의 화면과 효과음으로 스릴과 박진감이 넘쳐나지만, 미약한 근거로 내용을 극대화한 감이 있다. 한별 1호기가 당한 지진의 규모가 6.1인데, 그 지진으로 원전이 폭발했다는 것은 원전의 원리를 제대로 아는 사람으로부터는 선뜻 동의를 얻을 수 없는 일이다. 후쿠시마 1발전소가 폭발한 동일본 대지진의 진앙지 리히터 규모는 사상 최대치인 9.0이었다.
규모 9.0은 6.1보다 3만배 가까운 강한 지진이다. 영화 ‘판도라’는 규모 6.1을 9.0인 것처럼 꾸며 놓았다.
일본과 미국 등 지진 다발국가에서 6.1정도의 지진에서는 원자로와 격납용기가 깨지지 않기 때문에 정상 가동을 한다. 1979년 미국 쓰리마일 2호기는 수소폭발을 당했지만 격납용기는 두께가 60cm였기 때문에 깨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망자와 부상자는 물론 방사능에 오염된 사람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리 1호기의 격납용기는 두께가 65cm이고 최근에 지은 원전은 120cm에 이른다.
원자로 주변에 강진이 일어나면 자동으로 제어봉이 원자로에 들어가 핵분열을 멈추게 하지만, 핵연료는 여전히 고온 상태에 있기 때문에 계속 냉각수를 주입해 열을 빼줘야 한다. 그런데 이때 외부와 연결된 전원이 끊어져 모터를 돌리지 못하면 핵연료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 마침내 핵연료를 둘러싼 피복재를 녹이고, 이 피복재가 녹으면서 수소가 발생한다. 수소가 격납용기 안에 쌓여 수소농도가 10% 정도에 이르면 폭발이 일어나는데, 이를 ‘수소폭발’이라고 한다. 지진과 함께 해일이 동시에 일어나 외부 전원이 끊어져 모터를 돌리지 못하였을 때의 상황이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우리 원전은 모터를 돌릴 수 있는 장치를 이미 개발해 놓았다.
이 영화에서는 방사능이 누출되고, 원자로 2차 폭발까지 우려되는 최악의 상황에서 이를 막기 위해 이 영화의 주인공 발전소 직원인 재혁(정진영 분)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원자로 천정 벽체를 폭파하는 장면을 연출시켜 극적 효과를 노리고 있는데, 이는 현재 우리 원전운영의 실상을 모르고 기획한 것 같다.
우리 원전 당국은 수소폭발을 없애는 방법을 이미 개발한 상태다. 물(H2O)을 전기분해하면 수소(2H2)와 산소(O2)로 나눠진다. 핵연료가 발생시킨 수소를 없애려면, 그 수소에 산소를 결합시켜 물을 만드는 장비를 넣어두면 된다. 이 장비를 ‘피동형 수소재결합기’라고 하는데, 후쿠시마 사고 후 우리 원전에는 모두 이 장비를 집어넣었다. 영화 ‘판도라’는 주민 대피상황에서도 세월호 침몰 때와 마찬가지로 재난통제당국의 제대로 된 통제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주민들이 사고 현장에서 멀리 피신하기 위해 차를 타고 질주하다가 고속도로 상에서 차들에 막혀 우왕좌왕하면서 낙진(落塵)을 맞는 모습을 보이는데, 방사능이 누출되고 낙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주민들은 옥내로 먼저 피신하도록 해야 한다.
방사능 물질은 인체에 원자병을 일으키는 물질로 원전 폭발 후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가 감소되기 때문에 우선 옥내 대피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 영화는 이러한 절체절명의 국가위기 상황에서도 대통령과 총리는 아무런 대안도 없이 언론통제에만 급급하고, 소방 최고 통제사령부인 방제청과 재난방송사 어디에도 주민 대피를 위한 계도와 안내는 없고 공포감만 확산시킨 것으로 줄거리를 만들었다.
지난 9월 20일 오후 8시 32분 경주지역 규모 5.8 강진을 시작으로 금년 한 해는 우리나라 지진 발생 사상 여러 지역에서 230여 차례의 가장 많은 지진이 발생된 데다 흥행 상영 중인 이 영화를 많은 국민들이 관람하고 그 불안 심리가 가중되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이 영화를 제작한 박 감독이 원전 사고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을 갖게 하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또한 이 영화를 본 국민들에게 원전안전에 대한 불안 심리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에 원전당국으로부터의 사전 정보입수와 국민의 심리 등을 고려한 보다 면밀한 검토가 있은 연 후 이 영화를 제작했어야 했다. 현재 우리나라 원전운영 수준이 박감독이 연출한 것처럼 그렇게 허술한 것도 아니고, 원전이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 환경, 사회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점을 고려할 때 원전이 공포의 대상, 악의 상자만으로 인식되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