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국과 야로철산(冶爐鐵山)
하재효
논설위원
만수동(萬壽洞) 역사루트를 찾아(9)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가 6가야국을 함락시킬 무렵 대가야국은 가장 마지막까지 항거하였으며 그 이유는 야로철산(冶爐鐵山)과 야금술(冶金術)에 있었다고 한다.
필자가 여러차례 야로철산에 대하여 논(論)하게 된 것은 여기에 대하여 조금도 이론(異論)이 없음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6가야중 처음으로,대가야국의 야로에서 철을 생산하였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데 대하여 무게 중심을 두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확신을 갖고 야로철산의 역사루트를 찾아가기로 한다.
<지명 유래 1>을 찾아
야로면 소재지에서 해인사 방향으로 놓인 야로대교를 건너면 야로리1구(구장터)가 나온다 . “야로(冶爐)”를 한자로 풀면 불무부칠 야(冶)와 화로로(爐)의 결합으로 오늘 날의 용광로(鎔鑛爐)를 의미한다. 야로1구를 지나 동북 방향으로 약 700m를 가면 야로2구(돈평)가 나온다. 이부락의 뒤에는 “불묵골”이 있다. “불묵골”은 곧 “불무”를 부치는 골짜기란 뜻이며, 불무는 용광로(鎔鑛爐)의 땔 감에 불을 잘 붓게 하기 위하여 바람을 불어넣는 기구이다. 이 “불묵골” 근처에는 큰 웅덩이가 있는데 그 곳에는 항상 물이 솟아오르며, 땔 감의 조달에도 유리하다. 이 근처에는 쇠 똥 덩이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나무와 숲이 우거저 접근하기도 어렵다.
<지명 유래 2>를 찾아
야로면 소재지에서 야로교를 건너자 곧 동남쪽으로 방죽을 따라 약 900m를 내려가면 금평(金坪) 1구 부락이나온다. 여기서 금평(金坪)을 한자로 풀면 쇠 금(金)자와 들 평(坪)자로 쇠 들이란 뜻이다. 옛말로 쉬피이(金坪), 금굴동 등으로 불리는 이곳은 대가야국 당시 철기문화(鐵器文化)와 관계가 있다. 이곳에서 동북 방향으로 약 500m를 가면 금평2구(창동:倉洞 )가 있다. 물건을 보관하는 곳간이 있는 마을을 뜻한다.
<주민들을 찾아>
인근에 사는 토착민들에 의하면 전국 각지에서 간혹 철기문화의 유적을 찾아 오는 탐방객이 있었으며 중장비 공사시 용광로처럼 보인 곳도 있었다고 한다.
<역사적 문화유산을 살리는 길>
역사적 기록으로 보아 야로에 야철지(冶鐵地)가 있었다는 사실에 이론(異論)이 없음을 발견한 이상, 이곳에 역사기록관 겸 박물관을 세우고 체험 학습장도 종합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인근 고령군의 대가야읍에서 야철(冶鐵)의 종주국으로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이 다행이다. 앞으로 행정구역의 한계에서 벗어나 대가야 문화권 계발이 연계되어야 할 것이다. 1500여년 전의 영세한 흔적을 완벽하게 출토하기는 어렵다. 곳곳에서 묻어나는 지명 유래와 역사기록만 해도 야로는 조상들의 위대한 창조정신의 구심점이다. 자랑스런 철기문화의 발상지로 가꾸면서 흔적도 찾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