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조세
정병수
쌍백초 총동창회장
2016년 정부예산이 천문학적 숫자인 400조 원에 가깝다. 이는 주로 국민이 납부하는 세금으로 충당한다. 조세는 자발적인 기부금과는 구분된다. 조세는 본질적으로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를 갖고 있다. 그래서 현대의 조세는 법률이 아니면 납부하지 않은 ‘조세법률주의’의 성격을 띤다. 어쨌든 조세가 강제적이라는 면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때로는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공자(B.C. 551~479, 73세)가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문답을 하며 산책을 하는데 부인의 울음소리가 산속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사연을 알아보니 작년에는 아버님이 호랑이한테 잡혀갔는데 올해는 남편마저 물려가 너무 억울하여 통곡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진작 읍내로 이사하여 안전하게 살지 않았냐고 묻자, 그곳에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세금이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예기’의 ‘단궁 하편’에 나오는 설화이다. 여기에서 가정(苛政)이란 가혹한 정치라는 뜻이지만, 세금을 무겁게 부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당시에 세금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예수님 시대로 가 보자. 마태복음의 마태는 세리(稅吏)출신이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세리는 로마에 바칠 세금보다 더 많이 징수하여 개인적으로 착복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비난과 냉대의 상징이었다. 800년 전의 영국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당시 잉글랜드는 존(John)왕이 다스렸다. 그는 프랑스 혈통으로 영국 왕이라는 신분 외에도 프랑스 귀족으로서 프랑스 내에 자기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프랑스 내의 영토를 잃게 되자, 이를 찾기 위한 전쟁을 일으키고 영국 귀족들에게 많은 세금을 일방적으로 부과한다. 이에 영국 귀족들이 1215년 일제히 항거하는 바람에 ‘평의회의 동의 없이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 라는 ‘대헌장(Magna Carta)’에 왕이 서명하고 만다. 조세법률주의의 뿌리가 된 셈이다.
미국 독립(1776년)의 발단도 세금이다. 영국은 온갖 세법을 제정하여 식민지 주민들의 주머니를 쥐어짰다. 이에 주민들은 “대표 없이 세금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대항하다, 1773년 보스턴 항구에 정박 중인 영국 선박에 침입하여 배에 있던 차(茶) 상자들을 바다로 던져버렸다. 이 ‘보스턴 차’ 사건은 미국 독립운동의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조세가 역사를 바꾼 사례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했을까? 조선 숙종 때의 것으로 알려진 춘향전을 보면 세정 부패가 짐작된다.
금준미주 천인혈 (金樽美酒 千人血) 옥반가효 만성고(玉盤佳肴 萬性膏)
촉류락시 민루락(燭淚落時 民淚落) 가성고처 원성고(歌聲高處 怨聲高)
‘금으로 만든 잔의 맛좋은 술은 천백성의 피요, 옥쟁반의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니.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이 눈물 쏟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도 높더라’라는 뜻이다. 기어이 조선 후기 세도정치 때는 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의 3정이 극도로 문란해져 나라가 기울기 시작했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과다 징수한 수세(水稅)가 계기가 되어 동학농민운동이 발발했고, 동학농민운동은 청일전쟁을 유발시키고, 청일전쟁은 다시 1910년 한일늑약으로 500년 역사의 조선이 망하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화된다고 걱정이다. 연봉 10억이 넘는 CEO도 많은 모양이다. 기업이야 이익 창출을 위해 운영하는 것이므로 연봉 10억 자체야 뭐라고 할 수 없다. 그래도 종업원들과의 보수 수준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중산층과 서민들이 잘 살아야 세금도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름판의 개평도 돈을 따야 가능하듯 말이다.
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정부의 내년도 예산이 어떻게 되고, 또 개인 소득의 연말 정산에도 신경이 쓰인다. 소득이 동일한 경우에는 동일한 세금을 부과해야 하고, 소득이 많은 사람은 소득이 적은 사람에 비하여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을 조세의 공평이라 한다. 그런데 소득세나 법인세와 같은 직접세와는 달리 간접세는 역진성(逆進性)이 강하다. 그래서 일정 이하 소득자의 경우 부가가치세 같은 간접세의 일정비율을 연말정산 시 공제해주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I/T 왕국인 우리나라 기술은 마음만 먹으면 부작용 없이 공평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흐름을 바꾼 사례에 공평하지 못한 과세도 한 몫을 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