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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야로·묘산·대병시장 살펴보기

“옛 영화를 뒤로 하고 막걸리 한사발에 흥겨운 시골장”

노령화 되어가는 시대에 갈수록 장나올 인구도 줄어
관내 단일버스요금에 다들 이왕이면 읍내장으로

가야시장
가야시장은 왜정말기 1941년 2월5일 경상남도 지사 허가를 받아 개장했다. 이 일대는 해인사 부지였기에 사찰측 도움을 받아 세워졌다고 한다. 가야장이 처음 열렸을때는 시장 번창을 위해 전국장사씨름대회를 갖는 등 지방민의 협력이 대단했다고 한다. 한편 가야장은 해인사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크게 활기를 띠었고, 1974년 해인사 신부락이 옮겨지면서 진입로가 포장되고 주민이 늘면서 더욱 번창하게 되고, 1984년 88올림픽 고속도로가 가야면을 경유하게 되며 더 발전되었다.
시설현대화 사업은 2011년에 점포신축 및 아케이드 설치 8억8400만원. 2012년 1억500만원, 2013년 주차장 66면 12억2천만원이 들어 완료됐다. 소매시장으로 잡화, 철물, 의류, 농수산물, 생선 등 을 취급하며 특산물은 가야산을 중심으로 고사리 등 산나물을 들 수 있다. 주변에 해인사와 대장경테마파크, 가야산, 매화산 등이 있어 볼거리가 있으나 시장과 연계된 광광이 되지 않고 있다. 가야시장은 48개 정도의 점포가 있으며 대개 농산물, 생선, 잡화 등이며 식사 및 간단한 먹거리를 판매하는 곳은 크게 3곳이다. 돼지국밥, 선지국 등을 파는 식당도 있다.
시장사람들 말에 의하면 해인사나 대장경테마파크 관광객과 가야시장은 전혀 연계가 되지 않고 있다. 대장경테마파크 주변 상가나 음식점을 이용하고 가야면소재지나 시장까지 오지 않고 가기에 크게 보탬이 안 된다고 한다. 한번씩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있어도, 특별한 물건도 없기에 실망하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오히려 쓰레기만 두고 간다고 불평했다. 그럼 가야시장 전성기가 언제쯤이었느냐는 질문에 예전에 가야면에 도자기공장이 많았는데 그때 도자기로 먹고사는 사람이 1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때 한 공장에서 20~30명씩 일꾼을 써 일했고 밥집이며 술집이며 흥했다고 한다.
정장길 전번영회장(79세)은 장사한지 60년 됐는데 요즘 들어 장인구가 너무 줄었다고 한다. 가끔 장날마다 와서 막걸리 한잔씩 하는 어르신들은 요즘 음주운전 단속이 심해져서 먼곳에서 모여 친구들끼리 간단히 한잔씩만 하고 가는 건데, 음주단속이 거의 술도 한잔 못 먹게 하고 있어 불만이라고 했다. 19070년 80년대가 성황이었고, IMF오기 전까지 잘 됐다고 한다. 그러다 값싼 중국 도자기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그릇을 많이 사용하지 않다보니 가야 도자기 산업이 다 망하고 이제 거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해인사 등 관광지가 가까이 있지만, 그 덕을 크게 못 본다고 한다. 또 해인사가 3대사찰 중의 하나인데, 주차장도 암자 주차장 보다 못하게 협소하고 전체 시설 등이 그런 명성에 비해 볼품이 없다며, 관광객들이 방문할때마다 입장료, 주차료 등 비용부담이 너무 많아 다시 오기를 꺼려하는 것 같다면서 함께 있던 분들이 이구동성 입을 모았다.

야로시장
야로시장은 가야천 백사장 등지로 옮겨가면서 오랜 역사를 가졌다. 구 합천군지에 의하면 “야로장은 고을 북쪽50리 현내면 현서에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1936년 대홍수로 시장이 유실되어 지금 시장인 구정리로 옮겼으며 그 부지는 약 9천㎡이다. 교통이 발달되고 가야장이 서면서부터 야로장은 축소되었으며 현재는 예전과 달리 그 규모가 아주 영세화됐다. 2001년 시설개보수로 시장재건축사업이 3억1천만원이, 2002년 진입로 포장으로 5천만원이, 2006년 비가림시설 사업으로 6천만원이 들었다. 점포수는 32개이다. 주로 농산물 중심의 소매시장이며 양파 마늘 등 특산물이 있으며 먹거리는 없다. 야로시장 역시 노령화로 인해 점점 장보는 사람들이 줄고 있는 추세이며, 특히 교통이 좋아지면서 인구유출이 심각해진 상태이다. 야로는 지역특성상 대구와 가까워(차로 20분정도 걸림) 대구시장을 가거나 인근 고령시장을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당연히 야로 시장 손님은 점점 줄고 있는 형편이다. 야로에는 국밥집, 중화요리집 등이 근처에 다 있었는데 최근 장사가 안 돼 다 문을 닫은 형편이다. 짜장면 하나 먹으려 해도 면소재지에서 조금 나가서 먹고 와야 한다고 한다.

묘산시장
묘산장은 도옥장, 또는 창촌장이라 불린다. 구 합천군지에 기록된 묘산장(도옥장)은 북쪽30리의 거울산면 신창앞에 있다고 하였다. 신창은 1746년(영조22년) 당시 합천군수 김시영이 세웠으며 이때부터 신창을 중심으로 인근 주민이 모여들었고 서로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게 된 것이 묘산장 형성의 시초이다. 시장이 형성되니 자연부락이 형성되었으며 부락이름도 도옥리 창촌(倉村)부락이라 불렀다고. 도옥장은 때로는 장이 잘 서지 않아 1년에 2회 즉, 음력8월14일과 12월30일 두번씩 장이 섰다고 한다. 이렇게 맥을 이어온 묘산장은 1914년 광주-울산간 도로가 개통되고 묘산국민학교가 생기면서 합천으로 통하는 도로가 개통됨에 따라 교통의 중심지가 되어 1939년5월1일 5일장으로 개장하였다. 당시 교동 도로 양편에 서게 된 것이 오늘 묘산장이라고 한다. 부지는 9,000㎡이며 점포는 19개로 관내에서 2번째로 작다. 요즘 인근 거창, 합천, 해인사로 가는 버스가 모두 묘산을 경유하지 않고도 갈 수 있게 되면서 교통의 중심지에서 변방으로 밀려나면서 급격히 쇠퇴를 경험하고 있다. 게다가 관내버스 1000원 단일요금이 되면서 묘산장에 내리지 않고 합천으로 가는 버스가 가득차있다고 한다. 묘산장에는 현재 상인 1명이 종합잡화 형식으로 활동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대병시장
대병은 옛부터 고현장(古縣)이라 불러왔고,, 지금도 고현장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유는 1413년 이전은 삼기현(三岐縣) 소재지였던 관계로 옛날 현이 있었던 곳이라 해서 고현이라 부른다. 1699년(숙종25년)에 발간한 삼가현지에 의하면 고현장은 매달 4, 9일 개장된다 라고 되어 있다. 예부터 대병장은 천시를 자주 했는데, 가뭄이 들면 아낙네들이 모여 디딜방아를 기우제 지낼 장소에 거꾸로 세워 놓으면 장꾼들은 이곳에 몰려 전을 폈다고 한다. 최근 천시는 1982년 여름에 있었으며 그 장소는 옛부터 천시장소로 사용해왔던 황강변의 수걸(戍傑)이었다고 한다. 대병장은 1922년 대홍수로 유실되어 시장이 없어졌다가 1938년 함양 우회선도로가 개통되면서 창리 마을 아래 강변에 골목장을 개설하였으며 1955년 다시 근대적 시장으로 개설하였으나, 합천댐이 생긴 후 없어졌다가 신시가지에 새장터가 생기면서 1986년 6월19일 새로 개장하게 되었다. 2003년에 시설물정비로 장옥재건축 1억2천3백만원, 2006년 화장실 보수 1천만원이 들여 현대화했으며, 점포수는 9개로 관내에서 제일 작다. 대병시장은 합천읍에서 20km떨어진 지점이며 면단위 소 생활권 중심시장이다. 하지만 주변에 합천호, 합천댐, 모산재, 황매산 등 관광명소가 많아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는 여건은 좋은 편이다. (참고문헌: 합천군지)
/박옥화 시민기자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