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왕국 가야 (1) – 차세운 경북대학교 행정학 석사
사람들은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역사의식이 중요해지는 오늘날 상당히 의미있는 경구(警句)로 와닿는다. 그런데 쉽게 쓰이는 말이 말의 의미를 한번쯤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민족이란 도데체 무엇이며, 그 민족이 공유하고 있는 집단의 기억인 역사에 대해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말이다. 가끔 민족과 역사에 대한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막각을 경계하고 미래를 논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각 개인들의 기억을 들여다보면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고, 때로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배제된 채 자의적으로 기억을 재구성하고 있다. 개인을 넘어 집단으로 확장해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독도문제, 동북공정, 위안부 문제 등 많은 역사논쟁이 집단간 기억과 해석의 차이에 의해 발생하게 된다. 현대의 한민족은 주변 국가들의 기억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해 왔지만, 한민족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기억에 대해 돌아볼 기회는 적었다.
한국의 고대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심이며, 특히 신라사가 한국사 전반의 굵은 줄기를 이루고 있다. 반면, 가야는 한반도 남부에 700여년간 존속해 왔지만 그 가치에 걸맞는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하는 비주류 연구분야다. 가야의 영토와 범위, 존속기간 등을 고려하면 한국의 고대사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연결고리인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우리 고대사가 삼국사 이후부터 되다보니 삼국사 이전의 역사, 고대사가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측면이 있고, 특히 가야사는 신라사에 덮여서 제대로 연구가 되지 않았다. 보통의 가야사가 경남을 중심으로 경북까지 미치는 역사로 생각들을 많이 하는데, 사실 더 넓다. 섬진강 주변, 그 다음에 광양만, 순천만, 심지어는 남원일대, 금강 상류 유역까지도 유적들이 남아 있다. 그 정도로 아주 넓은 지역에 걸쳐있던 역사이기 때문에 가야사 연구 복원은 영호남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면서 또 영호남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이라고 생각된다.”(오마이뉴스 17. 6. 1)
우리가 가야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박물관이 세워진 순서만 보더라도 경주박물관(신라)이 먼저 세워지고 뒤에 부여박물관(백제), 김해박물관(가야)이 세워졌다. 이는 각 고대 국가별 연구기회의 우선순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복원지시를 공개석상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고 한다.
2017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여민1관 소회의실에서 주재한 2차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에서 가야사 복원에 대한 지시를 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첫째 이유는 대통령이 특정 시대에 대한 연구를 독려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고, 둘째 이유는 가야사 연구가 역사 연구 분야들 중에서도 특히 비주류에 속하는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2017년 6월 1일 발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고대 가야역사 연구·복원사업을 (정책과제에) 꼭 포함시켜 줬으면 좋겠다.”며 “국정기획위가 놓치면 다시 과제로 삼기 어려울 수 있으니 이번 기회에 충분히 반영되게끔 해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공무원의 최고위 대통령도 하시고…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임기동안 국정운영을 잘 이끌어주시길 바란다. 어쨌든 이 글은 정치평론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도록 하겠다. 그렇다면 한국사에서 가야란 어떤 국가였으며, 왜 소외될 수밖에 없었는지 간략히 알아보도록 하자.
짧은 발언이었지만 문 대통령이 역사 또는 가야사에 대해 일반인 수준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관심이 상당히 큰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특별 지시가 갑작스럽게 내려올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연원을 좀 더 찾아보고자 하였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역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원래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싶었다. 학교 다니는 내내 역사과목이 가장 재미있었고, 성적도 제일 좋았다. 지금도 나는 역사책 읽는 걸 좋아한다. 처음 변호사할 때 ‘나중에 돈 버는 일에서 해방되면 아마추어 역사학자가 되리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래서 대학입시 때에도 역사학과를 가고자 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과 부모님이 반대했다. 내 성적이 법·상대에 갈 수 있는 등수라는게 이유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