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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꿈(?) – 이호석 논설위원

꿈(夢) 하면, 보통 두 가지로 생각한다. 하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희망의 꿈이고, 다른 하나는 잠자리에서 꾸는 꿈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 희망의 꿈을 가지고 살지만, 그 꿈은 항상 현실보다 멀리 앞서있어 이루기가 매우 어렵다. 어느 사람이, 본인이 도저히 이루지 못할 황당한 꿈(희망)을 말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잠자리 꿈 얘기를 하면, 우리는 단번에 우스갯소리로 ‘개꿈’이라며 일축을 한다.
얼마 전, 잠자리에서 일상과 아무런 상관없는 아주 귀한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어 생각해도 정말 특이한 꿈이다. 수십 년 전, 사진에서나 자주 보고 존경하던 박정희 대통령께서 어쩐 일로 이 지역에 오셨다며, 우리 집엘 들렀다. 함께 온 수행원들은 마당에 서 있고, 대통령께서 성큼 거실로 들어오신다. 나는 너무 황공하여 몸 둘 바를 모르고 경황없이 넙죽 엎드려 큰절을 했다. 그런데 대통령께서는 아무 얘기도 않고 빙그레 웃기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이한 꿈이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분, 특히 대통령을 지낸 분을 꿈에서 만난 것이 길몽인지, 흉몽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이 나라 대통령을 지낸 훌륭한 분으로 평소 존경하던 분을 만났으니 아무래도 좋은 꿈 같았다. 우리 집에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하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로또복권을 사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꿈 얘기를 함부로 하면 효력이 없어진다고 해서 아내와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꿈 얘기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곧장 읍내로 나가 복권 파는 가게로 갔다.
내가 찾아간 곳은 평소 잘 아는 분이 운영하는 조그마한 가게인데, 전에는 다른 용도로 쓰다가 지금은 복권만 팔고 있다. 가게 앞 도로 한쪽에 차를 대고, 가게 안을 힐끗 보니 40대쯤 돼 보이는 아주머니가 복권을 사고 있다. 평소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아무 가게나 곧잘 들렸지만, 복권을 사려니 왠지 남의 눈치가 보인다. 걸핏하면 복권이나 사서 요행이나 바라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다. 차 안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아주머니가 나간 후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 잘 아는 분이라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은 로또복권 두 장을 살 요량이다. 한 장은 내 생년월일을 넣어 수동으로 하고, 한 장은 이날의 운세대로 나오게 자동으로 사려고 한다. 수동 주문 방식을 몰라 주인에게 물었더니 설명은 하지 않고, 책상 옆 쓰레기통 안을 이리저리 뒤지더니 심하게 꾸겨진 주문양식 한 장을 꺼내주면서 이와 같은 요령으로 숫자에 표시를 하라고 했다. 그것을 모범 답안으로 하여 내 생년월일을 앞자리 넣고, 나머지는 손이 가는 대로 표기를 해서 주었다. 내가 준 주문서를 출력기에 넣으니 금방 복권 두 장이 사이좋게 붙어서 스르르 나온다. 나온 복권을 보니 한 장은 수동, 한 장은 자동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전국 어디에서나 자기가 표기하는 대로 즉석에서 나오는 복권이 정말 신통하다.
복권 두 장을 받아 나오려는데,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던지, 아니면 손님이 뜸할 때라 심심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자기 가게서 1등이 한번, 2등은 여러 번 나왔다는 것과 그리고 이 시스템이 중앙 어느 한 곳에서 전국의 2천6백여 개의 판매소에 연결이 되어 있고, 즉석 판매가 원활히 될 수 있도록 통제를 잘 해주고 있다는 등 묻지도 않는 얘기를 하며 시간을 끈다. 잠시 듣고 있다가 타고 온 차가 도로상에 서 있다며 급한 듯이 인사를 하고 나와 버렸다.
복권을 사고 내 마음은 이미 부자가 되었다. 이번 주 일등 당첨금은 얼마나 될까. 또 일등에 당첨되면 그 돈은 어디에 어떻게 쓸까. 마치 일등을 ‘떼 놓은 당상’인 양 마음이 부풀었다. 일등 당첨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 지금 내 나이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어려울 것 같고, 나에게 큰돈이 꼭 필요한 곳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먼저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오래된 고물이니, 새 차를 사야겠다. 당첨금의 반은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그리고 남은 돈의 절반은 형제들을 도와주고, 그러고도 남은 돈 중에서 내 여윳돈으로 조금 남겨두고, 나머지는 사회의 요긴한 부분에 기탁을 하면 모두 얼마나 좋아할까.’ 김칫국부터 한껏 마셨다. 복잡다단한 나눔 공식에 머리가 산만하였지만,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이와 유사한 일로 로또복권을 산적이 또 한 번 있었다. 4년 전 여름 어느 날 밤, 돼지꿈을 꾸었다. 어디서 왔는지 큰 암퇘지 한 마리가 새끼 여러 마리를 끌고 꿀꿀거리며 내 집으로 들어왔다. 평소 돼지꿈이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터라 기분이 좋았다. 일어나자마자 식구한테 자랑을 했고, 아침을 먹고 나가 마을회관에 모여 노는 친구들에게도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읍내로 나가 로또복권 한 장을 샀다. 그때도 복권을 사고부터 당첨결과를 알 때까지는 온갖 황홀한 생각으로 기분이 좋았다.
결과는 두 번 다 “꽝”이었다. 두 번 모두 분명히 좋은 꿈같았는데, 돼지꿈을 꾸었을 때는 미리 떠벌려서 김이 샌 것 같고, 전직 대통령 꿈을 꾸었을 때는 한 장을 수동으로 하면서, 판매소 주인이 견본을 그 지저분한 쓰레기통에서 꺼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결론은 모두 개꿈이었다. 그러나 그 개꿈이 잠시나마 내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으니 별로 손해를 본 것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