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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왕국 가야 (4) – 차세운 경북대학교 행정학 석사

노 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 김해 봉하마을에서 방문객들에게 자주 김해의 가야사에 대해 말하였다고 한다.
“나를 가리켜 ‘걸어 다니는 관광상품’이라고들 했다. 사람들이 먼 길을 와서 내 얼굴만 보고 갈 것이 아니라 김해의 역사와 자연까지 모두 즐기고 가도록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노무현 자서전:운명이다, 2010)
물론 역사와 정치가 결탁한 기존의 사례들 때문에 이러한 의심을 품는 점에 대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영호남의 벽을 허무는 ‘동서화합’의 의지는 김대중 대통령의 소망이었고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이 외치던 중요한 가치 중 하나였다. 특히 노 대통령은 지역감정의 해소를 위해 1995년 여당의 텃밭인 영남지역 부산에서 시장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당시 노무현은 대한민국 정치 1번지인 종로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반대를 무릅쓰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는 선거유세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를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호불호가 갈리는 정치인 노무현의 치적에 대해서는 잠시 차치하고서라도, 한 개인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가야사에 대한 진보진영 대통령들의 관심을 두고 정치적인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이는 단면적인 해석이며, 가야권역 지자체들은 오래전부터 가야사 복원을 위해 활동해왔다. 가야의 역사는 경남 합천, 거창, 산청, 함양, 의령, 창녕, 하동, 함안, 고성 그리고 경북의 고령, 성주, 달성 등 영남권뿐만 아니라 전북의 남원, 장수, 전남의 광양, 순천, 구례 등에 뻗쳐있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이들 17개 시·군은 이미 오래전 ‘가야 문화권 지역발전 시장·군수 협의회’를 만들어 활동 중이다. 1998년 3월에는 옛 6가야(김해, 함안, 고성, 고령, 성주, 상주)의 자치단체가 ‘가야문화권 행정협의회’를 구성해 활동하고 있다. 두 협의회는 ‘가야문화권 개발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제정 등 가야사 복원과 관광사업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2015년 이완영 국회의원(자유한국당, 경북 칠록·성주·고령)은 ‘가야문화권 개발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공청회’를 개최하고 ‘가야문화권 지역발전을 위한 포럼’을 만들어 국회기획전시회, 공청회, 토론회 개최, 결의문 채택 등 역사에 묻힌 가야의 문화를 알리고 있다. 그리고 영호남에 걸친 가야문화권에 대한 개발 및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데 힘써왔다.(브레이크뉴스 17. 6. 5)
여기까지를 볼 때 가야사 복원에 대한 의지가 특정 정치세력의 전유물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특정 역사분야에 대한 연구지시를 내린 것에대해 권력이 학문의 영역에 개입한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을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기초 학문인 역사학을 식물에 비유하자면, 대통령의 가야사 복원·연구 지시는 물주는 것을 넘어서는 일이다.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해 뿌리를 들어 올리거나 가지를 틀어버리는 격이다. 국가가 이렇게 개입해서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은 경우가 많다. 역사학은 관광이나 토목공사 등 다른 사업과는 분리시켜야 한다. 신중하지 못한 복원은 오히려 파괴나 왜곡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미 여러 지자체에서 고증이 제대로 되지 않은 복원 사업을 했는데 그건 전시 행정에 지나지 않는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가야사 복원 사업에 1290억원을 투입했지만 과연 그만큼 연구가 진흥됐는가? 대통령은 이런 내 얘기를 충분히 알아들을 분이라는 걸 알고 있다. 가야사 지원이라는 틀만 가지고 예산을 투입하기 보다는 제대로 된 지원과 양성을 해야 한다. 즉, 눈에 띄는 성과가 아닌 역사 연구의 인프라에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진연구자를 육성하고 고전 번역을 활성화하는 일은 수십년이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토목공사에 비해서 돈이 많이 들지도 않는다. 앞으로 주변국과 생길 수 있는 역사 문제도 대응하는 전문가를 키우는 일도 중요하다. ‘재임 중에 씨앗을 뿌렸다’는데 무게를 두지 않고 5년 안에 뭔가 성과를 내려 집착한다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박종기, 국민대 명예교수)”(조선일보, 17.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