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人터뷰| 대한민국 분재명인 백무종, 그를 만나다

금번 합천인터뷰 코너를 통해 소개하고자 하는 사람은 얼마 전, 제6회 대한민국 분재대전에서 측백나무과 향나무인 진백(작품명:방장)을 출품하여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 백무종 선생으로 그의 삶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가치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딸깍 딸깍’ 귓청을 울리는 청아한 원예용 가위질 소리를 들으며 들어선 그의 백암산방은 말 그대로 자연의 축소판이었다. 돌과 나무, 물 그리고 그것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바람과 햇볕까지 모든 자연의 조화로움이 녹아있는 산방에서의 인터뷰는 아주 즐거운 자리였다.
합천군 대양면 도리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고향에서 보냄으로써 어찌보면 자연스레 자연과 친화적인 사람으로 성장하였을 것이다. 그러던 중, 합천고등학교 임업과 재학시절 영농학생회장을 하면서 더욱 자연에 매료되게 된다. 고교 졸업을 하고서 군대를 다녀온 후, 아르바이트를 위해 가게 된 김해에서 우연히 일본의 분재관련 잡지책을 통해 분재를 알게 되자 1985년부터 본격적인 분재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당시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의 국제적인 축제분위기 속에서도 한국의 분재시장은 걸음마 수준이었다.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스승조차,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정통한 도록(圖錄) 한권조차 구할 수 없었던 그는 이미 세계적인 시장을 자랑하는 일본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지금까지도 일본의 황실에서조차 그의 작품을 인정하게 된다. 특히 일본의 황태자는 그의 작품을 누구보다 소중하고 사랑하는 애호가이기도 하다.
스승이 없는 대신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8만장에 가까운 사진을 찍으면서 독학으로 연구해 온 자연과 분재에 대한 식견은 어지간한 전문가도 혀를 내두르는 실력이 되었고, 오히려 대학의 임업과 교수님들이 자문을 구할 정도이니 그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의 남다른 자연에 대한 철학과 끊임없는 학구열이 분재대국이라는 일본에서조차 선생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연간 200여명의 학생들이 다녀간다고 하니 가히 분재명인이라 할 만하다. 분재의 상업화도, 전문화도 이루어지지 않고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자신의 분야를 새로이 개척하고, 연구에 몰두하던 그는 2005년 세계분재우호연맹이 4년마다 개최하는 세계분재올림피아드에서 26개국, 총 460점의 출품작을 제치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대상(작품명:무학(舞鶴), 赤松)을 수상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 개최된 2009년 대회에서도 대상을 수상하게 되는 바, 한국분재소재와 분재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해 보임으로써 명실상부 한국 분재의 수준을 한단계 도약시키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외에도 일본분재협회에서 주최하는 90여년 역사와 전통을 가진 국풍분재전에서 선생의 문도(門徒) 작품이 수출되어 두 번이나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이탈리아대회 2위, 대만대회 3위 등 해외에서도 다수의 수상을 경험했다.
후학양성에도 게을리하지 않고 다수의 제자들을 길러 냈으며, 충북 옥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원동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독보적인 분재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스위스, 체코, 헝가리, 이탈리아 등의 유럽에 전파하는 등의 광폭 행보를 펼치고 있다.
평생을 자연의 섬세함과 조화를 연구해 온 그의 분재인생을 돌이켜보면 관통하는 하나의 철칙이 있다. 비록 자연에서 소재를 얻어오긴 하지만 최소한의 피해를 줄 것이며, 최대한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두자는 원칙이다. 아주 세심하게 자연을 관찰한 후, 그가 부조화를 유발한다면 차라리 그대로를 두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다. 그것은 선생의 공방 벽면에 걸려있는 수십개의 가위들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본지 기자가 보기엔 거의 비슷하게 보이는 수많은 가위들이 제각각의 모양에 따라, 예리한 칼날각도에 따라 쓰임새가 다르다고 하니 최대한 자연을 해치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러한 분재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열정과 제자양성 및 기술전수에 평생을 바쳐온 그는 분재문화에 대한 저변확대를 꿈꾸고 있다. 1945년 해방을 기점으로 전전(戰前) 분재문화와 전후(戰後) 분재문화로 양분하여 기록물 관리에 열과 성을 다하는 일본을 보면서 그는 한국의 기록물 관리가 미흡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도 역시 여러 고증을 거쳐 분재기록물에 대한 취합을 해보려 하였으나 존재하고 있는 기록물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한다. 문서화를 통해 언젠간 소멸되어 버리는 다양한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보고 연구함으로써 저변확대를 꿈꾸고자 하는 선생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또한 합천군에서 야심차게 기획했던 분재정원테마파크의 답보상태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전국적으로 보았을 때, 제대로 갖추어진 전문적인 분재테마공원이 없는 실정에서 합천이 새로운 분재의 메카로 자리매김 한다면 황매산, 영상테마파크, 청와대 세트장 등과 같은 우수한 관광자원과 연계하여 우리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제공함과 동시에 더 나아가 한국에서도 손꼽힐 만한 명소로 만들어 관광산업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프로젝트에 그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역량을 결집시켜 고향을 위해 재능기부를 하고 싶은 것이 그의 원대한 바램이다. 물론 분재가 고가(高價)임을 감안한다면 지방정부의 예산을 고려하여야겠지만 합천의 미래발전을 위한 원시안적(遠視眼的) 관점에서 행정청의 결단이 요구된다고 본다.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백무종 선생의 모든 인생스토리를 담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스승도 없이 온 산천을 누비고 다녔을 모습을 떠올리면 진한 뭉클함이 가슴 속에서 뜨겁게 느껴진다. 분재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의 상황을 감안했을 때,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 속에서 현재 주어진 상황을 불평하기보다는 더 나은 상황으로의 변화를 모색하려는 프런티어 정신을 배웠으면 하는 것이 본지 기자의 소박한 마음이다. /차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