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여론마당(오피니언)

망향(望鄕)의 길 (2)

이호석
전 노인회 사무국장

대병면 지역을 지나 봉산면 지역으로 들어가 작은 재를 넘어가면 먼저 봉계마을 앞 도로변 우측에 서 있는 ‘덕동 망향비’를 만난다. 수몰된 덕동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의 가구주 60여명의 이름들이 적혀있어 옹기종기 이웃사촌으로 정겹게 살았을 그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여기서 1.2㎞쯤을 더 가면 댐이 잘 내려다보이는 한적한 곳에 한국수자원공사가 지원하고 실향민과 주민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망향의 동산’이 작은 공원으로 잘 꾸며져 있다. 이곳에는 제법 높은 망향의 탑과 육각정이 지어져 있고, “망향의 동산”이란 글씨가 큼직하고 선명하게 새겨진 아주 크고 잘 생긴 자연석이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표지석 하단에는 어느 사찰의 주지 스님이 쓴 망향의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끝부분 일부를 소개하면,

……저 광활하고 수려한 댐! 어느 곳의 강물이든 다 받아 주듯이, 저 푸른 달빛이 어느 산이라도 다 비춰 주듯이,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골고루 안겨주는 봉산인의 자랑 망향의 동산이여! 망일산 정기 이어받아 험난하고 힘든 세상, 다시는 이별 없는 풍요로운 마음의 쉼터가 되어 주려므나! …

망향의 한이 깊이 서린 마지막 구절이 읽는 이들의 마음을 애틋하게 한다. ‘망향의 동산 표지석’ 옆에는 대형 오석에 봉산면 수몰민 가구주 명단이 빼곡히 쓰여 있고, 뒷면에는 성금자 명단과 댐 건설과 관련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봉산면지역에서 11개 행정리가 수몰되었고, 970세대 4,074명의 주민이 실향민이 되어 정든 고향을 떠났다. 또 동산 한편에는 이곳 봉산면 출신으로 성균관 관장을 네 번이나 지낸 최근덕 선생의 문학비와 조형물이 있고, 수몰당시 관내 중요 기관과 큰 마을 사진들이 잘 새겨져 있어 실향민들에게 옛 추억을 되살리게 한다.
봉산면 소재지에 다다르면 도로변 좌측에 ‘하김봉 동적비’가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작은 비석에 옛 하김봉 마을의 창건유래와 수몰 당시 마을 현황, 실향민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다. 봉산면 소재지를 지나 국도를 따라 잠시 달리다가 권빈 삼거리에서 다시 댐 순환도로로 내려선다. 계산마을을 지나 송호동 이란 작은 마을에 닿으면 마을 입구에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는 쪼그만 ‘마을 이건비’가 있다. 이 마을은 수몰지역 개정지 마을 주민 일부가 올라와 모여 사는 곳이다. 이곳에서 댐이 내려다보이는 꼬불꼬불한 산비탈 도로를 한참 달려가면 우측 도로변에 ‘고향정’이란 정각이 있고, 정각 옆에 ‘저포 3구 골마 마을 동적비’가 서 있다. 그런데 바로 앞 도로변 펜스에 붙어있는 색다른 현수막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수몰된 이곳 마을 출신 2세인 듯한 자매가 언니는 회계사에, 동생은 사법고시에 합격한 내용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 교통량도 별로 없는 산골 도로변에 이렇게 현수막을 붙여 놓은 것은 고향 산천에 묻혀 있는 조상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 또 이곳 출신 실향민들이 지나가다가 봐 주기를 바라는 애틋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곳을 지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 ‘원저포 동적비’를 잠시보고, 또 한참을 달려가면 용주면과 경계지역에 ‘망향정’이란 정각과 돌기둥 탑 여섯 개가 서 있고, 그 옆에 ‘노파동적비’가 있는 작고 아담한 쉼터가 만들어져 있다. 동적비에는 수몰된 노파마을 사진과 마을 유래, 마을에 살던 가구주 명단이 새겨져 있고, 그 옆에는 이 마을 출신이자 유학자로 성균관 관장을 지낸 최근덕 선생의 삶이 망향동산의 것과는 또 다른 모양으로 소개되어 있다.
이렇게 댐 순환도로 150여리 곳곳에 세워진 망향비는 그 모양이나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한결같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들의 애틋한 마음이 서려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이 망향의 길을 지날 때 마다 남북으로 갈라진 이산가족들과 댐건설로 실향민이 된 사람들의 아픔을 가늠해 보곤 한다. 물론 고향산천과 피붙이를 모두 잃은 남북 이산가족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이곳에서 떠날 때까지 평생을 살아오며 온갖 추억을 쌓은 실향민들이 겪는 향수병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다. 댐 건설이 계기가 되어 객지로 나가 더 잘 사는 사람들도 더러 있겠지만,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향수병은 평생 치유할 수가 없는 것이다.
댐을 구경하러 오는 많은 관광객이나 댐 건설로 한·수해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잘 살고 있는 아래쪽의 많은 사람들, 이곳에서 발전된 전기로 편리한 문화생활을 하는 많은 국민들은 실향민들이 겪는 망향의 한을 모를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다. (끝)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