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의 시가나를안아준다|
풋사과의 주름살 – 이정록 시인
어물전 귀퉁이
못생긴 과일로 塔을 쌓는 노파
뱀 껍질의 풀잎을 쓰다듬듯,
얼마나 보듬었는지 풋사과의 얼굴이 빛난다
더 닳아서는 안 될 은이빨과
국수 토막 같은 잇몸과, 순전히
검버섯 때문에 사온 落果
신트림의 입덧을 추억하는 아내가
떫은 핀잔을 늘어놓는다
식탁에서 냉장고 위로, 다시
세탁기 뒤 선반으로 치이면서
쪼글쪼글해진 풋사과에 과도를 댄다
버리기에 마음 편하도록 흠집을 만들다가
생각없이 과육을 찍어 올린다
떫고 비렸던 맛 죄다 어디로 갔나
몸 안을 비워 단물 쟁여놨구나
가물가물 시들어가며 씨앗까지 빚었구나
생선 궤짝에 몸 기대고 있던 노파
깊은 주름살 그 안쪽,
가마솥에도 갱엿 쫄고 있을까
낙과로 구르다 시든 젖가슴
그 안쪽에도 사과씨 여물고 있을까
주름살이란 것
內部로 가는 길이구나
鳶 살처럼, 內面을 버팅겨주는 힘줄이구나
☞한 줄 감상
호그니: 버림 받은 풋사과는 제 스스로 씨앗을 성숙시키고 있었다. 버려지고 이리저리 치이면서 생긴 주름이 그 힘의 원천이었으리라. 시인은 다 시든 노파의 가슴에 사과꽃 같은 젖꼭지를 달아주었다. 세파의 굴곡만큼 쭈글쭈글한 주름이야말로 이 ‘닳아빠진’ 세상을 지탱하는 힘줄이고, 내면으로 비상하는 솔개(鳶)의 살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시랑시랑: 이 시를 100번 읽었다.
입술의 침이 쪼글쪼글해진 느낌.
읽는 내내, 떫고 비린 나의 내면을, 겉만 번지르한 나의 껍질을 이 시가 ‘생각없이 찍어주기’를 바랬다.
나도 단물 쟁여 씨앗을 품고 싶다.
봉주르강: 냉장고 야채칸 쪼글쪼글 비틀어진 사과와 노파의 주름살 속 내면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 주름이 빚어지는 과정을 단맛 쟁이는 늙음이라니.. 씨앗이라니..
사과의 시듦과 폭싹 주저앉은 노파를 애련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인에게 그냥 스치고 말 것은 하나도 없다.
피었다 시든다지만 시든 삶은 어디에도 없다.
※ 합천문인협회에서 주관하는 제6회 합천문학콘서트가 이정록 시인을 초청하여 ‘시인의 살림’이란 주제로 오는 5월 24일 목요일 저녁 6시30분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