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고
문경자
논설위원
남산시학당 문학의 집에서 유명 시인의 특강을 듣고 문우들과 막걸리 집에 들렀다. 해거름에 들어서니 침침한 그 곳에는 막걸리 냄새가 코 끝을 자극하였다. 현관문 왼쪽에 자리를 잡았다. 주인여자는 자다가 일어났는지 얼굴이 막걸리처럼 탁해 보였다. 안주는 제대로 만들어 줄까! 맛은 있을까 하는 얄궂은 생각이 막걸리에 취한 듯 비틀거렸다. 막걸리 세 주전자에 해물파전 세 개를 시켰다. 나는 술을 시키는 순간부터 걱정이 되어 가슴이 답답하고 뭔가 모르게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도 술을 먹어야 하나!
어느 자리에서나 술을 한 모금도 못한다고 하면 거짓말이라 하였다. 문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대개 술을 잘 먹던데 하며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술 먹는 것을 배워야 한다며 시아버지 제사가 있던 날. 시댁식구들이 모두 돌아 가고 난 후에 남편이 수고 했다며 막걸리를 소주잔에 따라 주었다. 숨을 쉬지 말고 쭉 마셔 보란다. 이 참에 술을 배워야지 하고 쭉 들이켰다. 술은 달달 쌉쌀한 맛이 났다. 그런데 내 눈이 팽이처럼 빙빙 돌았다. 몸에 힘이 빠지며 스르르 눈사람이 녹아 내리 듯이 술에 녹아서 방바닥에 일자로 뻗었다. 천장이 뱅글뱅글 돌아가고 남편과 아들얼굴도 겹쳐 보였다. 놀란 가족들이 괜찮아요 하고는 겁먹은 얼굴을 하고 내려다 보았다. 그 후로 술자리에 가면 나는 그 이야기를 해주면서 술을 전혀 못 한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주인여자는 해물 파전을 내놓았다. 희미한 전등불빛아래 놓인 접시에 담긴 파전은 보기부터 맛없게 보였다. 새우 살과 볼품없는 굴이 몇 개 얹혀 있고 밀가루가 많이 들어가 고급 식당에서 보는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배가 출출하니 막걸리 한 잔씩 하지 라며 자기 앞에 있는 잔에 부었다. 체면상 안 먹을 수도 없어 딱 한 모금을 마셨다. 순간 내 눈이 반짝 입 안도 달달 내 몸이 완전 유연하게 기름칠한 자동차 같은 성능을 과시했다. 옆 사람이‘아이구 술을 그렇게 마셔가지고 무슨 글을 쓰나 쭈욱 들이키게’하고는 잔을 비우는 것이 아닌가! 맨날 사람들은 나더러 술도 못 먹고 그러면서 무슨 글을 쓴다고 하느냐며 핀잔을 주기가 일쑤였다. 그런대로 분위기는 무르익어가고 얼굴도 노을에 물들 듯 붉어졌다. 내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약속이 있어 중간에서 양해를 구하고 먼저 일어섰다.
전철 5호선은 군자역을 향해 달려 가고 있었다. 한 모금의 술이 아직도 입 안에서 향기를 풍겨낸다. 회의보다는 고향 사람들과 옛날 옛적 이야기 나누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낙지 해물 탕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살아있는 낙지와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살아있는 낙지에게 사람들은 인사도 없이 초고추장으로 옷을 입혀서 어디론가 감쪽같이 감추어 버렸다. 입가에 빨간 단풍같이 수가 놓여졌다. 나는 먹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 고개를 돌렸다. 술이 빠질 수가 있나. 몇 모금의 술이 더 들어가서인지 괜히 웃음이 실실 나왔다. 밤거리에 나서니 서늘한 바람이 지나 가면서 비웃었다.
집으로 돌아와 가만히 남편 곁에 누웠다. 이거 도대체 잠이 오지 않으니 우째야 좋을꼬 이 일을, 가을밤 벌레는 처량하게 울어 대고 고향의 구수한 사투리에 건배 사가 천정에 글을 쓴다. 한 송이의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하고는 눈을 뜨고 줄줄 외웠다. 정말 술을 잘 먹어야 시도 잘 외우는구나 하고 혼자 웃었다. 그런데 갑자기 국화꽃 한 아름 안겨 주던 옛날 애인 얼굴이 퍼뜩 떠 올랐다. 가을 밤 무서리가 내리는 날. 별들이 반짝이는 길 모퉁이 담벼락에 기대어 나에게 국화꽃 향기처럼 달콤한 말로 내 귀를 녹여 주던 사람. 나와 헤어지면 못산다고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맹세 하던 남자, 그것은 가을 밤 분위기에 반하고 국화꽃 예쁜 입술에 반하여 나오는 말이라는 것을 모르고 홀딱 반한 적도 있었다. 그가 내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세 모금 먹은 술 때문에 잠 못 이루고 밤을 꼬박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