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뉴스홈

검정 고무신 – 노덕경 논설위원

지난봄에 지인의 야생초 전시회에 초청받았다. 그녀를 만나려 콧노래를 부르며 오랜만에 넥타이와 구두를 닦아 신고 전시장에 갔다. 야생초 전시장을 관람하다 유년시절의 반가운 물건을 발견했다.
탁자와 장식장 위에 다양한 항아리, 토기와 함지박, 가축의 먹이통, 자연석, 숯 등 여러 수반위에 애기돌나물, 깽깽이 풀, 초롱꽃, 노루귀, 금낭화, 황새풀 등 야생화가 심어져 있었다. 작품마다 식물의 학명과 개화기, 출품한 사람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전시장 모서리를 돌아서니 탁자위에 검정 고무신과 하얀 고무신에도 들꽃이 심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추억의 검정 고무신을 바라보니 잊고 있었던 유년시절이 떠오른다. 그 때는 집집마다 가족은 많고 해마다 가뭄으로 끼니를 거르기도 많이 했다. 건국초기 6·25전쟁으로 나라는 황폐하여 공산품이 귀하던 시절이라 어른들은 일할 때에 짚신, 어린이는 검정고무신이 고작이었다.
그 시절엔 가난한 형편에 초등학교도 못가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어떤 집에는 일손이 딸려 어린 아이들도 소먹이고 풀 베어오고 논밭의 일을 거들어야 했다. 가끔 일하기 싫어 학교에서 귀가하면 몰래 가방을 팽개치고 또래 친구들과 산과 들로 나가 병정놀이, 숨바꼭질, 말 타기, 자치기 등 놀이에 열중했다. 그러다보니 고무신이 땀에 젖어 신발이 벗어지고 때로는 찢어지기도 했다.
요즘이야 시골의 골목길도 포장이 잘 되어 있다. 그 당시 골목길의 돌담과 학교 가는 도로마저 자갈길이라 먼지가 많이 일었다. 눈비로 인해 파인 웅덩이도 있어 천방지축 뛰어다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다. 고무신에 발가락이 튀어나오면 어머니께서 밀랍을 실에 발라 꿰매 주시곤 했다. 어떤 때는 흰 실로 꿰매 검정고무신이 도드라져 이웃 여학생한테 부끄럽고 창피했었다. 하여 낫으로 고무신을 찢어서 새 신발을 사달라고 졸랐었다.
시골에는 닷새 만에 장날이 선다. 장에 갔다 오는 어머니를 동구 밖에서 기다렸다. 광주리에 고등어 한손, 석유 한 병, 양잿물 등과 고무신을 사서 오시는 어머니를 발견하고 쏜살같이 달려가 “엄마” 하고 품속에 안겼다. “아이고 내 새끼” 하면서 새 고무신을 꺼내 주던 그 때 추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새 신발이 너무나 아까워 신지도 못하고 안고 집으로 오며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행여 흙이 묻을세라, 방에서 신어보고 얼마나 기뻤던지, 잠잘 때에도 안고 자고 이튿날 고무신을 신고 어깨에 힘주며 골목길을 한 바퀴 돌 때에는 보무(步武)도 당당했었다.
고무신을 신고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발에 땀이 나 미끄러지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 신발에 흙을 넣어 신었다. 여름이면 냇가에서 물장구 칠 때에는 신발이 소지품 보관창고였다. 물고기 잡아 고무신에 담아서 돌아올 때는 어항이나 다름없었다. 때로는 골목길에서 신발을 때려 뒤집는 게임을 하여 구슬 따먹기도 했다. 겨울이면 검정 고무신에 구멍이 난 양말로 인해 발가락에 동상이 걸려 밤이면 콩 주머니 속에 발을 넣고도 아려서 밤잠을 설치곤 했다.
당시에 보리밥도 양껏 먹어보지 못해 봄부터 산과 들의 꽃과 나무의 어린 순을 먹었던, 너무나 배고픈 한을 안고 살아가는 세대들이다. 간식이라고는 6·25전쟁 이후 탄피, 고철이나 병, 고무신을 바꾸어 먹을 수 있는 엿이 유일했다.
한번은 개구쟁이들이 함께 놀고 있는데 엿장수 아저씨가 왔었다. 옆집 두 살 많은 형이 집에 가서 엿과 바꾸어 먹을 수 있는 고물을 가져오라는 꼬임에 조금 닳은 아버지의 흰 고무신과 어머니 고무신을 가져가 엿과 바꾸어 먹었다. 죄책감에 저녁 늦게 돌아와 밥 달라는 소리도 못하고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버지께서 외출해야 하는데 흰 고무신이 없어졌으니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검정 고무신도 아니고 어른의 외출용 흰 고무신과 어머니 것과 두 켤레나 엿과 바꾸어 먹고 거짓말까지 하여 장단지가 쓰리도록 맞았던 기억이 있다.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가난함과 배고픔, 이웃의 또래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가난의 상징물이었던 검정 고무신의 한이 담긴 추억이 이제는 그리움으로 변했고 입가에 미소로 번져온다.
근자에 생활수준 향상으로 계절별로 다양한 신발이 여러 켤레가 있다. 검정 고무신의 애환을 잊고 살았다. 검정 고무신에 야생초를 심어 거실의 탁자위에 놓고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며 감상하게 된 여유도 부모님 세대의 피땀 흘린 결과다. 고마운 마음으로 바라보니 더더욱 정겹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