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충남 아산 문화유산 답사를 다녀와서 – 이병생 합천문화원 향토사문화소장
합천박물관(관장 조원영)에서는 제22회 테마가 있는 문화강좌(힐링과 해학이 공존하는 공동체문화의 향연 동·서양의 공연문화)를 개설하여 강좌를 해오던 중 2018.2.6. 충남 아산의 문화유산 답사를 다녀왔다. 영하 12도를 오르내리는 추운 날씨 속에 70명의 수강생이 관광버스 2대를 이용하여 아침 8시에 합천을 출발하여 11시에 아산시 외암 민속마을에 도착하였다.
외암 민속마을은 중요 민속문화재 제236호로 지정되었으며 아산시내에서 남측으로 약8km 떨어진 설화산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조선 선조때 부터 예안이씨가 정착하면서 예안이씨 집성촌이 되었고, 그 후 예안이씨 후손들이 번창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면서 양반촌의 면모를 갖춰, 성리학의 대학자인 외암 이간(李柬) 선생이 마을에 살면서 널리 알려 졌으며 그의 호인 외암도 마을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지는데 충청지방 교육 격식을 갖춘 반가의 고택과 초가, 돌담, 정원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다량의 민구와 민속품이 전해져 내려온다. 가옥 주인 관직명이나 출신 지명을 따서 참판댁, 감찰댁, 풍덕댁, 교수댁, 참봉댁, 영암댁, 신창댁 등의 택호가 정해져 있으며, 마을 내에는 6000m의 자연석 돌담장이 보존중이며 울창한 수림이 마을 경관을 더욱 고풍스럽게 하고 있으며 특색있게 꾸민 정원이 한결 눈길을 끌었다. 중식시간이 조금 늦었지만 아산 맹씨 행단으로 장소를 옮겼는데 여기는 고불 맹사성 정승의 조부 맹유와 부친 맹희도 맹사성 세분의 위폐를 모시고 있는 세덕사라는 사당이 있는 곳이며 최영 장군의 집이었다가 손자사위인 맹사성에게 물려준 고택이 있으며 고택의 역사와 함께 600년이 넘은 우람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본래 “행단”이란 말은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강학을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맹사성의 아버지 맹희도가 이곳에서 학문에 정진하여 후학을 모아 강학하였기에 “맹씨 행단”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1936년 1월 21에 사적 제109호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맹사성 정승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세종대왕시 황희정승과 맹사성정승 두 정승으로 말미암아 정치를 잘할 수 있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맹사성(1360~1438)의 본관은 신창(新昌)이다. 신창맹씨 대동보에 의하면 신창맹씨는 중국 맹자의 40세손인 맹승훈이 당나라 말기 신라로 건너와 신창에 정착했고, 그 후 신창에서부터 맹씨들이 퍼져나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신창맹씨 후손들은 맹승훈을 한국계시조로 모시고 있다. 또한 사성(思誠)이란 이름은 정성스러움을 생각하는 것이고, 고불(古佛)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오래된 부처”란 뜻이다.
중식 후에는 온양민속박물관을 찾았다. 온양민속박물관은 종합사립 민속박물관으로서 전시, 교육, 워크숍 등 한국인의 전통생활 문화사를 한눈에 보고, 듣고, 체험 할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1978년 구정 김원대 선생이 설립하였다. 전체대지는 약2000평에 전시관은 1900여 평의 규모로 세 개의 상설전시실과 한 개의 기획 전시실 그리고 야외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전시실은 삶의 터전으로 선조들의 지혜를 찾아볼 수 있고 제2전시실은 두레, 일터로 삶의 터전을 마련한 조상들의 모습을 만나 볼 수 있다.
제3전시실은 축적되어온 의와 예는 생활의 구석구석에 자리 잡아 올곧은 삶을 살도록 해주었다. 야외전시장은 자연풍경으로 놀이마당의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해서 평소에 찾지 못했던 유적지를 찾아봄으로서 수강생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 하루였다. 합천박물관에서는 연중 좋은 강좌를 개설하고 저명한 교수를 초빙, 강사진으로 하여 군민에게 지식함양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합천군내에서는, 합천노인회에서는 노인대학운영과 합천문화원의 한문고급반, 가야산국립공원의 시민대학에서는 많은 인원이 수강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각종 문화강좌와 취미활동으로 군민들에게 교육함은 우리 합천군의 앞날의 밝음을 암시하고 있으므로 더욱 많은 교육 강좌개설에 힘써주기를 이 기회에 건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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