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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혁명의 이름으로 (1) – 문재성 수필가

존재의 실상實相은 언제나 생명을 창조한다. 이 우주 현상을 보라. 그러나 사람들이 만드는 관념은 때로 위선이나 악의로 가득 차있어 파멸을 창조한다.
우리는 항상 선택의 선상에 서있으며, 선택은 우리를 풍요나 희망 혹은 빈곤이나 절망으로 이끈다. 선택함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우리가 지극히 이성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이성적이 된다는 것은, 특정의 관념을 감성적으로, 혹은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서 얻어진 자명함이나 보편성을 따르는 것일 것이다.
우리가 이성을 잃을 때, 그런 선택을 할 때, 우리는 패배로 혹은 수모로 가득 찬 파멸로 인도될 것이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하사관 출신의 3류 정치가에게 나라를 맡겼다. 이 독특한 정치가는 게르만이야 말로 위대한 아리안의 순수 혈통이라고 치켜세우며 독일 인민의 마음을 홀렸고, 주위 국가들과 긴장을 조장하는 과정에 정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독일 인민들을 무장 시켜 세계를 향하여 전쟁을 시작했다. 그는 히틀러였다.
인류 문화사에 기념할만한 위대한 예술가와 철학가를 배출한, 가장 지성적인 국가 중의 하나인 독일이 3류에 현혹 당하여, 인류 문명사에서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고 나라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나라를 파멸로 이끈 이 광기의 사나이는,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아 자살함으로서, 그가 세계와 독일에 대하여 지은 죄악에 대한 속죄의식조차 치르지 않고 책임을 회피했다. 개인적인 죄는 자살로서 속죄가 될지 모르나 국가나 인류에게 지은 죄는 자살로서 면책될 수 없다.
그가 옳았다면, 적어도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전쟁에서는 힘이 모자라 패배하였을 지라도, 그가 정치사상적으로는 옳았다고, 적어도 인륜적 가치로는 옳았다고, 법정에 서서 세상을 향하여 항변했어야 했을 것이다. 적어도 그에게 나라를 맡겼다가 망가져버려 할 말이 없어진 독일 인민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독일은 왜 히틀러를 선택하였을까?
당시 독일은 1차 대전의 패배로 엄청난 국가적 부채를 지고 있었고, 인민들은 극도의 무기력에 빠져있었다. 그 틈새에 공산주의가 급속히 파고들었다. 독일 사람들은, 인민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하나의 생각으로 결속시키고, 해이된 기강을 바로 세워 국가를 무기력에서 구출해줄 어떤 가부장적 지도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들은, 인종적 우월성과 그들의 조국을 위대한 제국으로 만들겠다는 장미빛 미래를 마치 폭포수 같은 말로 쏟아내고, 거대 대중을 동원하여 일사불란한 형태의 퍼프먼스를 연출하는 광적인 사나이에게 매료되었다.
가장 이성적인 독일 인민들이 왜 그런 광적인 분위기에 빠져들어, 인류가 저지른 죄악 중에서도 가장 추악한 죄를 저지르게 된 것일까? 왜 그들은 당시 그들의 자랑인 이성을 발휘하지 못하였을까?왜 독일 이성의 자랑인 ‘하이데거’ 조차도 이 광란의 춤에 빠져들었을까?
게르만의 위대성과 그들이 건설해야할 위대한 제국이란 관념은, 극단적 인종주의인 반유대주의를 불러 왔다. 독일은 결국 1,100만명의 생령生靈을 죽이는 대학살극을 벌렸다. 이중 600만 명이 유럽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지금 그 때를 후회한다,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한다. 왜냐하면 가장 추악한 인간성의 일면을 그들 국가가 인류의 역사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감성에 빠져 선동에 휘말릴 때는 파멸을 선택하게 된다.
유럽이 산업화되면서 소위 산업노동자 계급이 발생하였고, 유럽 지식인들은 그들 계급을 옹호하는 공산주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그것은 과학이라고 했다. 그들은 노동계급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주의 세상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산업화된 유럽이 아닌, 전혀 산업화 되지 않아 산업노동자 계급이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미개발 농업국가들이 소위 공산주의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였을까? 아마 공산주의가 과학적 산물이 아니었거나, 사람들이 이성이 아닌 감성을 자극한 선동에 자극이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국의 모택동은 농노農奴들에게 공산주의를 가르쳐 이들을 전사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을 내전內戰에 동원하여 마침내 중국을 장악했다. 공산주의 혁명 동력으로 농노를 무장시키는 것을 보고 코민테른은 비웃었지만 모택동은 해냈다. 권력의 장악 후 대약진 운동에 실패한 모택동은 정적들의 숙청을 목적으로, 소위 인민내부의 모순을 부르짖으며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다.
모택동이 문화대혁명이라고 부른 이 광란에는, 아직 어리 디 어린, 일반국가들은 미성년이라 투표권조차 주지 않는 열일곱 여덟 살의 아이들이 동원되었다. 이 아이들에게 무슨 선악을 분별할 지성이 형성되어 있었겠는가? 이 아이들은 어깨에 붉은 휘장을 두르고 모택동 어록을 외치면서 떼를 지어 거리를 행군하며 모든 것을 파괴했다. 그들의 신神인 모택동이 반동이라고 지명한 그 모든 것들을 파괴했다. 동북아시아의 사상을 수 천 년 지배한 유교가 배척되고, 고상한 문화재는 파괴되고, 많은 지식인들은 수모를 견디다 못해 자살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위 인민재판으로 맞아 죽었다. 약 300만명의 인민들이 이 광란 중에 죽었다. 광란의 바람이 흐른 뒤에야 그들이 어떤 미친 광풍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런 후에야 중국은 모택동을 버리고 등소평을 선택했다. 모택동이 부르짖은 것은 인민의 평등을 위한 영구적 혁명이었다.
독재자는, 누구를 불문하고 거대한 민중을 동원한 폭력적 퍼프먼스를 통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공고히 한다. 그들은 그것을 혁명이라 부르며 찬양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