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의 서울 수학여행_정병수
정병수
쌍백초 총동창회장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어느 날, 선생님께서 수업에 앞서 말씀하셨다.
“이번 5학년 학생의 수학여행은 서울로 가기로 정했다.”
순간 “와”하는 환호성이 터진다. 전체 4개 반 학생 중 가정 형편상 겨우 1반 정도의 학생만이 수학여행에 참가하였다. 우물 안의 개구리와 다름없는 나는 서울에 간다는 생각에 줄곳 마음 설레였다.
드디어 떠나는 날, 학생들은 새벽부터 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대구를 거쳐 오늘 중에 서울에 도착하려면 서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면소재지에서 대구까지 가는 데는 요새는 한 시간도 채 안 걸리지만, 당시에는 도로가 비포장인데다 꼬불꼬불하여 무려 4시간이나 걸렸다. 버스도 요새 생각하면 폐차 직전의 차로 언제 고장나 멈출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행히도 무사히 도착했다. 차창을 통해 난생 처음 보는 ‘대구’라는 도시는 군데군데 높은 빌딩과 넘치는 자동차와 인파로 나는 어리둥절해진다.
대구역에 도착했다. 철길에 기차가 길게 늘어서 있다. 그런데 책에 그려진 기차의 앞부분은 크고 뒷부분은 뱀 꼬리처럼 가느다랗게 되어 있는데, 내 앞에 서있는 기차는 앞과 뒤가 똑 같은 것이다. 우둔하게도 기차를 직접 보기 전까지는 책 속의 기차 그림이 원근법에 따라 그려진 것도 모르고 마치 실물도 그런 것으로 알았던 철부지가 들통 난 셈이다. 이는 간혹 가설 야외무대에서 보는 흑백 영화 속의 주연 배우를 실제 주인공으로 한 동안 착각했던 충격과 같은 것이었다.
기차 내부의 좌석은 앞뒤로 마주보게 설치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담임선생님과 같은 좌석에 마주 앉게 되었다. 역마다 서는 완행열차에 몸을 기대고 한 없이 달린다. 역은 대부분 처음 듣는 지명이다.
“여긴 영동인데, 감나무와 대나무는 이곳 아래 남쪽에서만 자라지. 그 이상의 북쪽에는 추워서 자라지 못해.”
“이 역은 신탄진역이라고 해. 담배를 이곳에서 많이 생산하지.”
숫기가 없던 나는 그 때 말 한마디 못하고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기만 했다. 배가 출출할 때쯤 어머님이 삶아 넣어준 계란 맛은 별미였다.
그러다가 깜빡 조는 사이 기차는 서울에 도착했다. 대구를 떠난 지 12시간만이다. 부스스한 얼굴로 밤이 깊은 서울역 밖으로 나오니 정신이 없다. 인솔자를 따라 걷는 시골 어린이의 눈에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이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얼마 전 재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염천교 근방의 여인숙이었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호명하니 이상이 없다. 마음이 들떠있어 그런지 식사는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에 없다.
자유시간이다. 선생님은 길을 잃어버린다고 숙소 밖으로 못나가게 하셨지만,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 몇 명이 몰래 빠져나왔다. 전기불도 본 적이 없는 우물 안 개구리들의 눈에는 번쩍이는 네온사인은 시골 산등성이로 순식간에 날아가는 도깨비불만큼이나 신기했다. 혹시나 숙소를 못 찾을가 봐 걷다가 뒤돌아보며 확인하고 전진한다. 꽤나 많이 걸은 것 같은데 100미터도 안 되는 곳에 서울역 지하도를 발견한 것이다.
“이건 뭐지? 두더지도 아닌 사람들이 땅 밑으로 왜 다니나? 참말로 이상하네.”
지하도를 처음 본 촌뜨기가 그 이유를 알 턱 없이, 갑자기 겁이 난 우리들은 왔던길을 조심스럽게 되짚어가며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우리는 창경원 동물원으로 갔다. 조선의 5대 궁궐 중의 하나인 창경궁을 일제가 동물원으로 조성한 아픈 역사도 모른 채 우리는 오로지 신기한 동물을 보는 것이 좋다며 정신이 없었다. 키다리 기린, 귀여운 원숭이, 코가 손인 코끼리, 뭔가 불만인 듯 씩씩거리는 불곰 등 모두가 말로만 듣던 처음 보는 동물들이다. 그러나 뭐니 해도 어린 촌 개구리들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백수의 왕인 호랑이였다. 그 동안 할머니로부터 들은 얘기가 바로 호랑이가 아니던가? 늠름하고 위엄이 있어 보인다. 결국 그날 밤 호랑이 꿈으로 놀라 잠에서 깨기도 하였다.
생각해보니 성인이 되기 전에 내가 한 유일한 여행이 수학여행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시골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한 촌뜨기가 받았던 느낌과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의 경험이 이제는 추억이 되어 살아있다. 사실 수학여행을 다녀오기 전까지는 내일도 오늘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체념 속에 살았기 때문에 바깥 세계를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낮에는 딱지치기며 땅따먹기 놀이면 충분했고, 밤이면 전기 불이 없어도 달빛과 별빛을 친구삼아 숨박꼭질로 족했다.
그런데 수학여행은 나에게 마치 마술을 보는듯한 놀라움을 주었다. 언젠가 ‘삶은 얼마만큼 소유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경험을 쌓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며, 잘 사는 길’이라는 얘기에 깊이 공감한 적이 있다. 여행이 바로 그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우물 안의 개구리나 다름없던 내가 겪은 수학여행은 집을 나서 외부로 나간 첫 여행이었다. 추억은 아름답다. 나는 오늘도 그 때의 느낌을 조용히 반추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