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가을이 오려무나 – 佳松허종학 가회중학교 재단이사장
흥겹게 울어대던 매미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자연의 섭리 앞엔 모두가 어쩔 수 없는가 싶다. 그저께 까지만 해도 밤낮없이 더워서 죽겠다든 말이 입추와 처서가 지나니 쑥 들어가고 그래도 덥다는 말들이 올여름 그처럼 견디기 어렵고 한 달 이상의 올해 더위를 말해주는 듯하다.
덥다! 덥다! 해도 오랜 삶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더운 날이 계속되긴 처음인 것 같다. 하기야 여름은 더워야 하고 겨울은 추워야 한다. 그게 계절의 맛이고 멋이다. 그래도 이번 여름은 심해도 너무 심했다. 더워서 미치고 죽을 것만 같은 현상에서 미친 사람, 죽은 사람이 수없이 많았으니 말이다.
모두가 이렇게 더운 여름은 처음 보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은 하지만 원인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우리네 생활들은 대개 결과가 주어지면 반드시 원인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아무도 원인은 잊은 체 결과만 가지고 따지고 흐지부지 넘어간다. 조금은 힘들고 어려워도 시간이 가고 세월만 가면 모든 것들은 해결이 되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게 우리 인간의 잘못된 습성이기도 하다.
마치 몸이 개운 찮고 땀이 흘러 씻기 위해 목욕탕에 가서 몸도 풀고 땀도 씻기고 하지만 몸속에 있는 마음의 때를 씻으려고 하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를 바가 있을까? 이미 목욕탕에 갔으면 몸의 때와 땀도, 마음의 때도 깨끗이 씻으면 좋을 것인데도…….
흔히들 자연만큼 거짓말 하지 않고 인간을 잘 보호해주고 가만히 있어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통한 사계절을 잘 정리해 주고 있는데 인간이 자연을 너무 무시하고 시도 때도 없이 파괴하고 오염시켜 자연은 계절을 무시하기도 하고 바다는 육지가 되고 산은 파헤쳐 져서 대지도 되고 뚫어서 굴을 만들고 자연을 훼손시켜 모양과 형체가 바뀌고 해와 달은 인간이 만들어낸 매연과 독가스로 본래의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오염시키고 있다. 자연이 인간에게 무엇을 잘못했다고 파고, 뒤비고, 내뿜고 , 메우고 지도가 바뀔 정도로 본래의 모습과 모양을 바꾸어 놓았으니 그냥 인간을 위해 무한정 베풀어주는 자연도 더는 못 참고 인간에게 경종을 울리는 예행연습 또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대자연의 큰 하품이라고 여겨보기도 한다. 그렇다! 이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인과응보의 철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든다.
부모 자식 간에도 같은 맥락에서 보는 관점도 많고 동, 식물간에도 애정과 사랑이 있어야 삶이 부드럽고 윤택해 지기도 한다. 특히 인간은 말할 나위 없지만 식물들도 인간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 한다. 인간이 얼마만큼의 사람과 애정, 배려가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듯하다. “인과응보”삶의 과정에서 반드시 주어지는 결과요, 섭리다. 오늘의 이 고통이 인간이 자연을 배신한 결과라고 생각하면서 이젠 더는 자연을 파괴한다든지 소홀히 하지 말았으면 한다. 자연이 화를 내면 이보다 더한 해를 인간에게 돌려줄지도 모른다. 모든 게 순리대로 원칙대로 살아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한다. 여름에 나는 과일을 겨울에 나오게도 할 수 있지만 제철 과일처럼 맛이 있고 윤택하지는 않는 법이다. 아무리 인간이 현명한 두뇌를 가지고 있어도 자연의 섭리 앞엔 꼬리를 낮추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가만있어도 사계절을 통해서 사람이 인간답게 멋지게 살 수 있도록 24절기의 엄한 규율을 만들어 주기에 더는 바랄 것도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리라. 우리는 인간을 일러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자기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하고 살라는 게 아니다. 혹자는 자연까지도 이기려고 하다가 낭패는 당하는 게 부지기수다.
자연만큼 우리인간에게 혜택을 주는 것도 없다. 그렇게 짓밟고 피고 뭉개고 없애도 한마디 불평도 없이 보답도 없이 인간을 보호해 주고 있다. 하지만 순한 사람이 한번 화가 나면 무서운 법이다. 대자연도 우리 인간을 용서하고 포옹하고 배려해줄 때 더는 큰 화가 나지 않도록 몸가짐을 조심하고 눈치를 차려야 함이 좋지 않을까? 유난히도 덥고 힘든 여름 이였지만 자연의 순리대로 곧 가을이 오고 황금 들녘엔 오곡백화, 탐스레 익은 과일들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참고, 견디고, 이겨내면 자연은 인간을 위하여 모든 걸 베풀어주고 안아 줄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하기도 하지만 성급한 낙엽들이 아파트 주위에 한잎 두잎 떨어져 있으니 황혼 길에 오른 인생이 너무도 초라해 보인다. 모든 게 오고 가고 나고 죽고 이 모든 것은 자연의 섭리요 이치요 인생이 안고 가야할 길인 것 같기에 순응함이 좋으리라 생각도 해보지만 석양 객에겐 마음의 그늘이 쉽게 걷어지지 않는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니 그래도 더워 죽겠다던 여름이 되돌아 보여진다. 보냄은 언제나 아쉽고 후회스러운 법이다.
요즘하도 살기가 힘들고, 날씨가 더워 사람들이 삶의 감각과 생기를 잃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늦 팔월의 아침(우현 김영남)”이라는 시 한편을 소개드리면서 여름 내내 심신이 지쳐있는 우리 모두에게 마음의 정서를 가득 채워 보시길 소망해 본다.
늦 팔월의 아침
우현 김영남
덥다고 너무 덥다고
저리가라고 밀어 보내지 않아도
머물고 떠날 때를 알고 있는 여름은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잠깐 머물다 금세 떠날 것을 알면서도 호들갑을 떨며
아우성치던 우리는 언제 그랬냐고 정색을 하며 가을을 반기겠지
짧디 짧은 가을 정취를 느끼기도 전에 그림자처럼 사라질 것을 모르지도 않으면서 마치 가을이 영원히 있어줄 것처럼 칭찬하다가 언제 떠났는지를 모르고 어느 샌가 입김 호호불면서 또다시 추위를 나무라며 문지방 너머 목 길게 빼고 봄이 오기를 마냥 기다릴 거다. 그러면서 나이만 먹는다고 세월이 너무 빠르다고 투덜거려도 보고 용기 없어 하지 못했던 것에 미련도 되씹어 보며 커다란 나이테 하나를 또 끙끙 둘러메고 앉아 문밖건너 진달래 붉은 향기
가슴에 밀려들면 혹 서러워 눈물 흘릴지도 모르겠다.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지 말고 어여 오라고 손짓이나 말지
그냥 혼자 조용히 흐르는 세월
오면 오는 데로 가면 가는 만큼
가만히 놓아주고 때를 즐기며 덥던 춥던 깃털처럼 가볍게 하루, 하루를 즐겨 살아주면 그것이 행복이고 참 살이가 아니련가?
망개 열매를 따먹고 살아도 이승이 낫다는데 지금 살아 숨 쉬고 머무는 여기 산천이 천국이고 낙원이 아니면 그 어드메가 무능이고 도원이가?
창 너머 수세미 꽃에 “벌”이 드나드는 늦 팔월의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