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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행복한 구속 – 이호석 논설위원

아침에 일어나니 제법 많은 비가 내린다. 밤사이 비가 얼마나 왔는지, 텃밭 고랑 곳곳에 물이 고여 있다. 매일 아침 마을 앞 체육공원으로 나가는 아침 운동을 포기하고, 우산을 받쳐 들고 옆집 뒷집(?)을 돌아본다. 옆집은 가로세로 일 미터 남짓한 판잣집이다. 집안을 들여다보니 반려견 백구가 비에 흠뻑 젖은 채 웅크리고 앉아 있다. 나를 보고도 별 반가운 기색이 아니다. 조금 전 볼일 보러 나왔다가 비를 맞아 기분이 영 찝찝한가 보다.
집 모퉁이를 돌아 뒷집으로 간다. 뒷집은 작은 텃밭 한쪽에 있는 두 평반 쯤 되는 닭장이다. 안에는 수탉 한 마리와 암탉 여섯 마리가 정겹게 살고 있다. 모두 나를 쳐다보더니 소란스레 움직이며 내가 있는 쪽으로 우르르 몰려온다. 밤새 내린 비로 닭장 뒷벽이 거의 젖어있다. 이놈들 역시 기분이 별로인 것 같다. 가축들도 궂은 날씨는 싫은 모양이다.
아침 식사를 하고 오리 길 떨어진 그라운드골프장 휴게실에 나가 놀다가 오후 두 시경 집으로 왔다. 밖에서 돌아오면 습관적으로 옆집, 뒷집에 사는 놈들의 안위를 먼저 확인한다. 그런데 뒷집으로 가다가 깜짝 놀랐다. 닭장 안에 있어야 할, 닭 일곱 마리가 모두 밖으로 나와 텃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텃밭에는 상추, 부추, 고구마, 파, 들깨 등이 한창 무성하게 자라 푸르름으로 가득하였는데, 쪼아 먹고, 짓밟고 만신창이가 되어있다.
공들여 심어 가꾼 채소밭이 쑥대밭으로 변해 있는 모습을 보니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다. 그 기분대로라면 내가 들고 있는 작대기에 어느 한 놈이 사망하거나 중상자가 발생할 상황이다. 억지로 참고 서성이다 보니 내 혈압도 차츰 내려가면서, 그래도 닭들이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텃밭에 있는 게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쑥대밭을 만들어 놓고 멀리 달아나버렸거나 남의 집 개한테 물려 죽었더라면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봄, 병아리로 낯설고 물선 우리 집으로 이사 온 지 1년 3개월, 그동안 우리에만 갇혀 있었으니 얼마나 바깥세상이 그리웠겠는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깥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자유를 누린 것 같다. 혹시 울타리 철망에 터진 곳이 있나 살펴보았으나 아무런 이상이 없다. 가만히 이놈들의 탈출 경위를 추적해 본다. 아침에 비를 맞으며 닭장으로 들어가 먹이를 주고 급히 나오면서 닭장 문을 제대로 걸지 않았던 것 같다. 조금 열린 문 틈새로 한 마리씩 탈출한 것이다. 잘못은 모두 나에게 있었다.
이놈들이 탈출하여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좋아하는 자유를 내가 너무 구속하고 있었던 것 같아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든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옆에 있는 반려견과 이놈들의 구속 상태를 비교해본다. 반려견은 목줄 끝에 원형 고리를 달아 7~8미터 길이의 철선을 따라 양방향으로 왔다 갔다 뛰어다닐 수 있다. 반면에 닭들은 두 평반 쯤 되는 좁은 우리 안에 갇혀 살지만, 암수컷이 수시로 사랑도 나누고, 마음대로 활보하며 산다. 목줄에 걸려있는 놈과 갇혀 있는 놈들 중 어느 놈들이 구속에 의한 스트레스가 더 심할까를 가늠해 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뜬금없이 우리 인간들이나 집에서 기르는 가축 대부분이 구속을 당하며 산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들도 직장이나 일터에서 출근 시간부터 퇴근 시간까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 안에서 맴돌다가 나오니까, 반려견과 닭들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일정한 장소에 얽매여 생활하는 것은 같은 처지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구속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을 한다. 인간도 직장이나 가정이란 틀에서 일부 자유가 속박되며 삶으로서 나름대로 또 다른 행복을 구가할 수 있고, 모든 가축도 우리에 갇혀 있는 것이 꼭 자유를 구속당하는 불편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짐승들의 침입을 막아 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가축은 적절한 구속을 당하며 살 때, 그보다 더한 편안함과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