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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 기다림 – 이호석 논설위원

절기로 경칩이 지났지만, 오늘 아침도 제법 쌀쌀하다. 이른 아침인데도 마을 앞 국도에는 각양각색의 차들이 줄을 이어 달린다. 무엇이 모두를 저렇게 바쁘게 달리게 할까? 저렇게 달려가는 데는 반드시 어떤 기다림이 있을 것 같다. 사람 만나기를 기다리고, 물건을 기다리고, 소식을 기다리고, 어떤 희망 등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기다림은 언제나 기대와 설렘을 갖게 한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고, 그 기다림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인지 모른다. 당장 며칠 전 설날만 해도 그렇다. 고향의 부모님은 오랜만에 찾아오는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을 맘 설레며 기다렸고, 고향을 찾는 자녀들도 그날을 기다리며 선물을 정성껏 준비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설 명절을 보내고 헤어질 때도 부모님의 생신이나 집안 제사, 추석날 등 다음의 만남과 기다림을 무언으로 약속한다.
또 삶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더 나은 내일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임신한 새댁은 열 달의 불편과 고통을 참아가며 아이의 탄생일만 기다린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라, 좋은 직장, 좋은 짝을 맞아 평생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린다. 이외도 중요한 시험을 쳐 놓고 좋은 결과를 기다리고, 직장인은 승진을 기다린다. 또 하는 사업이 번창하기를 기다리고, 힘든 일을 해놓고 좋은 결실을 기다리는 등 우리의 일상은 바로 기다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기다림에 꼭 기대와 설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힘든 지병으로 오랜 세월 병상에 있으면서 희망을 잃고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 상환능력 없이 많은 부채를 가진 사람이 옥죄는 마음으로 보내는 나날, 죄를 지어 구속된 사람이 재판의 판결을 기다리는 시간, 남에게 거짓말이나 사기 행각을 해놓고 항상 불안에 떨고 있는 시간 등과 같이 생각하기 싫은 기다림도 많을 것이다.
기다림은 우리 인간생활에만 있는 게 아니다. 봄이 되면 농부들은 갖가지 씨앗을 뿌려놓고 새싹이 돋아나기를 기다리고, 이것이 무럭무럭 자라 꽃피고 열매를 맺어 수확하기를 기다린다. 자연의 나무들도 마찬가지다. 가을이 되면 제 몸을 위해 여름내 고생한 잎들을 매몰차게 떨쳐버리고, 차가운 북풍에 떨며 봄 오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또 봄이 오면 모든 식물은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풀고, 힘겹게 물을 빨아올리며 가지를 뻗고 잎을 자라게 하여 또 한해의 성장을 기다린다. 이렇듯 우리 인생이나 자연은 항상 기다림 속에서 살고 있다.
나는 기다림 하면, 가끔 ‘미생지신(尾生之信)의 유래’를 생각한다.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미생이란 청년이 살았다. 이 사람은 남하고 약속을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약속을 꼭 지키는 사람이었다. 어느 여름날, 미생은 같은 마을에서 사귀고 있는 아가씨와 그날 저녁에 마을 인근의 개울 다리 밑에서 만나기를 약속하였다. 미생은 약속한 시각에 맞춰 그 장소에 나가 한참을 기다려도 아가씨가 나타나질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졌고, 불어난 개울물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가엾게도 익사를 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약속의 지킴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으로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생의 행위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의 사소한 약속에서부터 국가의 대사까지 형식은 다르지만 많은 게 약속으로 이루어지고, 그 약속 앞에는 반드시 기다림이 있다. 즉, 인생은 자기가 지향하는 목표와 수많은 약속의 기다림 속에 산다. 그러므로 평소 그 많은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게 보내느냐가 바로 그 인생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