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견문록(陜川 見聞錄) 3| 합천 배티동굴(梨峴洞窟)에 대하여 (3) – 하재효 논설위원
동굴고고학(洞窟考古學) : 배티동굴의 고고학적 연구를 위해 수차례의 시굴을 하여 두 분의 고고학 교수에게 자문을 받았으나 연구과정에서 연구를 포기하였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考古美術史學科) 이선복(李鮮馥) 교수는 고고학적 평가(考古學的 評價)를 본 김항묵 교수의 ‘학제적연구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필자는 1989년 4월 22일 부산대학교 지질학과 김항묵과 함께 <배티동굴>을 답사하고, 이 동굴 입구 부근에 설치한 퇴적층서 확인을 위한 시굴갱에서 수습된 석기 유사품 1점, 20여점의 토기 및 자기편과 사람의 치아 3점을 위시한 각종 골편을 관찰하였다. 아래 논설은 동굴 지형 및 상기 수습품에 대한 관찰에서 도출된 이 동굴의 고고학적 성격에 대한 개괄적 평가이다.
우선 시굴갱에서 수습된 토기와 자기편은 모두 역사시대의 유물로 판단된다. 자기편은 대개 조질의 분청자기 저부 및 동체부 파편으로서 조선시대 중기 이후의 유물들이다. 토기편 역시 이와 비슷한 시기의 것들로 판단되는데, 단 2~3점의 파편은 고려 혹은 통일신라 말 정도까지 그 연대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상기 석기 유사품으로 수습된 것은 인공적 가공의 흔적을 전혀 인정할 수 없는 것으로서, 아마도 동굴 형성 과정에서 기반암인 혈암의 모체가 붕괴되며 동굴 바닥면을 따라 운번되는 과정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니회암(泥灰岩) 재질의 geofact로 생각된다. 각종 골편은 아직 화석화되지 않은 것으로서 그렇게 오래 전에 남겨진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결국 유물 속에는 고신라나 가야, 혹은 이보다 이른 선사시대의 유물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수습된 유물들은 비교적 가까운 역사시대에 인간이 동굴을 잠시 점거한 결과 표토에 남겨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습 유물에 대한 이러한 평가와 더불어,동굴의 퇴적학적 성격과 내부의 지형을 고려할 때 동굴 내외부 어느 곳에서도 Pleistocene(홍적세의 마지막,빙하시대)의 구석기 문화층을 위시한 선사시대의 문화 퇴적층이 존재할 가능성은 아마도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굴은 현재도 활발하게 확장운동을 하고 있는 단계인데, sediment(침전물)의 퇴적은 현재의 동굴 입구에서 10m 정도 내부 지점까지에서만 확인될 뿐이다. 따라서 과거에 인간이 동굴 내부에서 어떠한 활동을 하였더라도,그러한 활동의 증거가 실제로 발견될 수 있는 곳은 동굴 입구 주변부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입구 부분에 설치한 2개의 시굴갱에서는 두께 20~30m 내외의 표토층 아래에서는 전혀 아무런 유물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는 바, 이 동굴에서는 상기한 수습 유물로 대표되는 고고학적 시기보다 앞선 시기의 인간 점거의 흔적은 없으리라 판단된다.” (계속)