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동(萬壽洞) 역사루트를 찾아(11)-미숭산과 고려충신 이미숭 장군
하재효
논설위원
이미숭 장군은 1346년(고려 충목왕2년) 예부상서(禮部尙書 ) 현의 손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여주(驪州), 휘는 미숭(美崇), 호는 반곡(盤谷)이다.
어려서부터 용력이 뛰어나고 특히 병법에 통달하였다. 일찍 정몽주 선생 문하에서 배웠는데 용력이 뛰어나고 병법에 통달한 그를 가리켜 장차 큰 일을 할 인물이라고 하면서 경술(經術)에 힘쓰라 하였다. 후에 그는 안동장군(安東將軍)의 직에 올라 충신의 문생답게 국가에 충성을 다하였다. 고려말 동문인 이성계가 여진과 왜의 침구를 막아 명성을 얻음을 기화로 요동정벌에 반하여 위화도회군을 계기로 실권을 장악하고 전제개혁(田制改革) 단행으로 구세력의 기반을 빼앗아 원명교체기(元明交替期)의 정세를 이용하여 친명책을 내세워 신흥 유신의 세력 규합을 바탕으로 고려왕조를 멸하고 충신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참살함을 위시하여 왕조를 지키려는 충신 절사 왕족을 살해하여, 스스로 임금이라 부르짖음에 이르자 이러한 불의를 보다못해 분연히 항거하였다. 진전장군 최신(催信)과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충청도 아산에서 이성계군과 싸우다 후퇴하여 국수봉 그리고 성산 등지에서 계속 항전하였으나 당할 수 없는지라 부득이 다음 기회를 노리기 위하여 상원산(上元山)에 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시키는 한편 많은 군량미를 비축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으나 결국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스스로 절벽에 몸을 던져 순절(殉節)하니 진전군을 위시한 휘하 장군들도 잇달아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그 후 세인들이 이 충의를 길이 높여 추모하기 위하여 상원산(上元山)을 미숭산(渼崇山)이라 이름을 바꾸어 불러서 지금까지 미숭산이라 부르고 있다.
<미숭산성(美崇山城)>
미숭산은 합천군 야로면과 고령군 대가야읍 쌍림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해발 733M인 미숭산에는 1.5km에 달하는 미숭산성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조선 초기 미숭장군이 고려왕조의 재건을 꿈꾸며 가야 때 축성된 이 산성을 보완하여 군사를 훈련시켰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도 이 산의 정상부에는 둘레 497M의 산성이 있는데, 지형이 비교적 완만한 남쪽 성벽은 합천군 야로면에, 지형의 경사가 심한 북쪽 성벽은 고령군 대가야읍에 걸쳐 축조되었다.
성내에는 갑옷과 칼을 묻었다는 갑검릉(甲劍陵), 말을 달리던 주마대(走馬臺), 개성(開城)을 멀리 바라보았다는 망향대(望鄕臺), 창과 화살을 보관한 장궁구(臟弓丘), 병사의 훈련장인 연병장(練兵場),바위에서 뛰어 내렸다는 순사암(殉死巖), 미숭장군의 묘, 북쪽 반석에 <여주이공휘미숭자정지지(驪州李公諱美崇自靖之址)>라 새긴 각자(刻子) 등 장군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