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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운잡기|가훈(家訓)과 선고훈계(先考訓戒) – 권해조 논설위원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가정에 가훈(家訓)이 있었다. 지금도 대부분 나름대로 가훈이 있다. 그리고 지하철 대합실이나 서울 인사동 골목 등에도 가훈을 써주고 액자로 만들어 팔기도 한다. 최근에 흔히 쓰는 가훈으로는 정직(正直), 근면(勤勉). 성실(誠實), 겸손(謙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 고진감래(苦盡甘來: 고생이 다하면 즐거움이 온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이 모든 것을 지어낸다. 즉 모든 것이 마음먹기 나름이다) 등이 많다.
나는 유년시절에 시골에서 할아버지(祖考)와 사랑방에서 기거하였다. 그리고 할아버지 밑에서 천자문(千字文), 동몽선습(童蒙先習), 명심보감(明心寶鑑), 소학(小學) 등을 배웠다. 당시는 뜻도 모르고 무조건 암송(暗誦)만 하였는데 지금생각하면 나무만 보고 숲을 몰랐던 것 같다. 할아버지께서는 이름(諱)은 재성(載性), 호(號)는 현암(弦菴)으로 1890년 3월에 출생하여 1955년 9월에 별세하셨다.
그런데 당시 할아버지 방에는 항상 < 인녕무아 아무부인(人寧無我 我無負人) >이란 8글자로 된 액자가 벽에 걸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그냥 장식용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내용은 할아버지의 증조부(나의 5대조) 부당부군(負堂府君)께서 편액에 써서 붙여놓고 경계 하신 우리 집 가훈(家訓)이었다. 이 내용은 “남이 차라리 나를 저버릴지언정, 내가 남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나의 5대조 할아버지께서는 이름(諱)은 규(奎), 호(號)는 부당(負堂)으로 1807년 2월에 출생하여 1977년 7월에 별세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부당 할아버지께서 우리 집 살림을 이루셨던 훌륭한 분이라며 우리들에게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한편 나의 선고(先考) 휘(諱) 옥현(玉鉉: 1912.2-1999.3), 호(號) 설암(雪嵒) 부군(府君)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10여 년 전 1990년에 나의 6대조 할아버지 휘(諱) 처검(處檢: 1776.6- 1850.2), 호(號) 죽헌(竹軒) 부군(府君) 때부터 살던 고향집(목조기와집)을 헐고 새로 양옥으로 신축하여 이름을 죽헌정사(竹軒精舍)와 아들 6형제가 출생한 집이라 하여 육회당(六懷堂)으로 지었다. 그러면서 “ 시제아(示諸兒): 여러 아들 들 보아라.” 란 훈계(訓戒) 글을 문집에 남겼다.

행로상서중(行路常徐重),
길을 갈 적에는 항상 천천히 무겁게 신중하게 걷고
접인진신성(接人盡信誠).
사람을 대할 때에는 믿음과 정성으로 대하여야 한다.
서심제기욕(誓心制嗜欲),
마음에 맹세하여 기호와 욕심을 억제하고
모사사부영(謨事謝浮榮).
사업을 도모할 때에는 들뜨고 허영심을 버려야 한다.
견절료무굴(見折聊無屈),
실패해도 굽힘이 없어야 하고
조횡필변명(遭橫必辨明).
횡액을 당하면 반드시 분명하게 밝혀 말해야 한다.
가전부부결(家傳負負訣),
집안에 전하는 남이 나를 저버려도 나는 저버러지 않는다는
상작심도명(常作心頭銘).
훈계를 언제나 마음속에 새겨 행하라.
나는 오늘 이글을 쓰면서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5대조 부당부군께서 지으신 가훈과 선고 설암부군 훈계의 의미를 되새겨 보며 선조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