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새해 인사와 육십갑자
정병수
쌍백초등학교
총동창회장
나는 간혹 새벽에 동네 뒤 매봉산으로 산책겸 운동을 하러 간다. 정상에는 간단한 운동기구도 있고 체조를 할 수 있는 작은 공터도 있어, 동네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야트막한 동산이다. 정상에서 십여분 정도 몸을 풀고 내려와도 1시간이면 충분할 정도의 사색의 길이기도 하다. 소나무, 잣나무, 참나무, 상수리나무, 향나무 등 많은 수종에서 뿜어나오는 피톤치드로 머리가 상쾌해지는 도시 속의 허파같은 보배이기도하다.
양력 올 2016년 1월1일의 해돋이 시각은 7시37분이다. 습관처럼 올해도 해돋이를 보러 옷을 단단히 입고 집을 나선다. 밖은 바람이 불고 아직 어둠이 깔려있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엔 새해 첫 날의 해돋이를 보기 위하여 가는 사람들이 많다. 어린이를 대동한 부지런한 가족 팀도 있고, 3대가 함께 오르는 아름다운 가족도 보인다. 나도 해돋이 시각에 늦지 않도록 부지런히 정상을 향해 가는데, 핸드폰에선 연신 ‘카톡 카톡’ 거린다. 가던 길을 멈추고 내용을 열어본다. 삼가 새해를 축하한다는 근하신년(謹賀新年)도 있고, 옛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한다는 뜻의 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글귀도 보인다. 나도 마음속으로 ‘새해 첫날부터 참 부지런하네요. 모두들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묵언의 인사를 날린다.
20년 전만 해도 연말연시면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으로 인사를 주고받던 것들이 어느새 핸드폰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기계로 가로채이는 듯하다. 옛날 연하장 중에 인상 깊은 몇 장은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연하장이 차츰 줄어들더니 올해엔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뜸해졌다. 아마도 편리성과 속도 면에서 연하장은 핸드폰과 경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뿐인가. 인사말도 대개의 경우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일괄하여 보내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정성껏 보내는 연하장만큼은 감흥이 있을 리 없다. 그나마 소식이 없어 궁금했던 차에 핸드폰으로나마 인사를 받게 되면 반갑기 그지없다.
며칠 전 핸드폰을 잘못 조작하여 저장된 전화번호를 다 날려버린 적이 있다. 복구하는 1주일 간은 거의 공황상태에 빠지는 나 자신을 보고 핸드폰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40년 전 우리가 대학생일 때는 말할 것도 없지만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대학 캠퍼스의 화장실 벽에는 이성에 관한 글이나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낙서가 그런대로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엔 낙서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요새 대학생이 고민을 덜 해서일까? 아니다. 이유는 바로 핸드폰에 있다. 화장실 벽에 낙서를 하는 대신 핸드폰으로 하고픈 말을 주고받으며 해소하기 때문이란다. 그만큼 핸드폰은 우리 일상생활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히 혁명적인 발명품이다.
일출 시간이 지났으나 날이 흐려 해를 보지 못하고 하산하는데 다시 핸드폰에 ‘카톡 카톡’ 한다. 친구들로부터 보내온 신년 인사다.
“새해 병신년(丙申年)에는 건강하고 복 많이 받게나!”
의례적인 덕담이지만 2016년에 복 많이 받으라는 데에는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새해’ 뒤에 ‘병신년(丙申年)’이라고 접미어처럼 붙이는 표현에 신경이 쓰인다. 하기야 언론에서조차 2016년이 들어서자마자 원숭이 해, 그것도 붉은 원숭이의 해라고 한다. 과연 2016년 1월1일부터 병신년(丙申年)일까?
새해가 언제부터 시작되느냐는 역법(曆法)에 따라 다르다. 우리가 흔히 양력이라고 부르는 태양력(太陽曆)은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1년으로 한다. 로마 그레고리우스황제 시절인 1582년 1년을 365.242196일이라고 정한 이후 평년은 365일로 하되 4년마다 윤년을 두어 366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2016년 올해가 4년마다 돌아오는 윤년이며, 1월1일이 새해 첫날이 된다. 우리나라가 이같은 양력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한일병합 이전인 1896년 1월1일부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음력만을 신봉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양력을 일본달력이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어 안타까운 일이다
반면 태음력(太陰曆)은 달이 지구를 한 번 공전하는데 걸리는 354일을 1년으로 한다. 이는 태양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계절변화와 일치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양력보다 음력이 먼저 도입됐다. 문제는 음력 즉 달빛을 보며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점이다. 당연히 식물은 햇빛을 받으며 자라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생활과 농사는 양력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양력이라는 이름 대신 입춘·입추·동지 같은 24절기라는 이름으로 양력을 도입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올해의 음력 새 해 첫날은 2월8일 구정 설날이다.
회계학에도 새해의 개념이 있다. 당기순이익을 계산하는 기간을 ‘회계연도’라고 하는데,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의 1년으로 할 수도 있고, 4월1일부터 다음해 3월31일처럼 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5월 두번째 수요일부터 다음 해 두번째 화요일까지로 해도 상관없다. 1년이기만 하면 된다. 회계연도가 시작하는 날이 새해 첫날이 되는 셈이다.
이처럼 지구상에 살고 있는 많은 동물 중에 ‘연도’라는 개념을 고안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생일 등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인간만이 누리는 특권일 것이다. 이 특권 중의 하나인 새해 첫날은 기준에 따라 다르다. 그렇다면 을미년(乙未年)이니, 병신년(丙申年)이니 하는 육십갑자와 띠는 언제를 기준으로 하여 첫날로 할까?
육십갑자의 첫날 시작이 양력 1월1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음력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명리학(命理學)에서 해가 바뀌는 기준은 입춘(立春)이고, 2016년의 입춘은 양력 2월4일 18시48분이다. 그러니까 입춘은 일(日)의 개념이 아니라 시, 분, 초의 개념이다. 2016년 2월4일 18시47분까지는 을미년(乙未年) 양띠 해이고, 입춘인 2월4일 18시48분부터 병신년(丙申年) 원숭이 해가 되는 것이다. 병신년이 되려면 1달 이상이 남았는데도 미리 원숭이 해라고 한다면 을미(乙未)년의 양(羊)은 본의 아니게 자기 이름조차 못 듣는 레임덕으로 섭섭하지 않겠는가?
2016년 새해 첫날은 양력으로는 1월1일이요, 음력으로는 2월8일 구정 설날이다. 그러나 병신년(丙申年) 원숭이 띠의 시작은 2월4일 18시48분 입춘(立春)부터이다. 입춘 때마다 집안을 청소하고 정성껏 먹을 갈아 입춘대길(立春大吉)과 건양다경(建陽多慶)을 창호지에 쓰시고 대문과 정주문(鼎廚門)에 붙이던 아버님이 오늘따라 더욱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