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밭농사에도 즐거움이 있다 – 주영국 논설위원
마을 앞을 조금 지나 바드리(지명) 밑에 약 450평쯤 되는 밭을 경작하고 있다. 여기에 봄부터 심어놓은 콩, 고추, 옥수수, 도라지, 상추 등이 초여름 그 가뭄을 견뎌내고 잘 자라고 있다. 또한 마을 앞 기안들 논에는 벼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 농촌의 들녘은 온통 여름의 푸르름으로 가득하다. 집사람은 이곳 밭에 언제 심었는지 여러 종류의 상추가 철 따라 나온다. 요즘은 밭 이웃 마을 아주머니들이 수시로 늦상추 잎을 반찬거리로 솎아 간다. 봄부터 지금까지 이웃들과 갖가지 채소를 나눠 먹으면서 이것이 바로 우리 농촌의 인심이라는 생각을 하면 즐겁기도 하다.
지금은 한창 참깨를 쪄서 거둬들이는 시기이다. 바드리 위 100여 평의 밭에는 모두 참깨를 심었다. 오늘 아침에는 참깨를 찌기로 하고 6시경에 집사람과 함께 밭으로 나갔다. 제법 힘든 일이라 쉬어가며 했더니 두 시간도 더 걸렸고 몸도 몹시 피곤했다. 모든 농사가 다 그렇듯이 정성 들여 깨를 심고 풀을 매며 가꾸어 이렇게 거두게 된 것이다. 쪄낸 참깨는 며칠간 볕에 말린 후 애벌로 한번 떨고 또 수일간을 더 말려서 재불 떨어야 한다. 이렇게 심고 풀을 매고 하면서 수차례 땅에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으며 땀을 흘렸다. 그야말로 무한불성(無汗不成. 땀 없이는 아무것도 이뤄지질 않는다는 뜻)을 체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깨를 일찍 쪄낸 몇 이랑에는 바로 들깨 모종을 해 놓았다. 뿌리내린 들깨 주변에는 벌써 잡초들이 제법 많이 자라 눈에 거슬렸지만, 일을 시작하기 전에 집사람과 오늘 아침에는 8시까지 남아 있는 참깨만 찌기로 했다. 그런데 농사일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꾸 일 욕심이 늘어난다. ‘이미 옷이 땀에 흠뻑 젖었으니 한 이랑이라도 더 찌고 가야지’ 하는 마음이 생겨 예정시간을 넘기기가 일쑤다. 이러한 욕심이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날도 무더운 날씨에 8시가 한참 지나도록 참깨 찌는 작업을 계속했다. 온몸에는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찐 참깨 대를 묶어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와 모두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늘어놓았다. 일을 마치고 어찌나 피곤한지 바로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한참을 쉬었다가 샤워를 하고 아침밥을 먹었다.
우리 집 아래채 뒤편에도 50여평 되는 텃밭이 있다. 이 텃밭에도 방울토마토와 풋고추, 가지, 오이, 고구마순 등 먹을거리가 많다. 나는 아침마다 이곳 방울토마토를 갈아서 한 컵씩 마신다. 또 풋고추도 아삭아삭한 게 그렇게 맵지도 않고 맛이 좋아 입맛이 없을 때는 풋고추만으로도 밥 한 그릇은 뚝딱 비울 수 있고, 고구마순도 껍질을 벗겨 된장 끓이는데 넣으면 이 또한 여름철 특유의 반찬이 된다.
아침에 참깨를 찐 일로 몸이 피곤하여 오전에는 간단히 휴식을 취했다. 점심을 먹고 쉬고 있는데 옆에 있던 집사람이 “여보 텃밭에 토마토, 오이, 가지 등이 신기하게 참 잘 자라요.”라고 하여 나도 맞장구를 쳤다. “주인이 즐거운 마음으로 관리를 잘하기 때문이지요.”, “옛말에 모든 농작물은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크고, 또 주인이 관심 있게 쳐다만 봐도 그 작물이 더 잘 자란다는 말이 있지요.” 집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우리도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 자신이 즐거운 마음으로 좋은 기운을 가지고 살면 나와 만나는 사람들이나 농작물에도 좋은 기운이 전해질 것 같았다.
나는 요즘 이렇게도 땀 흘려 농사를 즐기고 집사람과 살가운 대화도 하면서 농사꾼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오늘따라 ‘잡초를 뽑으며 순수한 농심으로 열심히 일하는 농민이 행복한 농촌을 만들어간다’는 생각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