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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거름 무더기 – 문경자 논설위원

지난해 오래된 시골집을 리모델링하였다. 시집가서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시부모님이 남겨준 집이라 애착이 갔다. 옛날 모습을 그대로 살려 놓아 더 좋은 느낌이 들었다. 공사하는 사람들이 허물어 버린 거름 자리에는 잡풀들이 수북하게 자라서 일가를 이루고 있었다. 아버님은 부지런하여 거름을 만드는 일에 정성을 쏟았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 거름은 필수였다. 그 자리에 서서 생각을 하니 아버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거름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하겠지만 그 때만 해도 거름자리는 보물섬처럼 보였다.
농사밖에 모르는 아버님은 눈만 뜨면 거름 무더기를 만들기 위해서 풀베기 일을 쉬지 않고 하였다. 사람의 비만은 병을 가져오지만 거름 무더기는 비만해져야 볼품이 있었다. 얼기설기 지은 양철지붕 아래 자리잡은 거름 무더기. 이슬이 내리면 습기가 차고 비가 내려 축축하게 젖어 들기도 하였다. 냄새가 독하긴 해도 자주 맡다 보면 잡곡밥을 지을 때 나는 구수함이 코로 느껴진다. 그곳에 적당한 햇빛과 바람이 있어 거름은 막걸리가 익듯이 잘 익어갔다. 그 안에는 땅 속의 온기가 베어 있어 더 좋은 거름으로 태어난다. 돼지우리에서 퍼낸 오물들, 귀여운 닭똥, 길가에서 주운 쇠똥,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들이 곰삭아 농사를 짓는 데는 일등공신이었다. 요즘처럼 음식물 버리기에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저절로 해결이 되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는 고마운 비타민이었다. 하루도 쉴 사이 없이 때를 맞추어 풀을 베야 하는 일도 수월하지는 않았다.
들에 나가면 초록의 싱싱한 풀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면서 어떤 것들은 하얀 꽃망울을 안고 서있었다. 그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들, 여치가 찌르르 찌르르, 이름 모를 작은 풀벌레 울음소리가 조용한 한낮을 깨운다. 물을 대기 위해 막아 놓은 논둑에서 개구리들 개굴개굴 우는 소리, 저쪽 건너편에서 우는 방울벌레, 그 소리는 땅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기타의 진동이었다. 그 위에서 풀을 베는 낫질의 단조로운 소리는 아버님의 힘든 숨소리도 함께 들어 있었다. 풀을 베는 동안 계속하여 낫을 돌에다 문지르는 소리. 그 소리에 익어 가는 저녁. 금방 몰려오는 구름에 강한 폭풍 폭우가 금방이라도 몰려올 것 같았다. 지게에 높이 쌓은 풀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풀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수북하게 올라간 거름 무더기는 풍부한 자원이었다.
어떤 날은 어미 닭이 거름더미를 발로 파헤쳐 가녀린 지렁이를 물고 달아난다. 몸이 둥글고 게으른 굼벵이의 뒤뚱거림. 은빛 날개를 펴고 거름 더미 주위를 맴도는 고추잠자리, 말라붙은 풀줄기에 왕거미가 거미줄로 길을 만들어 기어가다 땅으로 떨어졌다. 마침 거름더미를 헤집고 있는 장닭의 먹이가 될까봐 줄행랑을 치는 모습도 보였다. 어머니가 막걸리를 걸러내고 남은 술 찌개미도 거름을 만드는데 한몫을 하였다.
아버님은 막걸리 한 사발과 멸치를 안주 삼아 마신 후 거름을 뒤집는다. 거름은 파내어 뒤지고 뒤집어도 끝이 없었다. 쇠스랑이 움직일 때마다 거름은 더 부드럽게 말을 잘 들었다. 거름 무더기를 보기만 하여도 흐뭇했다. 어머니는 아버님이 편찮아 누워 있을 때 거름 무더기 속에 살고 있는 굼벵이를 약용으로 다려서 아버님께 드렸다는 말도 들었다. 두 분이 잔치국수로 식사를 마치고 거름더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도 눈에 선하였다. 그 반면에 게으름만 피우는 똘이네는 풀보다는 자질구레한 옥수수 껍질 아니면 어제 밤에 먹은 수박 껍질이며 고구마 줄기 같은 영양가 없는 것 뿐이었다. 곡식을 잘 키우려면 거름을 잘 만들어 주어야 반질반질 윤이 나는 잎이며 단단한 열매가 맺는다.
아버님 면바지에 묻었던 풀잎들 수를 놓아주었다. 자연이 물들은 메리야스에 푸른 산도 있고, 들도 있고, 파란 하늘, 물이 맑은 시냇가도 있었다. 여치가 날아와 앉은 자리. 잠자리가 어깨 위에 앉았던 자리 모두가 거름더미의 흔적이었다. 그 안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풀들이 모여 바닥을 다지고 기둥을 세우고 벽을 만들어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붙어 살면서 해와 달처럼 둥글게 익어갔다.
요즈음이야 풀을 베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싶다. 시골에 내려가서 보아도 거름자리는 사라지고 자동차가 서 있었다. 마당에 흙이 있는 집도 드물었다. 그때 거름 무더기에서 피어나던 꽃들이 산꼭대기 정원처럼 아름다웠다. 아버님의 냄새가 스며있는 거름 무더기 옆에 쪼그리고 앉아 별을 헤던 여름밤을 되새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