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홈

우리는 역사적 큰 과오를 되풀이할 수 없다 – 이호석 논설위원

나는 최근 고인이 되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애와 사후 정파에 의해 당하는 여러 상황을 보면서, 조선 중기의 내암 정인홍 선생을 생각하게 된다. 내암 선생 역시 이 고장 가야면 출생으로 학덕이 높은 학자이자 영의정까지 지낸 훌륭한 정치가이며, 나라가 외침으로 위태로울 때 앞장서 싸웠던 의병장이기도 하다.
선생께서 잠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향리에 계실 때인 1592년 4월 왜구의 침략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관군의 몰락으로 나라가 위태롭게 되자, 내암(당시57세)을 비롯한 남명의 제자들은 남도 곳곳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앞장서 나라를 구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7년간의 전쟁이 끝나고 25여 년이 지난 1624년 인조반정이 일어났고, 그들에 의해 내암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88세 고령에 참형을 당하셨다. 반정군이 내세운 죄명은 인목대비를 폐하고 영창대군을 죽이는 데 앞장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 백성들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던 내암을 그대로 두고는 자기들이 일으킨 반정을 성공시킬 수가 없어 씌운 허위 죄명이었음이 후에 밝혀졌다. 이렇게 내암이 역신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자 내암과 함께 의병에 참여했던 이 고장의 많은 선대들은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족보나 묘비 등에 의령 곽재우 의병장 아래서 활동을 한 것처럼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 후 인조반정 때 내암에게 씌운 죄명이 허위라는 사실이 확실히 밝혀져 1908년(순종 2년) 4월, 당쟁으로 희생된 77인이 신원 될 때 내암께서도 사면 복권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현 국가에서도 인정하고 1994년 국비 등 총 61억 원을 지원하여 지금의 ‘합천 임란창의사’를 건립케 한 것이다. 지금 이곳에는 내암을 주벽으로 하여 의병장 120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렇게 내암과 지역에서 구국에 앞장서 살신성인한 많은 선대를 모셔놓고도 솔직히 아직도 전체 군민과 외부로부터 크게 추앙받는 성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 사후에 바르게 고쳐져도 그 사실이 뿌리내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말해 주는 것이다.
지역의 역사에서 이런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 있었음에도, 반만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우리 고장에서 탄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우리는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과 같이 편향된 정세에서 전 대통령의 공과가 바르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성급하게 왜곡된 사실에 부화뇌동하며 군민을 분열시키고 지역을 욕되게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외지인들은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더라도 우리는 좀 더 침착하게 기다려야 하고, 그분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나열해 본다. 먼저 모 중앙언론사 원로 기자인 최 모 씨가 당시 계엄사령관을 지낸 분과 직접 대담한 기록을 보면, 당시 전두환 육군 소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 사건을 수사하는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이 사건에 관련 혐의가 있던 육군참모총장을 조사하기 위해 소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12·12사건은 전두환 장군의 책임이 있지만, 광주 5·18 사태와는 전혀 관계할 위치에 있지도 않았고, 관여하지 않았다며 모든 것은 계엄사령관 자신의 책임 아래서 일어났다고 했다. 또 5·18이 마치 전두환 장군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은 당시 전두환 장군과 계엄사령관의 위치와 그 성품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대목도 있다.
그 뒤 국회에서 그렇게 심한 청문회에서도 그랬고, 또 김대중 정권 이후 여러 정권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광주 5·18에 개입한 정황과 발포 명령을 밝혀내기 위해 수차례 특별수사를 하였으나 결국 명확한 증거를 밝혀내지 못했다. 이것은 당시 계엄사령관의 이야기가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전 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하여는 일단 법적 처분을 받았고, 그 후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두 분의 뜻으로 국민 화합 차원에서 사면까지 받았음에도 지금까지 그분을 심각하게 비난하고 홀대하는 것은 이 두 분의 정신에 반(反)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나라의 장래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 전 대통령 재임 시 공(功)이 수없이 많았음에도 공과를 함께 평가하지 않고 과(過)만 부각시키며 국민 화합을 저해하는 것도 올바른 민주 시민의 자세가 아니다. 내가 아는 전 대통령의 공(업적) 몇 가지를 들어본다. 86아시안게임 개최와 88올림픽을 유치하여 국위를 급격히 신장시키면서 국민에게 큰 자긍심을 가지게 하였고, 재임 기간 내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또 물가와 사회 질서가 어느 때보다 안정되어 국민이 살기에는 너무 편안한 태평성대의 시기였다. 그리고 도시와 차등을 받으며 농촌에서만 매년 두 차례 지겹게 실시하던 도로 부역과 통행금지가 없어졌고, 학생 교복 자율화 등을 시행하였으며, 지금의 공무원 연금제도도 그때 안정적으로 만들었다.
애국심은 자기가 사는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 즉 애향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애향심 없는 사람이 애국자인 것처럼 떠드는 것은 위선이며 허상이다. 이념이나 정파에 우선하여 먼저 내 고장부터 지키고 가꾸는 일이 바로 애국하는 일이다.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신 단재 신채호 선생이 한국 역사상 3걸 중 한 사람으로 꼽으며 존경한다는 내암 정인홍 선생을 제대로 현창(顯彰)하지 못한 선대들의 과오를 우리는 다시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한다. 반만년 역사에서 이 고장에서 처음 탄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위상은 지금까지 우리 향토사에서 근대 인물로 소개하고 있는 죽죽과 신성왕후, 남명선생 등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전 대통령을 기리고 현창하는 일은 후대에 물려줄 이 고장의 가장 큰 자랑스러운 무형자산임을 깊이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