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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3.1 독립운동 100주년에 붙여| ‘쌍책’ 돌아오지 않는 게 어디 새들 뿐이랴 – 송염만 소설가

이제는 가뭇없이, 생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난여름, 반도의 대지에는 유래 없는 더위가 할퀴고 갔다. 가뭄까지 동반한 더위는 물의 땅 합천에도 비켜가지 아니하여, 이 곳 쌍책 들녘엔 태양의 꽃마저 등을 돌리었다. 메마른 해바라기는 꽃 축제를 반납하더니, 마침내 열매를 맺지 아니하여, 새들이 날아오지 않는다. 지워야 할, 지우지 못한 이 상흔의 땅에 돌아오지 않는 게 어디 새들뿐이랴. 이 겨울, 황량한 대지를 바라보며 빠르게 구르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돌려 본다.
1940년, 패전이 짙어지던 일제는 마지막 발악으로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이 땅에서 우리말을 사용치 못하도록 하였다. ‘내선일체’란 이 땅의 자원과 인력을 전시동원체제로 끌어가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해 8월에 일제는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폐간 조치하고 이어 『문장』 『인문평론』 등속의 몇 안 되는 우리글 문예지와 일반 서책들까지 강제 폐간 시켰다. 단 한 줄도 우리글을 사용할 수 없는 강압된 분위기 속에서, 정지용, 김동리, 황순원 등속의 문인들은 낙향이나 은둔의 길을 선택하였고, 김억, 김동인, 서정주, 노천명, 모윤숙 등속의 많은 문인들은 조선인의 징병, 징용과 민족말살정책에 적극 협조하는 반민족 행위의 길로 걸어갔다.
민족의 글과 말이 사라진 자리에는 어용잡지 『국민문학』이 차지하게 되는데, 이 때의 국민이란 천황을 신으로 섬기는 황국신민이다. 민족 신문이 폐간된 자리에는 대한제국 말기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매수한 『매일신보』가 있었으니, 친일문인들은 이러한 매체를 통해 식민주의 파시즘을 옹호하고 황민화·전시정책에 협력하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1944년 12월 『국민문학』에 발표된 서정주의 <오장 마쓰이 송가>는 친일문학의 정점을 찍는다. 오장 마쓰이 히데오는 개성 사람 인씨의 아들로 가미카제 특공대로 일제를 위해 전사한 조선인이다. 이 시의 화자는 영국과 미국을 적군으로 규정하여 적대감을 드러내며, 일제의 부름을 받아 장렬히 전사한 조선인 청년의 영웅적 행적을 찬양하고 있다. 나아가 이 작품은 적국 항공모함을 공격한 비행기를 <우리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낸> 것으로 설정하고, 가미카제의 기습으로 인해 <삼천리의 산천>이 향기로워졌다고 칭송한다.
가미카제!
서정주가 헌 시를 받치며 칭송했던 가미카제는, 조선 젊은이까지 죽음의 희생으로 내몰았던 전쟁발광, 그리고 기습공격으로 점철된 야만의 한 정점이다. 때문에 우리민족이 일제의 야만적 호전성을 따라한다는 건 분별없는 짓으로 민족정신에 끼치는 영향도 크다. 그렇다면 가미카제를 찬양했던 친일파 서정주만을 탓해야 할는지. 우리는 어떠했던가.
오늘날까지도 스포츠 중계방송을 보노라면 쉬 들을 수 있는 게 ‘파이팅’이라는 용어이다. 파이팅은 일본식 조어인 ‘화이토(fight)’에서 연유된 국적불명의 용어로, 가미카제가 전투에 나가기 전에 외쳤던 것에서 유래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를 따라 사용했던 걸 어이하랴. 또한 이 용어는 영미 권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윽박지르며 싸우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져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스포츠계에서는 ‘아자아자’나 ‘으랏차차’로 사용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밖에도 체육계에 난무하는 일제 군대식 왜색투로는 ‘고참’ ‘시합’ ‘기라성’ ‘전지훈련’ 같은 것이 있다.
그럼 문학계는 어떨까.
문학작품은 모국어를 통해 모국어에 담긴 민족의 독특한 정서와 사상을 담아내는 예술이다. 하므로 모국어에 대한 남다른 소명의식을 지녀야할 작가들의 글에서도 여전히 식민잔재가 나타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경남지역 어느 문인단체의 내로라하는 원로 작가의 작품에는 ‘부락’이라는 단어가 한 작품에서 여러 차례 나오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부락과 부락사이를 돌며……>일이 이쯤에 이르면 점입가경을 이룬다. 부락은 일본사회에서 가장 천시 받던, 그러니까 가축 같은 신분이 살던 곳을 일컬었다. 한일합방 후 이 땅에 들어온 일인들이 우리민족이 사는 마을을 천히 여기며 불렀던 것이 ‘부락’인 것이다.
한 편의 문학 작품엔 작가의 태도라는 것을 추출할 수 있다. 따라서 ‘부락’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서술하는 작가의 태도는 우리를 아연케 한다. 철저히 민족우월주의에 빠진, 지각없는 일인의 태도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조센징은 일인들이 조선인을 일컬어 하는 말이다. 하지만 단순한 지칭이 아니다. 한국인이 한국인한테 조센징이라 불리면 기분이 어떨까. 더 점입가경인 것은 이러한 작품을 당해에 최고의 수작이라 추켜세우고, 상패와 상금과 명예를 붙여 ‘작가상“을 주고는, 그 문인단체의 회원들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작가 개개인의 친일언어 미 청산으로 인한, 웃어야할 울어야할지 모를 이런 일은, 경남문단의 문인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훈은 단편소설 <화장>에서 우리말 설렘을 ‘설레임’으로, 전상국은 중편 <아베의 가족>에서 싫증 난다를 ‘식상하다’로, 조정래는 장편 <태백산맥>에서 제목부터 ‘산맥’ 이라 표현 하고 있다. 산맥은 ‘백두대간’이란 옛 우리말이 있기는 하나 ‘산줄기’로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다. 실제로 예전 ‘경남의 노래’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낙동강 굽이치는 태백산줄기 우리의 경남.” 60년대, 경남지역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아침에 운동장에 모여들어 불렀던 노래이므로 기억할 것이다. 태백산맥이 아니라 태백산줄기인 것. ‘산맥’이란 조선총독부가 광산개발에 따른 지질탐사를 실시하면서 붙인 것으로, 그러니까 우리 자원을 수탈해갈 목적이 담겨 있다. 때문에 지질학자들조차 사용을 꺼려한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서도, 문학인의 왜색어 청산 노력은 개개인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해도, 꾸준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산맥을 산줄기로 고쳐 사용한 것도 문학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감안할 때, 독자들은 이를 믿어도 좋다.
하면, 건재하게 굳어져 가는 왜색 투 지명은 어떠할까.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