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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박태준의 흔적을 지우려는 포항제철 – 이성동 논설위원

1950년대 6·25 전쟁을 겪으며 세계에서 가장 빈곤했던 한국이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부국으로 부상(浮上)할 수 있었던 모티브는 산업화 과정에서 국력을 집중한 중화학공업(重化學工業)이 있었고 그 핵심은 제철 산업이었다.
철재원(鐵材源)이 가장 빈약했던 철의 황무지 대한민국의 영일만에 오늘날의 포스코가 실현된 것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제철보국(製鐵輔國)의 원대한 꿈과 뉴프론티어 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들은 우리 민족을 억누르고 있던 가난의 굴레를 떨쳐버리고 잘사는 나라를 이룩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제철보국에 인생을 걸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마치 미친 사람 홀대하듯이 냉대했고 국제사회에서도 처음에는 안 되는 일이라고 냉대했다. 그렇지만, 이들은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제1공화국 정부가 추진했던 ‘일관제철소’ 건설계획과 제2공화국 정부의 서독 차관을 이용한 제철계획도 무산되었다. ‘조국 근대화’라는 목표를 내건 박정희 대통령의 새로운 정부가 출범되면서 그의 진취적인 기상과 탁월한 리더십으로 가난에서 벗어나는데 필수 산업인 철강, 시멘트, 비료 등 기간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종합제철소 건설을 구상했다. 그리고 그는 제철산업을 추진할 적임자를 박태준으로 낙점하고 그에게 특별임무를 맡겼다. 그는 박태준에게 일본 등 선진국의 제철산업을 둘러보고 한국제철산업의 큰 그림을 그리게 하고, 자신도 미국의 피츠버그로 날아갔다.
그들의 외국자본 유치를 통한 종합제철소의 꿈은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 1966년 12월 우여곡절 끝에 미국, 서독, 영국, 이탈리아 등 4개국이 참여한 대한국제제철차관단 키사(KISA)가 구성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1967년 10월 20일 키사와 우리 정부는 ‘기술과 자금지원에 대한 기본협정’을 체결했다. 키사 회원국이 당시 1억 달러를, 우리나라가 3천5백만 달러를 부담한다는 조건으로 1968년 4월 마침내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현 포스코)를 출범시켰다. 경험도 기술도 자본도 없던 우리나라가 철인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온갖 역경과 싸워 종합제철을 추진한지 11년 만에 철을 통해 경제자립을 이룩하려는 제철보국의 꿈이 마침내 햇빛을 보게 되었다.
포스코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제철회사’로 지난해까지 8년 연속 1위로 선정되는 등 세계 5위 철강기업으로 우뚝 섰다. 오늘날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정보기술산업(IT)과 함께 여기서 생산되는 제철을 소재로 한 자동차산업이 우리나라 지속성장의 양대 축으로서 수출견인차 역할을 견고하게 하고 있어 곧 국민소득 4만불 시대를 전망할 수 있는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1일은 포항의 작은 포구 영일만 허허벌판에서 맨손으로 시작한 철강신화의 대장정이 시작된 지 반세기를 맞는 날이다. 포스코가 만든 철강은 197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산업 근대화의 심장부 역할을 맡아 왔고, 지금도 새로운 철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포스코는 다가 올 100년의 준비도 착실히 다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산업화의 중심축이었던 포스코가 그 역사인 <포스코사사(社史)>를 쓰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포스코의 상징인물 박태준 전 사장의 포스코 관련 내용이 대폭 삭제되거나 수정될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어느 나라나 위대한 역사는 그 중심에 선 인물을 자랑으로 삼고 후세에 기리 그 정신을 본받게 하고 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나 임진왜란 누란의 위기에서 국난을 극복했던 이순신 장군 등을 역사에 남겨 기리 국민정신의 표상으로 삼는 것은 그런 뜻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인이 알고 있는 허허 벌판 영일만의 황무지에서 일군 포스코 창건의 신화나 오늘날의 포스코의 영광을 실현시킨 주역, 박정희, 박태준의 그 공명(功名)을 약화시키거나 지우려는 의도가 문재인 정부의 역사수정주의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이다. 향후 그 귀추(歸趨)를 국민들이 관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