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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의 옛길을 ‘백의종군로’로 부르자 – 정병수 쌍백초 총동창회장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산지도 50여 년이 되었건만, 어릴 때 자란 고향의 억양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어떤 모임에서도 초면인데도 나의 억양을 듣고 묻는다.
“고향이 어디시죠?”, “합천입니다.”, “아? 해인사로 유명한 합천이군요. 참, 합천은 경북에 속하지요?”, “아닙니다. 경북의 고령이나 성주와 접해있기는 하지만 경남입니다.”, “아? 그래요? 저가 실례했습니다.”
내가 만난 사람의 상당수는 우리 고향을 경북으로 아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또 며칠 전 합천향우회 모임에서 덕곡면 출신의 반가운 지인을 만났다. 이런 저런 대화 중에 내 고향은 “쌍백면”이라고 하자, 잘 모르는 표정이다. 우리 면(面)에 유명한 그 무엇이라도 있거나 공통의 얘깃거리가 있으면 좋으련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해 이내 다른 화제로 넘어가 섭섭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고향에 갈 일이 있었다. 중학생일 때 통학하며 다녔던 비포장도로는 최근 말쑥한 새 국도로 대체되었다. 꼬불꼬불했던 도로는 곧게 펴지고 좁은 도로는 왕복 4차선으로 시원하게 바뀐 것이다. 오가는 시간도 대폭 단축되었다. 이제 기존의 신작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간간히 마을 농부가 경운기를 몰거나 고추 등 곡식을 말리는 장소 정도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문득 ‘추억의 저 옛길을 어떻게 활용하는 방법이 없을까?’라는 뜬금없는 생각에 잠긴다.
내가 중학생일 땐 우리 면에는 중학교가 없어, 인근 면에 있는 중학교를 다녔다. 거리는 왕복 12킬로 정도로 비포장도로를 걸어 다녔다. 봄과 가을은 그런대로 걸을 만 했다. 그런데 여름은 뜨거운 태양과 지열로 온 몸이 끈적끈적해지고, 버스라도 지나가면 흙먼지를 뒤집어쓰기가 일쑤여서 버스가 올 때마다 도로 곁 멀리 피하기도 하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내친김에 타임머신을 타고 4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1592년 조선이라는 나라는 이웃 나라가 전쟁 준비를 하는 것도 무시하고 갑론을박하는 사이, 당시 일본 통일로 막강해진 군사력을 가진 왜군이 조총을 가지고 부산 동래로 쳐들어온 것이다. 임진왜란이다. 육지에서의 전쟁은 싸움이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연전연패하고, 백성들은 아비규환이다. 이럴수록 임금은 목숨을 걸고 백성을 독려하여야 하는데도 선조는 백성을 팽개치고 의주로 피난을 갔다니 화가 치민다. 백성들은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 권력의 상징인 경복궁이 불에 탄다.
불행 중 다행은 바다 쪽이다. 민족의 위대한 인물인 이순신 제독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왜선을 거북선으로 격파하고, 덤벼드는 왜군을 수장시키니 왜군은 겁을 먹고 도망가기 바쁘다. 오늘날까지도 세계 해전 역사에 없는 23전 23승의 신화를 만든 분이다. 조선은 그 분에게 박수를 치고 승진을 시켜도 부족한데,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라는 말처럼 중상모략이 난무하다. 급기야 의심이 많고 어리석은 선조는 판단력을 잃고 죄를 묻는다.
왜군을 물리칠 작전을 고민하기에도 시간이 없는 이순신 제독은 그만 삼도수군통제사직에서 박탈당한 뒤 1597년 3월 한양의 의금부에 투옥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래도 목숨을 건 충신의 건의로 관직은 박탈당하고 흰 옷을 입은 채 생활해야 한다는 백의종군으로 겨우 목숨만 건져 당시 도원수인 권율 장군의 진영이 있는 오늘날의 합천군 율곡면 매실로 내려온다. 서울 종각에서 출발하여 충남 아산시, 전남 구례시, 경남 하동과 산청, 그리고 합천군의 남부인 내 고향을 거쳐 합천의 동부지역인 매실까지 640킬로미터에 달하는 백의종군 길을 걷는다. 그 중 합천지역만 37킬로미터였고, 내 고향 면만 하더라도 10킬로미터는 되는 것 같다. 때는 무더운 여름이었으며, 내가 통학하며 걷던 옛길이기도 하다.
합천 지역은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백의종군 기간 중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이다. 합천은 권율 장군의 도원수 진이 있었던 곳으로, 충무공이 6월 2일 저녁 무렵 삼가현청에 도착해 7월 18일 도원수 진에서 원균의 패전소식을 듣고 권율의 명으로 전황을 살피러 길을 떠나 삼가를 거쳐 산청으로 갈 때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꾼 주요 해전을 ‘세계 4대 해전’이라 하는데, 시대 순으로 열거하면 BC 480년 살라미스 해전, 1588년 칼레 해전, 1592년 한산도 해전 그리고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을 꼽는다. 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면 학익진 전법으로 유명한 한산도 대첩이라는데 이의가 없는 것 같고, 그 주인공이 이순신 제독이다. 오죽하면 1904년 러일전쟁에서 발틱함대를 대파하여 영웅이 된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도 자신의 전공을 칭찬해 주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을까? “이순신 제독은 죄수의 몸이 되어서도 애국심을 버리지 않은 진정한 군인이었습니다. 모함을 받아 일개 사병으로 전장에 나갔고, 다시 장군에 임명되었을 때는 겨우 13척의 배로 133척의 대함대를 격파했습니다. 그리고 승리한 전쟁터에서 장렬하게 최후를 맞았습니다. 진실로 말하건대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순신에 견줄만한 제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나와 이순신 제독을 비교한다는 건 이순신 제독에 대한 모독입니다.”
이제 우리 고향의 옛길을 ‘백의종군로’라고 부르자. 우리나라 각 지방자치단체는 없는 얘기도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고향을 알리고 마케팅과도 연계하는데, 민족의 영웅 이순신 제독이 눈물로 걸어간 ‘백의종군로’를 모르고 있거나, 그 역사적 의의를 모른다면 우리는 역사적으로나 우리 민족에게 두고두고 죄를 짓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모르는 것 보다는 지식으로도 아는 것이 좋고, 그보다는 체험으로 실천해보는 것은 더 좋다. 그런 측면에서 학생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걷기 대회를 주기마다 체계적으로 하자. 합천 중에서 삼가, 쌍백, 대양, 율곡이 연대하면 좋고, 합천군 차원에서 하면 더 좋지 않을까? 내 고향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도 이 일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