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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대중 속이기 – 문계성 수필가

선동가나 대중 인기에 영합(迎合)하는 자가 국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국가는 반드시 망한다. 히틀러의 독일이 그랬고, 페론의 아르헨티나가 그랬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도 그랬다.
오늘날 국가 권력은 대중의 지지로 획득되고 유지된다. 그러나 대중은 가볍고 변덕스러워 언제 변할지 모른다. 그래서 어떤 권력자는 대중을 어리석고 시끄러운 원숭이로 생각하여, 길들이거나 속이려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 여기에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개입될 때는 불행이 가중된다.
북한의 핵 문제가 오늘 정치의 화두가 되었고, 정치는 이것에 끌려가고 있다. 삶에는 잠재된 문제가 항상 산적해 있다. 정치인은 잠재된 문제 중 하나를 끄집어내고 이슈화하여 담론을 선도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를 주도 할 수 있다. 북한 핵 문제는 여러 가지 잠재된 문제들 중 하나였지만, 누군가의 정치적 필요에 의하여 이슈화 된 것일 것이다. 아마 이 문제를 이슈화한 사람은, 이 담론이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고인(故人)이 된 전 대통령은 아주 친절한 미소 지으며, “북한은 핵을 만들 의사도, 능력도 없다, 그들이 핵을 만든다면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놀라운 말을 했다. 그리고 북한으로 날아가서 김정일과 깊은 포옹을 하고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북한은 이 대통령을 포옹해준 댓가였는지, 아니면 핵개발 포기 약속의 댓가였는지 모르나 엄청난 돈을 받아 챙겼다. 그러나 그 뒤 북한은 오히려 핵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그 돈을 받은 권력자의 아들은 마침내 핵은 물론 대륙간 미사일도 완성했다. 북한은 핵과 장거리미사일의 완성을 발표하면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 본토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고 호언했고, 미국은 깜짝 놀랐다. 결과적으로만 보면, 노벨평화상을 받은 고인의 말은 대단한 거짓말이었고, 노벨위원회는 아주 화려한 한 토막 쇼를 감상하고 평화상을 안긴 것이었다.
이 고인이 추진한 정책에 미필적 고의(未畢的 故意)가 있었는지, 그 말이 의도적인 거짓말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주장하려면 그런 고의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무슨 수로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고인에게 물을 수도 없고, 나는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기에도 바쁜 사람이고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다.
요즘은 언어의 이중성과 폭력성 때문에 혼란스럽다. 예를 들자면, 북한이 발의한 핵포기 의사의 진의에 대하여 회의적(懷疑的)이여서, 북한이 핵포기를 선행한 이후에야 제재(制裁)를 완화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현 정권 참여자들이 “그렇다면 당신은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 영구분단을 원하는 것이냐?”며 ‘전쟁 광신자’나 ‘영구 분단론자’로 몰아붙이는 것 등이다. 대화에 회의(懷疑)를 가지는 사람들의 말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 없이, 전쟁광신자나 영구분단자로 몰아 부치는 것이야 말로 폭력이며 인격모독이다. 이 대화에 회의하는 사람들은 북한이 약속을 어긴 전례 때문에 그 진의를 의심하는 것이다. 마땅히 귀 기울여 들어보아야 할 가치가 있다. 지금의 대통령은 ‘유엔은 북한에 핵포기의 선행을 요구하기 전에 제재를 먼저 풀어야 한다’며 세계를 열심히 뛰어 다녔다. 이 말은 북한이 요구하는 그대로의 내용이다. 대부분의 강대국들이 북한의 핵포기 선행을 요구하는 마당에, 우리의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하며 동분서주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 열정에 애틋함조차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진심에 회의하는 사람들은, 되지도 않을 일에 사흘이 멀다않고 세계를 뛰어 다니며 쓰는 돈과, 영부인이 명품 옷을 빌려 입는데 쓰는 돈조차 아깝다고 걱정한다. 오늘 날 이 정도의 생활조차 나이 많은 세대의 근검과 절약으로 만들어 졌으므로, 이런 걱정은 비난할 것이 못된다. 미국의 ‘고든 창’이라는 기자는, 이런 대통령을 향하여 무례하게도 ‘간첩이 아닌지 의심해보아야 한다’고 쏘아 부쳤다. 나는 이 기자의 무례에 대하여 찬성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런 의심까지 해야 한다면, 우리는 너무도 어이없고 너무도 비참하지 않은가.
고인이 된 전 대통령은, ‘북한은 핵개발의사 없다’고 했는데, 북은 보란 듯이 핵을 개발했다. 현 대통령은 ‘북한은 진정으로 핵포기를 할 의사가 있다, 그러니 제재를 먼저 풀어야 한다’며 뛰어 다닌다. 그리고 비무장지대의 전투력도 전부 철수해 버렸다. 대화 회의자들은, 핵 리스트 제시조차 거부하는 북한의 진정성을 어떻게 믿고 그러느냐며 반발한다. 나중에, 현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며 세계를 뛰어다닌 꼴이 되지 않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현 대통령은 정국을 주도할 정치적 목적으로, 혹은 그가 추종하는 이념의 실현을 위하여 그런 어마어마한 거짓말을 했다는, 국민의 분노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될 때, 국민들이 가장 흥분한 뉴스는 대통령이 최순실이라는 아녀자에게 대통령의 연설문 교정을 부탁했다는 것이었다. 이 말 같잖은 뉴스는 방송기자들의 세심한 손질 때문에 실재가 되어 탄핵의 가장 큰 명분이 되었다. 그러나 탄핵 후 확인된 사실은, 이 뉴스가 조작된 것으로 거짓이었다는 것이다. 거짓이 거대한 산이 되어 한 대통령을 파멸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목적이 없는 조작과 거짓은 있을 수 없다. 이 거짓은 누가 시작하였을까.
이 정부 경제정책의 골자는 소득주도성장과 포용성장이다. 그래서 최저임금제와 주 52시간 근무제를 법제화하고, 협력이익공유제라는 것까지 만들어서 법제하려고 하고 있다. 이를 추진하는 청와대의 말은 애틋하다. 그러나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몰락하고, 실업은 더 늘어나고, 근무시간을 제한받는 300인 이상의 회사에서 일하던 직장인이 수입 때문에 근무시간 제한을 받지 않는 작은 회사로 일자리를 옮기는 일이 생기고, 투 잡은 늘어났다. 협력이익공유제가 실현되면 대기업들은 협력업체를 해외로 옮길 것이란 말까지 있다.
소득주도성장이란 살림살이를 통하여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말일 것이다. 살림살이는 가정의 소득과 소비물의 가격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런데 이 소득과 가격은 무엇이 결정할까. 소득은 급료를 지급하는 회사의 수입이 결정한다. 수입이 많은 회사는 급료가 높고, 수입이 적은 회사는 급료가 낮다. 급료가 낮은 것은 임금착취 때문이 아니고 회사의 수입이 시원치 않아서이다. 그리고 가격은 제품 제조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시장이 결정한다. 만약 가격이 원가에 적정 이윤을 더한 액수로 결정이 된다면, 그렇게 단순 기계적인 것이라면, 가격과 이윤은 미리 정해질 것이므로 국가는 물가를 잡는다고 난리를 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현실의 가격은 그런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시장의 필요가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 가격에 원가와 이윤 같은 개념이 있는가? 나는 아주 작은 효소 제품을 자가제조하면서도 이 사실을 실감했다.
최저임금제를 법제화 하는 배경에는, 회사가 임금을 착취한다는 소위 ‘임금착취론’이 숨어있다. 즉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근로자의 임금을 착취하는 악덕 구조가 있다는 논리이다. 여기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사악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수입이 많은 회사는 이미 최저임금 이상의 급료를 오래 전부터 주고 있다. 수입이 적은 소기업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국 청년들을 고용할 만한 수입이 없어 임금이 싼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왔다. 이것이 임금 착취일까 ? 이런 기업에게 일정한 액수 이상의 급료를 주고 사람을 고용하라고 국가가 강제한다면, 회사 문을 닫으라는 말이다. 임금은 마치 미세한 촉수처럼 사회 전반에 연결된 신경로인 시장에 의하여 결정된다. 시장은 가장 밑에서부터 가장 위에 까지를 통괄한다. 사회주의는 시장을 부정하고 도덕군자 같은 뜬소리를 하다 망했다. 이를 누가 모를까. 그래서 나는 그들 말의 애틋함에도 불구하고 선의(善意)를 의심한다. 그들은 가진 자 것을 빼앗아 못 가진 자에게 나누어주는 ‘정의의 사도’ 흉내를 내는 어설픈 자들은 아닌가? 아니면, 그것으로 자기편을 다수로 만들어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삼기 위하여, 공정(公定)을 가장한 속임수를 쓰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세금으로 일없이 노는 청년들에게 월 200만원을 주겠다고 떠드는 인간들이 설치는 것이 아닐까.
사람의 가치는 이성(理性)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성이 모자라면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원숭이가 된다. 누군가가 길들이려하고 속이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