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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 하상락 공 공덕비 제막식 열어

  • 1920년 수해때 유실된 제방을 사재로 수축한 공덕 기려
  • 오래된 옛 공덕비를 새롭게 건립

일제강점기 시기 수해로 어려움에 처했던 지역민들을 위해 사재를 털어 유실된 제방을 다시 쌓는 선행으로 칭송되던 인물 ‘송운 하상락’공의 공덕을 기리는 제막식이 열렸다.
<송운공 공덕비 재건립 추진위원회>(위원장 권병석)는 11월2일 야로면 구정리 가야천 선의동 공원에서 문준희 군수, 김윤철 도의원, 합천군 유림회원, 기관사회단체장과 추진위원 등 주민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송운(松雲) 고(故) 하상락(河尙洛) 공(公) 공덕비 고유제와 제막식을 성대히 거행했다.
이날 행사는 고유제에 이어 내빈 소개, 추진위원장 인사, 문준희 군수와 김윤철 도의원 및 하창환 전 군수의 축사 및 후손들의 인사, 이성동 공동 찬기문자(撰記文者)의 공덕비문 낭독, 제막식 등으로 진행되었다. 공덕비문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한글로 다음과 같이 공덕비 측후면에 명문(銘文)되었다.
『송운 공은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경재(敬齋) 하연(河演) 선생의 후손으로 1885년 야로면 송계리에서 출생하셨다. 어릴 때부터 영민하여 인백기천(人百己千:다른 사람이 백번 노력하면 천번 노력)으로 학문을 익히고 성리학에도 침잠(沈潛)하여 인품과 학문이 도처에 알려져 합천향교 전교와 여러 서원의 원임을 역임하셨으며, 역사·인문지리에도 밝아 합천군지, 경상도와 강원도의 지리지 등을 편찬하시어 지방문화 선양과 지방통치 기반을 마련하셨다.
야로면사무소와 우복들 제방이 유실되던 경신년(1920) 수해 때는 사재(私財)를 들여 유실된 제방을 수축(修築)하여 실의에 빠진 지역 농민들에게 새 삶의 길을 열어 주셨다. 이에 지역민들이 그 공덕을 후세에 남겨 귀감으로 삼고자 우복들 하천가에 선생의 공덕비를 세웠으나 오래되고 훼손된 것을 가야천 정비사업 시에 맞춰 선원동 공원에 이 비를 새로이 건립하게 되었다.
구한말 외세가 난입하는 격동기에 벼슬길 마다하고, 오직 애향애민의 정신으로 더불어 함께 사는 거룩한 이웃사랑의 미덕을 이 땅에 남기셨으니, 공의 공덕이 길이 후세에 빛나게 전하여지리라!』
-2018.11.2. 찬기문(撰記文):하재우,이성동 -공덕비 재건립 추진위원회(위원장 권병석, 위원 이성동, 배종해, 문성래, 하성룡)


고유제 제관은 초헌관-문준희 군수, 아헌관-권병석, 종헌관-하영용, 집례-하재우, 축-배종해, 찬인-신문섭이였다. 행사가 끝나고 후손 하영용, 하무용, 하인용 및 가족들이 점심식사를 현장에서 대접했다.
한편 1941년 신미년 4월에 세워졌던 구비문(舊碑文) 내용은 다음과 같다.

古有陳公隄(고유진공제:예전엔 진공의 제방이 있더니)

今有愚伏堰(금유우복언:지금엔 우복들 제방이 있도다)

水尋舊路(수심구로:물은 예전길 찾아가고)

野廣新墾(야광신간:들은 넓게 새로 개간되네)

播諸萬口(파제만구:많은 사람께 전파되니)

俾也可諼(비야가훤:어찌 잊을수 있으리요)

壯哉(장재) 河尙洛(하상락) 愚伏坪防築(우복평방축) 大功德碑(대공덕비)

:장하시다 하상락공의 우복들제방 쌓은 큰 공덕비


董役(동역:공사감독) 鄭渤(정발) 崔晶淳(최정순),

辛未年(신미년:1941년) 四月(사월) 愚伏坪(우복평) 一同(일동) 立(입)

/박황규 · 이성동 기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과거 로마제국 귀족들의 불문율이었다. 로마제국의 귀족들은 자신들이 노예와 다른 점은 단순히 신분이 다르다는게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실천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