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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참외 – 문경자 논설위원

노랗게 핀 개나리가 산골동네를 훤하게 비추어 주었다. 그저께 시집온 영달이 각시도 노랑색 저고리에 진달래색 치마를 입고 샘물을 길러 간다. 꼬맹이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쫄랑쫄랑 따라 갔다. 옆집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민들레가 노랗게 핀 담장 아래 겨우내 못 보았던 해를 보고 앉아 있다. 지나가는 누렁이도 꼬리를 흔들고, 한 마리 노랑나비가 동네 소식이 궁금하여 부지런하게 날아 다닌다. 피었다, 졌다 하는 봄 꽃들 잔치가 거의 끝나 가면 동네사람들은 분주하다. 아이들도 덩달아 바쁘다. 탱자나무 사이로 짹짹거리는 참새 가족도 시끌시끌하다. 암송아지도 엄마 젖을 물고 장난을 친다. 노랗게 난 털이 반짝거린다. 소 주인은 횡재를 하였다면서 황금빛 털을 쓰다듬었다. 어른들은 밭갈이에 한창 열을 올리고, 우리는 씩씩하게 놀면서 몸을 다져 훌륭한 일꾼이 되겠다는 각오를 하였다. 노랑 저고리 입은 첫돌 지낸 아기도 아장아장 걸음마, 장차 무엇이 될까 하고는 발걸음을 떼어 놓는다. 황금빛 해바라기 키 자랑하는 동네에 작은 소문이 돌았다. 어저께도 피지 않았던 참외 꽃이 무진장 많이 피었다는 말들이 담장 너머 안 방까지 짝 퍼졌다.
동네가 들썩들썩하였다. 산골짝에 심어 놓은 참외가 이제 금빛을 발하게 되었지만 참외는 슬픔도 묻어났다. 노랗던 얼굴들이 푸르스름하게 변해갔다. 열매를 맺어서 키워 놓으면 검은 손들이 여기 저기서 참외 줄기처럼 뻗어 못살게 할 테니, 걱정이 태산보다 높았다. 자식을 간수하는 것도 버겁다. 물끄러미 바라보니 새끼들 아무것도 모르고 쑥쑥 자란다. 달, 해, 바람들이 잘 안아주고 보듬어서 키운 것들 혼자 참외 가족을 지키는 일은 힘이 들었다. 밭 주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잎새 뒤에 숨어있는 것들에게 햇빛을 잘 보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주었다. 저러면 더 빨리 따 버리기 일쑤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참외는 몸을 진정시키려고 일으켜 새웠는데, 주인에게 눈 도장을 찍히고 말았다. 5일장이 다가오나 보다. 밭고랑에서 둥글둥글 몸집을 키우며 최상의 급을 자랑하는 것들이 불쌍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지게를 받혀 두고는 슬금슬금 누렇게 뜬 손이 몸을 만지다가 ‘요 놈 잘 익었구나’ 하고 뚝 따다가 바자리에 담았다. 바자리는 금방 노란 산을 만들었다. 웃음 띤 주인장 얼굴은 금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다. 들길을 지나 냇물을 건너 정자나무 아래 지게를 벗어 놓고, 뻐꿈담배를 피웠다. 노란 연기가 매웠다.
집 안 마당에 지게를 내려놓았다. 우물가 아낙은 노란 수건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내일 장은 우리가 일등으로 참외를 팔 수가 있다는 생각이 좋아 죽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달밤에 지게에 담긴 것들을 하나, 둘, 셋 하고 1접을 만들어 바자리에 담아 고이고이 모셨다. 이튿날 정자나무를 지나 옆 동네 우사를 지나 신작로를 걸었다. 주인이 지고 가는 노랗게 익은 참외가 금빛을 발하여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황강물을 건넜다. 읍내 여자들이 눈을 부럽뜨고 주인을 쳐다보았다. 참외 주인은 깍쟁이 아줌마들 한 테는 절대 팔지 않았다. 시장 중앙통에 자리잡았다. 주인은 싱글벙글 웃었다. 돈이 손에 들어왔다. 한 움큼 되었다. 뒤 돌아 앉아 머리를 숙이고 오른 쪽 손가락에 침을 발라 돈을 세는데 금빛에 두 눈이 부셨다. 주인은 늙은 어미를 위해 소고기 반근을 끊고, 참외농사 짓는다고 고생하는 부인에게 겨자색 치마, 늦둥이 딸 노랑 고무신 한 켤레, 맨날 말썽을 부리는 외동 아들 노란색 고무줄 팬티, 자신은 그것을 사는 기쁨에 그저 행복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모퉁이 작은 밭고랑에 이웃집 참외가 우울하게 쳐다본다.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 표정도 그렇다. 참외 장사 잘 했다는 표정을 감추었다. 효자 노릇하는 것이 여간 기쁨이 아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 고기 반 근도 못 드시고, 약 한 첩 지어 드리지 못한 한이 지금도 누렇게 떠있는 가슴에 응어리져 남아있다. 저녁은 구수한 고깃국이 담장을 넘고 이웃집까지 달려가서 자랑을 하였다. 냄새는 잡을 수도 없고 한 치의 거짓도 더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어머니는 주름살을 펴고 편히 주무신다. 부인과 아이들의 웃음꽃이 집안 가득하였다.
밭이 많은 산골 마을은 보릿고개를 겨우 넘긴 사람들이 가을철 벼가 익기 전까지 밥 대신 먹는 양식이 되기도 하였다. 껍질이 얇고 겉 표면에 까슬까슬한 솜털이 있는 것. 육질이 아삭아삭 침 감이 있는 것. 한방에서는 참외에는 진해, 거담작용을 하는 성분이 있고, 변비에 도움을 주며, 풍담, 황달, 수종, 이뇨등에도 유효하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참외는 맛이 달며 독이 없어서 갈증과 번열을 없애며, 소변을 잘 보게 하고 입과 코의 부스럼을 다스린다고도 하였다.
그런 반면에 참외를 먹으면 의외로 배탈이 나기도 하고 씨를 싫어해서 꺼리는 사람도 많다. 우리 아들도 씨 때문에 잘 먹지를 않는다 하지만 나는 참외를 먹는 것이 다른 과일을 먹을 때의 행복이 두 배로 즐겁다. 지금 제철을 맞은 참외가 노란 옷을 입고 앉아있다. 수박처럼 손으로 두들겨 보았을 때 둔탁한 소리가 나면 안에 물이 찼을 가능성이 많다. 한편 물에 담궜을 때 골이 3개 이상 뜨면 좋은 참외다. 간식용으로도 훌륭하고 참외 장아찌도 담아 두면 오랫동안 먹을 수가 있다. 아이들이 싫어 할 때는 샐러드로 만들어 주면 잘 먹을 수도 있다.
고향 산골 마을에는 이제 참외, 수박, 오이 등 과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드물고, 그 어르신들은 고향을 지키며 편안하게 살고 있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향긋한 참외가 당긴다. 어제 사다 놓은 참외를 깎아 한 입 베어 먹었다. 입 안 향기와 더불어 참외에 대한 기억들이 그 줄기처럼 뻗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