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내가 예뻤을 때 – 문경자 수필가
보릿고개로 식량이 궁핍했던 시절, 산골마을에는 가을걷이가 한창이었다. 아침 해가 둥실 떠오를 때 어머니 뱃속에서 나는 태어났다. 얼굴도 둥그렇게 생긴 딸아이라고 아버지는 무척 서운하게 생각했다. 그런 아버지의 표정을 보고 어머니는 죄인처럼 고개도 들지 못했다. 어른들은 독자 집안에 어머니가 떡 두꺼비 같은 아들 낳기를 바랐을 것이다. 어머니는 힘든 삶을 살면서 방긋방긋 웃는 나를 보면서 행복해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지어 입히고 애지중지 길러 주었다. 어머니가 달밤이면 나를 업고 마실 가는 길에 감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뱀처럼 무서워 다리를 오므렸다. 환한 달빛을 받아서인지 쪽진 머리가 예쁘게 보였다. 어머니등은 따듯하고 포근하였다. 이제는 볼 수도 없지만 달빛에 어머니 모습을 그려본다.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았다. 어머니를 그리며 일기를 쓰기도 했다. 때론 울기도 하였다. 진달래 꽃이 피며 그리운 시절을 노래했다. 사춘기를 지나고 풋내 나는 첫사랑을 알 듯 모를 듯한 때였다. 봄날 길을 걷는다. 긴 머리 소녀 유행가가 흘러나올 때 한창 예쁠 나이였다. 긴 머리에 하얀 얼굴, 쌍꺼풀 진 눈, 웃으면 보조개가 생겼다. 철없는 머슴아들은‘어이 아가씨 웃지 마. 너무 예뻐서 반했다’하며 휘파람을 휙 불기도 했다. 아가씨는 혼자 예쁜 척하며 빨간 구두는 똑똑 소리를 내며 걸었다. 길가의 꽃들도 나비도 아가씨처럼 마음 들떠서 살랑거린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도 아가씨에게 핑크빛 사랑을 날려 주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뱅글뱅글 돌렸다. 빗방울을 세며 미소를 짓곤 했다. 날씨가 개인 날 빗방울이 고인 자리에는 하루살이가 맴을 돌았다. 푸른 하늘 하얀 구름도 가두었다. 물이 고인 자리에는 더 깊은 속내를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때로는 속내를 감추고 그저 스무 살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였다. 이성에 대한 눈을 뜨고 앞으로 미래에 대한 꿈을 꾸기도 했다. 동네 양잠점에서 맞춘 꽃무늬 원피스를 입었다. 거울에 비춰본 내 모습이 오늘따라 예뻐 보였다. 보라색 가방을 메고, 빨강 구두를 신고 외출을 하였다. 김포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고향 친구진이는 “너는 볼수록 예뻐지냐 혹시 애인 생긴 거 아니야?”하며 웃었다. 한창 꽃필 나이인데 너도 예쁘다며 우리는 찻집에서 차를 마셨다. 옆에 앉아 있던 머슴아가 슬쩍 다가와서 합석을 하자고 한다. 우리는 킥킥 웃으며 우리가 예뻐 보이나 봐 하며 외면을 했다. 겸연쩍어 하면서 뒤로 슬슬 물러났다. 진이도 어머니가 시집을 가야 할 때라는 말을 하면 고민이 된다고 했다. 둘 다 애인도 없으니 시집을 가려면 중매를 해야 하는데 걱정이 앞섰다.
그날 밤 아버지는 이제 너도 시집갈 나이인데 숨겨놓은 애인이라도 있으면 말해 봐라 하며 내 표정을 살폈다. 애인이 없다고 하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알았다고 했다. 그럼 어떤 사람이면 좋으냐고 했다. 나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 좋다고 했더니 막 웃었다. 내 얼굴에 열꽃이 피어 볼그레했다.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중매를 한다며 일가 친척 고향분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산골로 시집 간 고모는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적극적으로 발을 벗고 나섰다.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산 너머 마을에 사는 총각이 맘에 든다며 고모는 아버지께 연락을 취했다. 남자의 키는 보통이고, 얼굴은 잘생긴 편이라며 예의가 바르다고 고모는 편지에 절절하게 써서 보내왔다. 마음씨도 착하고 평생 고생시킬 일이 없다고 했다. 나는 키가 보통이라 맘에 들지 않았지만, ‘키가 밥 먹여 주냐’ 하던 아버지 말에 기가 죽었다. 아버지는 날짜를 잡고 상견례를 하자고 했다. 내 의견은 들어 보지도 않았다. 무조건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 남자 쪽에서는 아가씨가 예쁘다, 맘에 든다 하는 말을 안 했다. 춘삼월에 핑크빛 장미가 그려진 한복을 입고 동네 사진관에서 약혼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보니 내 얼굴은 아무 표정도 없고, 옆에 약혼자는 산골에 살았는데 오히려 도시풍이 느껴졌다. 괜찮아 보였다. 약혼한 후에 1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내 이름 끝에 ‘자’가 들어있어 촌스러운 이름이라‘경아’로 불렀다. 우체부 아저씨는 애인이 하루가 멀다 하고 핑크빛 편지를 보내니 얼마나 좋아요 하며 웃었다. 밤중에 보내 준 편지를 읽으며 그리움을 달래기도 하고, 이튿날이면 편지를 기다리는 즐거움도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오고 가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그 이듬해 결혼식 날을 잡았다. 아버지는 시집을 가는 큰딸이 대견하다며 예식장 들어 가는 연습도 했다. 서울에 있는 나비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아버지는 팔짱을 끼고 약간 떨면서 음악에 맞추어 걸었다. 축하객들은 아가씨가 예쁘다며 맏며느리 감이네 했다. 최고로 예쁜 날이었다. 아버지가 우리 깅자 정말 예쁘구나 하며 나의 손을 잡고 걷던 순간이 행복했다. 산골의 시집살이는 힘들고 신혼의 단꿈도 깨졌다. 대가족들의 세끼 밥이며 청소에 새댁은 지쳐서 밤이면 울기도 하였다. 자상하고 든든한 남편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루는 점심을 한다고 마당에 걸어 놓은 양은 솥에 불을 떼고 있었다. 어머니와 시동생은 마루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갑자기 시동생에게 “너거 형수 예쁘제.”하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시동생은 “예.”라며 대답했다. 나는 속으로 너무 좋았다. 어머님의 시집살이도 다 사랑하는 마음이었구나 생각했다. 시집와서 고생한 일들이 모두 타서 재가 되었다. 사랑으로 안아준 가족들이 있어 잘 지냈다.
남편은 심심하면 나를 데리고 산책을 하였다. 봄에는 진달래 만발하고, 여름은 시냇가에 나가 파란물에 손을 담그고, 가을엔 풀벌레 울음소리, 겨울엔 눈이 내리는 길을 걸었다. 산골의 이런 풍경에 매료되어 행복감이 찾아 들었다. 그래도 사랑한다, 보고싶다, 그립다, 기다린다, 예쁜 경아라 고 쓴 편지를 주고받을 때가 좋았다. 지금도 장롱서랍 첫째 칸에 누렇게 뜬 봉투가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고 세월의 무게를 달고 산다. 나를 예뻐해 주던 그리운 얼굴들은 모두 다 말이 없다.
어머니 웃는 모습은 달빛 아래 피어난 박꽃 같다. 분을 바르지 않아도 하얀 얼굴은 예뻤다. 부엌일을 할 때는 무명 앞치마를 입었다. 나는 앞치마를 들추고 동그란 얼굴을 덮었다. 어머니의 냄새가 좋았다. 구수한 된장국 냄새 같았다. 내가 밖에서 뛰어 놀다 오면 따끈한 밥을 고봉밥을 주었다. 다른 집 아들보다 씩씩하게 자라야 한다고 했다. 내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함박꽃처럼 웃었다. 어머니가 꽃이었다. 오늘따라 그리운 어머니 어머니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