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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치(禮治)로 정치보복의 꼬리를 끊어야 한다 – 이성동 논설위원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을 인용하면 “인류의 역사란 사람들이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 투쟁해온 기록”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9개월이 지난 지금 정치권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지 1년 4개월,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기조를 바라보는 정치 전문가들의 시선은 엇갈리고 있다. 적폐청산의 칼을 쥔 검찰의 수사는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적폐정당, 노동적폐, 언론적폐, 종교적폐까지 경계도 성역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적폐청산의 행태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끈 국민적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분석부터 국민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주장까지 나온다. 그렇지만 검찰의 칼날이 주로 야권뿐만 아니라, 전(前), 전(前) 과거정권까지 향하는 모양새여서 국민통합이 저해되고, 정치권에서 여야의 협치가 실종될 수 있다는 지적들도 나오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쪽이 피해의식을 갖게 되면 통합이 어렵다”며 “문무일 검찰총장이 올해 안에 적폐청산을 끝낸다고 했는데, 너무 오래 끌면 부작용이 크다”고 비판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야당이 정치보복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끌고 갈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한 것이지, 힘이 있다고 막 쓰면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집권당이 대통령과 청와대 눈치만 보고 비판의 목소리가 전혀 없다”며 “개혁을 통해 적폐청산으로 가는 것인지, 한풀이를 하는 것인지 여당이 좀 더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학을 전공한 국내 굴지의 대학교수가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을 정도이면 일반국민들의 시각은 더 말할 나위없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 Carr)는 자신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역사란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불후의 명언을 남겼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도 오늘에 비춰보고 새로운 미래를 지향해 갈 수 있다는 말이다. 과거사에서 교훈을 얻어 미래 행동을 위한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의 과거는 반성할 것도 많지만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도 많다. 한국은 세계사에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 국가이다. 1970년대 이후 새마을운동으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근대화는 세계인들이 “한강의 기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였고, 국가발전 모델로서 타산지석으로 삼고 있다. 8·15해방 후 분단국가가 되고, 세계 최빈국에서 2010년대에 들어서며 세계경제 10대국으로 부상했다. 6·25전쟁이 끝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맥아더 원수가 남긴 말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 나라가 다시 일어서기까지는 앞으로 10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예언은 빗나갔다. 우리는 맥아더가 돌아가고 50년 안에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한국과 독일은 2등을 위해 뛰지 않는다”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세계사에 전쟁의 폐허에서 우리처럼 빠른 경제발전과 민주의의를 발전시킨 나라는 없다. 우리는 밝은 미래를 여는 마음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 우리의 과거사를 온통 부정으로 보거나 적폐대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과거에 잘못된 것은 묻어두고 지나치자는 말은 아니다.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고, 다시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여야 모두 탁마(琢磨)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과거를 청산대상으로 보는 듯하다. 경제정책에도 뜬금없이 소득주도 성장론을 내놨다. 실질 임금이 증가하면 소비와 투자가 증가하고, 노동생산성이 증가해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하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최저임금을 상향한 것은 우선은 좋을지 모르지만, 인건비 상승 여파는 중소기업의 고용능력을 약화시키고, 생필품을 비롯한 전반적인 물가상승으로 이어져 근로자 전체에게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현재 실업자가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이를 방증하는 것이다.
“법이 이미 일어난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라면 예(禮)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방지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요순의 정치가 동서고금의 표본이 된 것은 덕과 예에 근본을 두고 백성을 다스린 심법(心法)에 있었다. 덕(德)과 도(道), 즉 예(禮)에 의한 덕치(德治)를 하면 다음 정권에서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정치보복은 ‘정치 콤플렉스’의 결과물이다. 국민이 만들어준 권력 기반에 자신감을 가진 통치자는 정치보복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음 정권으로부터 그것을 피할 수 있다.
공자는 “정치란 먹을 것을 풍족하게 하고, 군비를 충실히 하며, 백성들이 믿고 따르게 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공권력의 도움 없이 공자가 제시한 법도를 따라 백성(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의지로 예치를 하는 정권만이 정치보복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