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여론마당(오피니언)

배낭을 메고 해인사 소리길로 (5) 문화기행

이병생
합천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봄에는 진달래꽃이, 가을에는 단풍잎이 계곡에 떨어져 흐르는 물을 붉게 물들인다는 홍류동, 여기에는 계곡을 따라 양쪽으로의 낙낙장송뿐만 아니라 기암괴석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경치가 아주 뛰어난 곳. 요즘은 비가 자주와 흐르는 물이 많으니까 정말 환선대를 비롯하여 가을의 진풍경을 나타내는군요. 홍류동은 해인9곡 중 제7곡이며, 19명소 중 하나이기에 더욱더 경치가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특히나 이곳은 신라가 망하는 슬픔을 안고 가솔들을 데리고 가야산으로 입산하였다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유적지가 많은 곳입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은 전국 곳곳의 바다를 거쳐 산으로 들어왔지만 어느곳 보다도 많은 유적지를 가지고 있는 곳이 가야산 해인사, 특히 홍류동에는 더욱 많은 곳에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먼저 해인사 쪽에 둘러보면 홍류동 학사당과 가야서당-농산정 건너편에 위치한 가야서당은 고운 최치원 선생이 세상을 등지고 책과 시름하며 지내던 곳이고, 학사당은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매년 향사를 올리기 위해 1927년 건립된 것이며, 홍류동 석벽제시는 암벽에 선생의 둔세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미친물 바위치며 산을 울리어, 지척에서 하는 말도 분간 못하네. 행여나 세상시비 귀에 들릴까? 흐르는 물을 시켜 산을 감싸네”하는 시(詩).
경치 좋은 농산정은 홍류동에 있는 정자로서 최치원 선생이 여러 제자들과 함께 시(詩)를 짓고 바둑도 두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고운 둔세비가 새겨져 있습니다. 해인사 길상탑은 1965년 탑의 내부에서 157개의 소탑(小塔)과 고운 최치원 선생이 지은 4매의 탑지석(塔誌石)이 발견되었습니다. 탑지에는 도적떼로부터 사보(寺寶)를 지키다가 순교한 해인사 승녀들의 영혼을 추모하려고 이 탑을 세웠다는 내용 등이 있습니다. 해인사 학사대 역시 고운 최치원 선생이 땅에 지팡이를 꽂으며 이 지팡이가 살아 있으면 나 또한 살아 있는 것이니 “학문에 더욱더 정진하여라”란 가르침을 내리고 사라져 가야산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천년이 넘은 노거수가 있습니다.
고운암은 선생이 가야산에 들어와 움막초가를 짓고 세상을 멀리하며 사시던 옛 집터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고운선생구저은일지지(孤雲先生構邸隱逸之地)’라는 비석도 있습니다. 또한 등선 넘어 있는 청량사에는 선생이 가장 많이 넘나들며 시문을 남겼다는 일명 남산절도 있습니다. 이 많은 유적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 유명한 학사당과 둔세시가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출렁다리를 넘어 1939년 건립하였다는 농산정은 선생의 둔세시 마지막 구절 ‘故敎流水盡籠山(고교유수진농산)’이란 말에서 따와 농산정이라 이름하였는데, 정면2칸 측면2칸의 정자는 소리길을 찾는 등산객의 휴식처로서도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최치원 선생은 학사대에서 지팡이를 꽂아놓고 갓과 신을 벗어 놓고 가야산으로 신선이 되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홍류동 농산정에서 갓과 신을 벗어 놓고 농산정 뒷산으로 갔다는 설이 있어, 이곳 뒤 산 이름을 선생의 이름을 따서 최치백이라는 골짜기 이름이 있어, 지금도 사람들에게 그렇게 불리여 지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가야산 내에서 선생은 신선이 된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갔습니다. 농산정을 건너는 출렁다리에서 흐르는 물을 내려다보니 환선대를 비롯하여 경치는 말할 것도 없지만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들이 보이는군요. 과연 이 맑은 해인사 계곡에는 어떤 종류의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을까요? 하천과 호수 등 담수에서 서식하고 있는 담수어, 다른 말로는 민물고기라고도 하지요. 여기에는 참갈겨니(우점종), 버들치(치우점종), 자가사리, 동사리, 피라미 등 총 17종이 있습니다. 생태계를 보존키 위해서는 항시 흐르는 계곡물을 깨끗하게 해야 되겠습니다. 계곡의 돌에 가만히 내려다보면 엄청난 이름들이 새겨져있습니다. 해인사 계곡을 따라 돌에 새긴 이름을 조사한 해인사 편집국장을 지냈던 돌 도사 종현스님은 “보장천추(寶藏千秋)”라는 책을 펴냈었는데, 여기에 석각된 사람을 조사해보면 해인사 주지를 지냈던 환경스님의 많은 글씨뿐만 아니라, 도관찰사를 지냈던 분들이 38명, 삼도수군도독 및 절도사 22명, 합천군수, 초계군수, 삼가군수를 지냈던 분이 47명이나 되며, 문중가족들이 39명, 선비의 이름이 10명, 기녀(妓女)의 이름도 9명이나 있으니 해인사 계곡은 돌에 온통 이름자로 뒤덮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올라가면 쉴만한 곳이 없으니 그늘 좋은 농산정에서 최치원 선생을 생각하며 농산정 시 한수 읊어 보면 어떨까요?

何日文昌入此巒(하일문창입차만)
白雲黃鶴渺然間(백운황학묘연간)
已將流水紅塵洗(이장유수홍진세)
不必重聾萬疊山(불필중농만첩산)

최치원 선생 언제 이 산에 들어왔던가?
흰구름과 황학이 아득히 어울러진 때였도다.
이미 흐르는 물로써 세상의 때를 씻었으니
만겹 산으로 다시 귀를 막을 필요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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