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시장 살펴보기
“삼가한우 브랜드로 일어선 삼가시장, 다음은?”




삼가3.1만세운동이 일어난 역사적 현장
문무자 이옥이 쓴 200년 전 생생한 삼가시장 이야기 등
삼가한우 먹거리와 함께 볼거리 등 스토리 부족 아쉬워
삼가장은 합천 남부 지역 큰 장이다. 인근 가회장, 의령대의장이 있는데 그 중 가장 크다. 사람이 많이 모이고 인근 지역사람들이 다들 모이는 곳이라 그런지 일제강점기인 1919년 삼가장날(음력2월17, 22일)에 맞춰 2차례나 대규모 3.1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그래서 인근에 이를 기리는 <삼가장터3.1만세운동기념탑>이 있고 이 자리에서 매년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기념식마다 만세운동 재현을 위해 태극기를 든 학생, 군민들이 행진하는 모습, 독립만세를 외치는 모습을 통해 당시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또 하나 삼가시장을 떠올리는 귀중한 자료가 있는데 바로 217년 전 삼가장을 다녀간 문인 문무자 이옥(文無子 李鈺, 1760~1815)이다. 문무자 이옥은 고전적이고 격식을 갖춘 품격 있는 당송(唐宋)의 시(詩)와 고문(古文)에 배치되는 글을 쓰지 말라는 정조 임금의 이른바 문체반정 정책에 따르지 않고, 소품체(小品體)를 구사하며 괴이하고 불경스런 글을 썼다는 이유로 과거에 장원으로 합격하고도, 삼가현으로 귀양, 즉 충군(充軍)돼 왔다. 이때 문무자는 삼가읍성 서문 밖 금리 하금마을 박대성(朴大成)의 점사(店舍: 주막)에 방을 얻어 기거하면서 밥을 사 먹으며 지냈는데, 당시 120여 일 머물며 기록한 소소한 내용이 바로 ‘봉성문여(鳳城文餘)’란 책이다.(봉성이란 삼가의 옛 이름이다.) 그 내용 중 저자풍경(市記)이란 글에는 1800년 음력1월1일 설을 앞둔 12월27일 삼가장 대목장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뿐 아니라 1800년 전후의 풍속, 문화, 역사, 생활상 등 우리 선조들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2016년 9월 문무자 이옥의 후손들이 합천을 찾아 직접 삼가장터를 둘러보는 일도 있었다.
200년 전 삼가시장 모습은?
문무자 이옥이 쓴 삼가시장의 모습, ‘시기(市記)’는 오늘날 아주 귀한 자료로 이를 오늘날 재현하기에 충분한 자료적 가치와 상품성이 있다. 현재 합천시장이 고려 신성왕후의 고향이 합천이란 설화를 통해 왕후시장으로 거듭났듯이, 삼가시장 역시 이를 활용해서 새롭게 거듭날 필요가 있다.
문문자 이옥을 삼가시장의 스토리텔링으로 삼자고 처음 주장한 조찬용 남명선양회장은 “봉성문여에 나오는 삼가시장의 모습을 재현하여 관광 상품화하고, 전통시장 활성화에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지역의 역사, 문화,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차별화된 관광 마케팅만이 지속 가능한 것이고, 인구감소로 큰 어려움에 봉착한 합천군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적불명의 용주면의 드라마세트장 및 청와대 건물”보다는 자역의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살린 관광사업이 필요하다며, “특히 ‘저자풍경(市記)’은 당시 삼가장터, 장날 풍경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주옥 같은 글이다. 그런데 삼가시장 활성화에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고 안타까워 했다.
200년 전 당시 삼가장터는 현 삼가우체국 뒤 기양루 근방에 있었다. 그후 삼가시장은 1937년 12월에 현재의 삼가시장으로 옮겼다. 당시 강신부 면장이 8천원으로 논을 매입하고 습지였던 곳을 복토하여 건물을 짓고 이전한 것이다.(2013년 발간된 합천군사에 보면 1952년에 삼가장이 옮긴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동아일보 기록에 의하면 1937년이다.)
한편 삼가장이 그렇게 크고 융성했던 것도 예전 일이다. 다른 모든 전통시장이 그렇듯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작은 농촌시장 중 하나로 오늘날 이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 삼가시장이 그나마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삼가한우의 명성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삼가한우 브랜드 활용해야
삼가한우의 명성은 <대가한우> 브랜드에서 비롯되는데, 이재선(81세) 어르신이 고향 삼가에 와서 대가한우란 간판을 달고 식육식당을 열고서 이윤과 상관없이 질좋은 고기를 싸게 팔기시작했고, 이것이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오늘날 삼가한우의 명성을 이룩했다. 이런 경우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성공시킨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삼가한우를 찾아온 방문객들로 삼가면소재지가 심각한 주차난을 겪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제 현 삼가한우 명성에 만족하지 말고 계속해서 바뀌는 소비자트렌드를 쫓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시장과 먹거리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다. 한우 먹거리 말고도 한우와 연계된 식품 등을 추천먹거리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예를 한우와 관련된 채소 라든지, 참기름 등이 있을 것이다.
볼거리, 즐길거리 필요해
요즘은 먹거리 뿐 아니라 볼거리, 체험거리도 중요한데, 삼가에는 훌륭한 먹거리가 이미 있기에 이와 더불어 볼거리, 즐길거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이와 함께 관광객들이 와서 불편하지 않게 주차문제 등도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는 민관이 합동해서 아이디어를 내고 행정에서 관심을 갖고 해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삼가시장에 얽힌 큰 이야기는 3가지이다. 1.삼가시장 3.1만세운동 2.문무자 이옥이 쓴 200년 전 삼가시장의 모습 3.삼가한우 브랜드 이외에도 삼가는 남명 조식 선생의 탄생지이며 뇌룡정 등 유적이 있다. 이를 잘 활용해 내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삼기시장 내력>
1800년 음력1월1일 설을 앞둔 12월27일 삼가장 대목장 모습을 문무자 이옥이 구체적 기록
1937년 12월에 현재의 삼가시장으로 이전(당시 강신부 면장이 8천원으로 논을 매입하고 습지였던 곳을 복토하여 건물을 짓고 이전)
1919년 삼가시장 3.1만세운동 일어남. 일본기록에 의하면 1만 여명이 참여하여, 사망 5명, 부상 20명, 체포 38명으로 나오지만, 안창호·이광수의 ‘한일관계사료’ 및 강덕상의 ‘현대사자료’에는 3만 여명이 참여하여, 순국 42명, 중상 100 여 명으로 나와 있다. 4월 1일 일어난 유관순의 아우내 장터 3·1만세운동은 3천 명 참여, 순국 18명, 부상 43명, 체포 11명인 것과 비교하면, 합천의 삼가장터 3·1만세운동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만세운동이라는 것을 내외로 크게 홍보할 필요가 있다.
1699년 편찬된 삼가읍지 내용에서 매달 2일, 7일에 장이 선다고 되어 있는데 그 당시 개장일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4년 시설현대화 사업에 맞춰 장옥일부 신축 15억1천5백만원, 2007년 시설현대화 사업에 맞춰 장옥방수 등 1억원, 2009년 시설현대화 사업에 맞춰 비가림시설 등 2017년 합천군은 경상남도에서 공모한 2017년도 명품(특화) 전통시장 육성사업에 삼가시장이 최종 선정됐다. 경상남도의 명품시장으로 육성하는 사업으로 2017년~2019년까지 3년간 총 9억 원을 지원받는다.
옛날부터 의령, 산청, 합천군민이 이용하는 정기시장으로 유명했으나, 현재는 농촌인구 감소로 많이 침체됐다. /천미화 시민기자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