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무지(無知)로 인한 실수 – 이호석 논설위원
얼마 전, 나는 집에서 기르는 수탉의 발톱을 깎아버렸다. 얼핏 생각하면 조금 우스꽝스러운 일이긴 해도, 크게 잘못한 짓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니 나의 무지(無知)로 인해 저지른 큰 실수였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일이며, 닭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봄, 집 뒤 텃밭 모퉁이에 서너 평 되는 닭장을 짓고, 닭 몇 마리를 기르고 있다. 일반 가정에서 닭을 기르는 것은 주로 영양가 많고 질 좋은 달걀(유정란)을 먹기 위해서다. 처음엔 병아리 수놈 한 마리와 암놈 열 마리를 사다 넣었다. 대여섯 달 지나니 제법 큰 닭이 되었다. 특히 수놈은 머리에 검붉은 큰 벼슬과 독수리 같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치장을 하며 위엄을 갖추었다.
그동안 이런저런 사연으로 다섯 마리가 줄었고, 지금은 수놈 한 마리와 암놈 다섯 마리가 남았다. 일 년 반이 지난 닭들은 앙증맞던 병아리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조금은 초라하게 늙어가는 모습이다. 사람이나 동물 모두 늙으면 어릴 때의 그 귀여운 모습과 젊을 때의 그 발랄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퇴색되고 조금씩 추해지나 보다.
몇 달 전부터 이상하게도 암탉들의 등위 털이 많이 빠졌다. 특히 한 마리는 털이 거의 다 빠져버려 보기가 싫을 정도다. 처음에는 털갈이를 하나 싶어 예사로 생각하며 새털이 나기를 기다렸지만, 상당한 시일이 지났는데도 전혀 털이 날 기미가 없다. 혹시 상처가 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뚜렷이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며칠 전, 사고가 발생했다. 보통 때는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수탉과 암탉의 사랑 놀음을 예사로 봤는데, 이날은 엉뚱한 일이 버러진 것이다. 수놈이 털이 가장 많이 빠진 암놈과 사랑을 하고 내리면서 암놈의 등에 그 칼날 같은 발톱으로, 제법 길게 피가 나도록 긁어버렸다. 긁힌 자국을 따라 선홍빛 피가 흥건히 젖는다. 암놈은 몹시 아플 것 같은데도 아무 소리도 않고 눈만 껌벅이며 사료를 먹고 있다.
긁힌 상처에 발라줄 연고를 가져오려고 닭장을 나왔다. 밖에서 잠시 생각을 해 본다. 문득, 지금까지 암탉들의 등위 털이 자꾸 빠진 이유가 바로 저 수놈의 날카로운 발톱 때문이라는 걸 직감하였고, 오늘 그 피해 상황을 직접 본 것이다. 저 발톱만 잘라주면 암탉들의 등위 털도 안 빠질 것이고, 오늘 같이 피나는 참사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슨 대단한 것을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들뜬 마음으로 방으로 들어가 제일 큰 손톱깎이를 가져 나왔다.
화 바람에 손톱깎이로 양측 큰 발톱 6개를 순식간에 잘라 버렸다. 아뿔싸! 발톱을 자른 자리에서 붉은 피가 줄줄 흐른다. 사람들의 손, 발톱과는 달리 발톱까지 혈관이 뻗어있고 피가 통한다는 것을 몰랐다. 발가락마다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줄 수도 없다. 한참을 생각해도 치료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대로 놔둔 채 운동하러 나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독수리처럼 날카롭던 발톱이 없어져 버린 수놈은 용맹스러움도 없고 기가 죽어 있는 것 같아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암놈의 매끄러운 등위도 제대로 오르지 못한다. 그러니까 암놈과 사랑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돼버린 것이다. 먹이를 주러 닭장으로 들어갈 때마다 미안한 마음으로 슬금슬금 놈들의 눈치를 본다. 단순히 암놈들의 등위 털이 뽑히고 활퀴는 피해를 막아주려고 그랬는데, 이놈들 모두 나를 얼마나 원망할까 싶기도 하고, 또 얼마 전 ‘닭대가리’란 제목의 수필에서 놈들의 우둔함을 형편없이 폄하한 적이 있는데, 나를 보고 저들보다 더 무지하고 못난 인간이라고 욕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지역의 속된말로 찰찰이 불 찰찰 이라는 말이 있다. 괜히 얕은 생각으로 수놈의 발톱을 깎아 제 놈들이 그 즐기는 사랑 놀음도 못 하게 하였고, 나도 영양가 없는 ‘무정란’을 먹어야 하니 말이다. 때늦은 후회를 하며, 수놈의 발톱이 하루빨리 자라기를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